머뭇거림
열차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꾸물하던 하늘이 갑자기 터졌다.
세상이 금세 젖었다.
바닥엔 작은 물줄기가 생겼고
그 바닥을 딛는 발길들은 질퍽였다.
젖은 몸들이 대합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들릴 듯 말 듯 원망 섞인 말들을 쏟으면서 젖은 몸을 털었다.
그들 사이에 그녀도 끼여 있었다.
그녀 역시 우산 없는 빈손이었고 옷에는 빗자국이 선명했다.
그녀와는 목적지가 같다.
언제나 같은 곳에서 타고 같은 곳에서 내린다.
같은 역에서 내려 같은 방향의 버스를 이용한다.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가 매섭다.
그러나 묵은 때라도 벗겨내는 듯 시원하고 상쾌하다.
그렇게 50여분을 달렸다.
도착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은 대합실에 묶였다.
택시를 잡은 다행스러운 발길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100여 미터 떨어진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가야 했다.
그녀도 그랬다.
뭣하러 무겁게 매일 우산을 들고 다니냐는 핀잔을 감수하고 우산을 넣고 다닌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5분여 망설였다.
그때였다.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
빗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함께 우산을 쓰고 가는 모습을 그렸던 그림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녀에게 한걸음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머뭇거림이 화근이었다.
그녀에게 왜 다가서지 못했을까
50여 분간의 꿈은 이렇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