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킬러문항이다.

아내풀이

by 지금

아내는 그 자체로 문제입니다.

말과 표정은 물론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문제입니다.

하루 이틀 아니 한 달 두 달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도 머리는 늘 빈 소리만 요란할 뿐 그럴듯한 답 한 번 내질 못합니다.


아내와 살아가는 일은 문제를 푸는 일입니다.

아내는 늘 문제를 냅니다.

그것도 꼬고 또 꽈서 도저히 지문조차 이해할 수 없는 최고난도 문제만 쏙쏙 뽑습니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답을 요구합니다.


아내의 삶 하나하나는 숨소리조차도 모두 남편이 풀어내야 할 고난도의 문제입니다.

풀지 못하면 관계는 꼬이고 평안은 불안으로 질서는 혼란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자연스레 무능한 존재가 됩니다.


아내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남편의 자존감은 땅바닥을 기고 존재는 불안해집니다.


이른 새벽 배낭을 메고

등산화 끈을 조이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내풀이


“당신 고마운 줄 알아!”


앞뒤가 뭉텅 잘린 아내의 말에 마시던 물이 목에서 멈췄습니다.


“요새 남편과 같이 자는 부인이 있는 줄 알아?”

“…”

“없어!”


가을비가 청승맞게 추적거리던 어느 날 오후 아내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혼자서 주고받았습니다.


“나니까 자주는 거야”


그러면서 ‘자주는 것’이라는 말에 빠~아알갛게 밑줄이라도 긋는 듯 힘을 주었습니다.

자비심 한 톨 없는 당신 같은 아내를 만났다면 당신은 벌써 골방 홀아비 신세를 면치 못했을 거라면서 말입니다.


자기라도 되니까 별 볼 일 없는 남편이지만 거두는 거랍니다.

자기라도 되니까 등을 돌렸어도 벌써 돌렸을 나를 거두는 거랍니다.


“그래도 수십 년 살 부대끼며 산 인간인데 싶어서”

“혼자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안 됐어서”

“다 늙어빠진 저 인간 내가 아니면 누가 알아나 줄까 싶어서”

“어딜 가나 늘 혼자인 모습이 딱해서”

“친구들과의 만남조차 시들해져 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래서 곁에 머무는 거랍니다.

그래서 걱정하고 염려하는 거랍니다.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던 아내는 다 갠 빨래를 들고 일어서며 가슴속 깊이 한마디를 쑤셔 넣습니다.


“당신 복 받은 줄 알아!”


뜬금없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왜 갑자기 내팽개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며 복을 운운하고 자신에 대한 칭송을 요구하는 건지, 뭘 어쩌라는 건지 도통 뭐가 뭔지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는 모양인데…,

어제, 일주일, 한 달… 아무리 지난날을 뒤져봐도 딱히 떠오르는 흠이 없는데…,

어쨌든 그러니…, 잘하라는 거겠지 싶긴 한데…,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다다르면 또 막힙니다.


어쩌다 친구들이 모입니다.

앉자마자 그들은 아내가 내 준 문제를 쏟아냅니다.

머리를 맞댑니다. 역시나 풀어지지 않습니다. 그 머리가 그 머리입니다.

아내의 문제는 모든 남편의 난제입니다.


아내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란 여간 힘겨운 게 아닙니다.

아내를 계속 곁에 두려면 아내가 원하는 답을 빨리 찾아야 할 텐데,

좀체 머리가 돌아가질 않습니다.


이러다 문을 닫고 나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게 될까 두렵습니다.

급한 대로 아내의 말대로 아내를 만난 것을 복 받은 것으로 알고, 복덩이를 안고 사는 것으로 알고 고마운 마음을 안고 고분고분 지내는 수밖에요.


그러면 힌트라도 던져줄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도 눈치채지 못하면 그땐…아!.


아내는, 아내의 말은 그리고 아내의 표정과 움직임은 그 자체로 고난도 킬러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남편으로서의 삶은 고3수험생의 삶입니다. 쉼 없이 주어지는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숨 가쁜 나날입니다.


‘킬러문항 방지법’ 아내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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