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족
인생이 어둡게만 보이는 것이
나이 탓일까.
모든 소식이 슬프고 모든 장면이 절망스럽다.
모든 것이 비난에 비방이요, 욕에 짜증이다.
눈은 빛을 잃은 지 오래고 입은 미소를 끊은 지 아득하다.
아내는
다른 공간, 다른 사람, 다른 소리를 권했다.
모든 것을 어두컴컴하게만 바라보는 남편이 안타까워서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삶마저 어둡게 만드는 것이 답답해서
불평을 토대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슴 아파서
…
남편의 수심(修心)이 절실했나 보다.
고치족
집에 머무는 시간이 하루하루 늡니다.
딱히 갈 곳도, 할 일도 그렇다고 만날 이도 없으니 늘 울 안입니다.
하루 이틀은 기본이고 3, 4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시에서 운영하는 무슨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던데”
어느 날 아내는 들릴 듯 말 듯 몇 마디를 흘리고 지나갔습니다.
집에만 틀어박혀 이것저것 간여하고 여기저기 시비에 고기조기 나대며 서성이는 것이 못내 보기 흉했나 봅니다.
뭔가 시간에 의미를 부여해 보라는 툽니다.
“아는 형님은 벌써 몇 년째 다닌다던데”
이틀쯤 지났을 때 아내는 그 교육 이야기에 아는 형님을 얹었습니다.
아내는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새처럼 밖으로 몰아낼 거리를 연일 물어 날랐습니다.
못 들은 척 외면했으나 양심이 꿈틀댔습니다.
양심은 어느새 아내가 말한 사이트로 끌고 왔습니다.
인문교양, 정보, 직업능력, 문화예술 등 제법 다양한 프로그램이 널려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선착순, 추첨 등 선정방식은 물론 신청기간, 모집정원을 소상히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청자 수를 공개해 은근한 경쟁심과 조바심을 자극했습니다.
개중 눈에 띄는 강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뜻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괜한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닌지…, 아무것도 아닌 것이 특별한 일로 다가왔습니다.
몇 번을 주저하고 수차례 멈췄습니다.
그러다 다른 삶을 들여다볼 좋은 기회라며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얼마 후 신청한 강좌에 수강자로 선정되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곧이어 수강료, 교육장소, 강의실… 등이 문자로 박혔습니다.
집을 나설 공식적인 구실이 생긴 겁니다. 아내의 미소가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교육의 날, 교육장에 도착해 안내받은 강의실로 들어섰습니다. 아직 시간여유가 있어설까 강의실은 비었습니다. 엉거주춤 10여분이 흐르자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크고 작고 둥글고 모난 소리를 앞세운 발길들이 하나 둘 모였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고 강사는 강좌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소개되는 강좌는 내내 예상을 뒤흔들었습니다. 색다른 시선, 색다른 평가, 색다른 접근…, 기대했던 ‘다름’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부풀었던 기대는 금세 시들해졌습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관점과 접근…, 굳이 그곳까지 가야 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결국 한 시간 만에 강의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서점에 들렀습니다.
듣고 싶었고 논하고 싶었던 내용이 담긴 책 몇 권을 가방에 담았습니다.
‘그래 혼자 보고, 혼자 떠들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평가하자.’
집을 나갈 구실은 하룻만에 사라졌습니다.
아내의 안도가 불안으로 바뀌는 데에도 역시 하루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남편, 울밖으로 끌어내기’라는 아내의 꿈은 백일몽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한숨이 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