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부부의 조건이다

남편의 약속위반은 아내의 삶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by 지금

시간에 묻힌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잊힌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잊은 줄 알았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어느 날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아들 녀석과 통화하는 아내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이 한마디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아들 녀석이 물었던 모양입니다.

‘여자친구가 돌아선 이유가 뭘까’냐고

‘믿음’ 그때 내놓은 아내의 답입니다. 믿음을 주는 존재였냐면서.


믿음을 주지 못하는 존재 곁에 머문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라면서 말입니다.






남편의 약속위반은 아내의 삶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하얀 눈이 이쁘게 내리던 날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해 서로를 응원하자며 손을 잡았습니다.

서로의 공백을 메워주고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고 서로의 색과 향을 지지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웃음이 되고 기쁨과 즐거움이 되자며 서로의 손가락에 약속을 걸었습니다.


강산이 여러 번 변한 오늘

잠시 숨을 고르고 그날의 그 약속을 돌아봅니다.

메워주고, 채워주고, 지지하고, 응원하겠다던 그 약속, 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한지 살펴봅니다.


돌아보면 사나운 폭풍우도 여러 번입니다.

얼굴을 돌리고 등을 맞댄 시간도 허다합니다. 혼자 먹고 혼자보고 혼자 앉았던 적도 많았습니다. 허구한 날 목청을 돋우고 살기 품은 눈으로 을러댄 날도 꼽기 벅찹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고 아내에겐 통보하기 일쑤였고 이게 뭐냐며 아내의 땀을 비하하고 이것도 한 것이냐며 아내의 수고를 함부로 짓밟았습니다.


거친 눈보라도 숱하게 지났습니다.

서로를 마주하기 싫어 집 밖을 배회한 것도 수 없고, 아내의 손길이 닿은 옷과 음식을 거부한 채 구겨진 옷에 굶주린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선 일도 세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애들을 위한 일이라며 애들 사랑을 구실로 다투었고, 또 때로는 부모님을 위한 일이라며 부모님 사랑을 명분으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약속 여기저기에 금이 갔습니다.

크고 작은 구멍도 여럿입니다. 곳곳이 무너지고 문드러졌습니다.


깨진 약속에 아내는 한숨을 토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의 삶은 처절한 사막이었습니다.


아픔을 주고 아파하려면 뭣하러 함께 산다고, 함께 살자고, 함께 아이를 낳고, 함께 늙어가자고 했는지, 서로에게 힘이 되자고, 기쁨과 즐거움이 되자고 약속했는지 부끄러운 일입니다.





버려진 약속,

상처 난 약속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미안함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한 번뿐인 삶을, 단 한번 주어진 삶을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꾸려가는 아내

그녀에게 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약속의 흠집을 치유하는 일, 그래서 상처 난 마음을 다독이는 일

남은 시간 내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약속위반은 아내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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