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고민
나이가 드는 건
새로운 길을 걷는 거다.
여러 개의 삶 중에서 새로운 삶을 꺼내는 거다.
젊음의 장식 벗겨내고 새로운 멋으로 갈아입는 거다.
젊음을 견딘 눈부신 기적에 충분히 감탄하는 거다.
삶은 인내해야 할 위험임을 자각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거다.
자신의 영역을 넘지 않고 천체의 흐름에 맞춰 늙음 안에서 자기의 한계를 깨닫는 거다.
관습과 타자가 입혀놓은 제복을 벗고 자기 만의 삶을 사는 거다.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성숙한 자율로 넘어가는 거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타인에게 감사하는 거다.
나는 무엇일 수 있는가? 에 대한 답을 적는 거다.
다시 보지 못할 것을 사랑하는 거다.
신께 받은 삶, 좋은 열매를 맺는 거다.
아내의 고민
만고에 고민 같은 것은 없을 것 같은 아내에게도 고민은 있습니다.
시들지 않고 영원한 봄날일 줄 알았을까요?
몸 이곳저곳 가로세로 깊고 얕고 굵고 가늘고 짧고 길고 넓고 좁고… 거칠게 뻗은 주름
단 한 끼도 게으름 피우지 않은 숟가락 덕에 처진 뱃살
흰 눈으로 뒤덮인 한겨울 초가지붕처럼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
이 집 저 집 아이들 취업 소식에도 감감무소식인 새끼들 취업
등산은 옛일이고 언덕조차 허락지 않는 무릎관절
일거리도 멀어지고, 만남도 뜸해지고 무료함으로 채워지는 시간
색과 디자인 그리고 공간에 대한 요구마저 금기시되는 흉측한 늙음
5㎏, 10㎏ 적힌 박스 앞에서 선뜻 손을 뻗지 못하고 잡아야 하는 허리
마음에 드는 옷이 널렸어도 피팅룸에 들어갈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허벅지 살
학창 시절 함께 웃고 울고, 뛰고 걷던 봄 냄새 풍기던 친구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동네 목 좋은 곳에서 나풀대는 새 아파트 분양 마지막 찬스 현수막에 펼쳐 든 얇은 통장
판매기, 안내기, 발권기…‘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한 기계 앞에서 입 닫고 손가락 접고 경험하는 거절의 아픔
“여보!”,“엄마!”무슨 말만 하면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내치는 가족들의 집단 비아냥
황무지로 변해 먼지가 풀풀 대는 감정이 안타까워 집어든 책마저 거절하는 힘 잃은 눈동자
어쩜 그렇게 잊지도 않고 찾는지, 때마다 손 내미는 별별 고지서
이곳저곳 낡고 해지고 스러져 몸뚱이는 얌전해져도 아무 때나 불쑥불쑥 기어 나오는 어수선한 욕망
…
삶은 고민에 고민을 얹고 또 다른 고민을 만듭니다.
아내의
비극 없는 노년이
반감 없는 황혼이
가능성 가득한 늙음이
가능할까요?
아내의 고민 없는 삶이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