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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02. 2024

착각은
상상 속의 여행이다

외식이유

착각은

누군가가 던지는 하나의 몸짓을 자신을 위한 선물로 인식하는 일이다.

홀로 느끼는 충만하고 자유로운 기쁨이다.

상대의 목소리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다.

가장 외로운 영혼을 발견하는 일이다.

신성한 불만 상태에 빠지는 일이다.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예상했던 일이 일어날 때까지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일이다.

너무 빨리 붙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겪는 끔찍한 고난이다.

시효 지난 초대장을 받아 들고 마음 설레는 일이다.     





외식이유     


“점심은 밖에서 먹을까?”     


어느 날 아침

숟가락을 놓기도 전에 아내는 점심 외식을 말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리둥절 대답을 미적대자 아내는 그렇게 하자며 자신의 손을 스스로 들어 올리며 외식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는 외출준비를 서둘더니 점심에 보자는 말을 남긴 채 급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아내에 의한 아내만의 독단적 결정이었지만 내심 고마웠습니다.

아침과 점심이 다르지 않고 점심과 저녁이 일치하는 지조 있는 밥상 탓에 매끼 다름없는 밥상을 대하는 남편을 위한 특별한 배려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12시가 지나고 1시까지 넘겼습니다.

그러나 아내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습니다.     


‘약속을 잊었나?’

‘아님 내가 잘못 들었나?’     


등허리에 붙은 뱃가죽을 부여잡고 아내의 말을 복기하던 중    

 

“여보, 내려와요”     


아내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 있나 하는 걱정과 잊었나 하는 근심 그리고 무시하나 하는 화와 남편과의 약속쯤은 하는 짜증에 불을 지펴 시커멓게 타들어 가던 마음에 일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아내를 졸졸 따라 들어간 식당엔 점심이라기에는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림은 수행과도 같은 지난한 일입니다. 자리에 앉은 것은 식당을 들어서고 20여 분이 지나서였습니다.     


“아이고! 영주 아니니?”     


어렵사리 자리에 앉아 고픈 배를 달래면서 메뉴판을 펼칠 때쯤 입에 이쑤시개를 야무지게 문 웬 여인이 아내에게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습니다.    

  

“날은 덥고, 뭘 해먹기도 귀찮고”

“그래, 나도 그래서…”     


그 여인은 식당을 나서다 말고 묻지도 않은 식당 방문 이유에 대해 친절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그녀의 설명에 대해 얼굴 가득 공감 어린 웃음을 지으며 ‘나도 그래’를 온몸으로 전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내의 외식은 한결같이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아침상을 점심이 받고 저녁은 점심상을 그대로 잇는 지조 있는 밥상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냥 귀찮아서였습니다.  

   

콩나물을 삶고 도라지를 다듬고 두부를 부치고 된장국을 끓이는 것이 귀찮았던 겁니다.

집 밖 나들이 그 어디에도 남편에 대한 염려는 없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들뜰 이유가 하등 없었습니다.

고마워야 할 이유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생각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깨작거리는 젓가락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탱탱함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앉은 쭈글거림에 대한 염려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체중계 숫자마저 피식대는 가벼운 몸뚱이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설렘은 헛발질이었고 고마움은 오지랖이었습니다.

남편을 앞세운 외식은 가내식의 귀찮음이었고 외식은 가내식의 귀찮음으로부터의 해방이었을 뿐입니다. 

 

착각은 상상 속의 여행을 통해 자신을 자신의 기대 안에 놓아 보는 순간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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