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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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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14. 2024

눈을 들어 아내를 보라

아내에게 사랑을 베풀 시간

그때까지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절망한 자처럼 흐느끼는 아내의 소리를

아내의 얼굴 위에 내려앉은 구름을

잠 못 이루는 밤 어둠 속을 응시하는 어둑한 눈빛을

아내의 가슴에 내리는 거센 빗줄기를

가정의 풍요를 위해 바깥세상을 얼마나 헤매 다녔는지를

온종일 집 안에 가족의 자리를 마련하느라 시간을 보냈음을

아내의 고단함을

아내가 보내는 나른한 시간들을     





아내에게 사랑을 베풀 시간     


한 때,

내 어깨엔 항상 연한 분홍빛 향이 풍기는 깔끔하고 산뜻한 셔츠가 걸려있었습니다.

주변의 시선은 부러움에 떨렸고 ‘넌 좋겠다’라는 시샘이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흘린 아내의 땀은 기쁨이었고 하루를 버티는 활력이 되었습니다.    

 

“자네, 이제 자연주의자가 다 되었어!”     


그러든 어느 날 

빨래통에서 바로 건져 올린 듯 꾸깃한 천의 본성 그 자체를 중시한 옷매무새를 본 어느 선배가 지나가듯 한마디 했습니다. 이슬을 머금은 봄 새싹처럼 상큼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늦가을 찬바람에 거리를 배회하는 낙엽처럼 변한 모습에 ‘봄은 갔구나’라는 주변의 평가가 다양한 모습으로 줄줄이 따랐습니다.     


몰랐습니다.

언제부터 꾸깃한 옷깃이 어깨에 올라왔는지

아내의 눈길이 뜸해지고 아내의 손길이 끊겼는지

따스한 계절이 지나고 옷깃을 여미는 차가운 계절이 왔는지 


인생은 파괴의 과정이라더니

삶의 균열은 눈에 띄지도 않는 금으로 자리 잡는다더니    

 

금이라도 간 걸까요. 

설마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갑자기 심장이 담박질을 시작했습니다.

나에 대한 아내의 관심에 문제가 없는지, 사랑은 안전한 지도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곤하다며 옷도 벗지 못한 채 소파에 기댄 아내의 모습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 걱정보다 아내를 위한 걱정이 우선이고,

아내의 땀을 바라기 전에 아내를 위한 땀이 먼저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내는 언제나

무한한 인내심으로 내 삶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거칠고 불퉁스러운 말도 묵묵히 들어주었습니다.

밤새 쏟아내는 추잡한 불평도 미소로 품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아내를 위한 자리는 넓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땀샘이 마른 것은

아내의 손길이 멎고 발길이 끊기고 눈길이 멈춘 것은 

아내를 향한 손길과 발길이 거칠고 말길과 눈길이 온기를 잃은 탓이라는 것을 아내가 팔다리를 주무를 때쯤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참 못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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