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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Apr 12. 2024

아내는
홀로 걷지 않는다

아내의 어깨

가족이다.

아내의 삶을 비틀고 찌그러뜨리고 짓누르고 갉고 구긴 것이. 

    

세월은 아내의 삶에 남편을 갖다 붙여 고통을 확장하고 삶을 변형시키고 꿈을 구기고 시간을 흩뿌리고 머리를 빠지게 하고 얼굴 살을 늘어지게 하고 어깨를 휘게 했다.     


아내의 삶엔 가족의 삶이 겹친다. 

남편의 삶과 아이들의 삶이 켜켜이 얹혀있다.

아내의 삶에 붙은 가족의 삶은 끊임없이 아내의 삶에 상처를 낸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예고 없이 아내를 덮치고 아내는 본래의 모습을 잃고 감당키 어려운 모습이 된다.     


색은 바래고 빛은 잃고 힘은 빠지고 두터운 것은 얇아지고 높은 것은 낮아지고 팽팽했던 것은 쪼그라지고 밝았던 것은 어둑해지는 쇠약한 모습 말이다. 

    

삶의 쓴맛 끝 단맛 좀 음미하는가 싶었는데 어느덧 많은 것이 빠지고 없고 잃고 사라진 존재가 되었다.  

   

노쇠, 순간이다.  


   



아내의 어깨     


현관을 들어서는 아내의 어깨가 유난히 낮아 보입니다.

교만한 듯 올라섰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부처님 전에 나아가는 나약한 인간의 겸손함이 얹혔습니다.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한 손에 들어옵니다.

얇아질 대로 얇아진 앙상스러운 어깨에 눈물이 납니다.    

 

두텁고 당당했던 어깨입니다.

언제든 자신감에 넘쳐났던 어깨입니다.

어떤 어려움도 힘겨움도 헤쳐냈던 어깨입니다.     


그런 아내의 어깨가 낮아지고 얇아졌습니다.

넘쳐났던 자신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당당함은 움츠러진 어깨 안에서 구겨질 대로 구겨진 채 힘을 잃었습니다.     


아내의 삶은 힘겹습니다.

어깨 위에는 온 가족의 삶이 얹혀 있습니다.

가족의 아픔과 슬픔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짊어진 고통이 당당함을 앗아갔습니다.

수없이 흘린 눈물로 어깨는 낮아지고 허리는 휘었습니다.

머리는 하얗게 색이 바랬고 가슴은 검게 그을렸습니다.


나이가 들면 뻔한 어려움이 줄줄이 이어진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내는 오늘도

온전히 홀로 촛불을 밝히고 눈물짓고 성모님의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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