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요구에 성적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야비한 짓이다
보고 싶은 풍경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도 지천입니다.
듣고 싶은 소리도, 궁금한 냄새도 많습니다.
가고 싶은 곳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일, 마음이 가는 일은 왜 그리 많은지요.
여기에도 손이 가고, 저기에도 눈이 갑니다.
아이의 마음은 꿈으로 넘칩니다.
하나의 꿈은 또 다른 꿈을 낳고 그 꿈은 또 다른 꿈으로 이어집니다.
아이의 삶은 꿈으로 찬란합니다.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불빛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꿈의 불빛은 '성적'으로 빛을 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무슨 한가한 소리냐면서 기술이나 배우라는 부모님 말씀을 따라 들어선 길이 업이 되었다는 나이 지긋한 어른을 만났다.
“그냥 성적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성적도 낯짝이 있지.”
“이것저것 요구할 성적이 못 되었어.”
“수학, 성적이 이게 뭐냐”
“국어, 이걸로 어딜 가려고”
“영어, 양심도 없니? 이걸 어디에 내미니?”
코앞으로 성적을 들이밀면서 엉뚱한 소리 집어치우라며 치켜뜬 선생의 허연 눈앞에서 아이의 욕구는 무참히 짓밟힌다.
“성적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쪼그라들었으니까, 성적은 아예 입 밖에 내지도 못했어.”
성적이 길을 막고 길을 정하고, 성적이 꿈을 누르고 꿈을 정한다. 그리고 한 번 들어선 길은 인생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평가는 자신을 찾는 과정이고 성적은 자신을 찾은 결과다.
낮은 성적은 자신이 머무를 영역이 아니라는 뜻이고, 높은 성적은 아이가 머무르면서 꿈을 펼치고 인생을 만들어갈 영역이라는 의미다.
아이의 인생길에 토를 다는 것은 아이의 발에 저주의 쇠사슬을 매다는 일이다. 잔인한 저주를 멈추어야 한다.
기나긴 삶의 과정 중 일부의 기간에 특정한 내용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해 이해하고 암기한 정도를 평가해서 그것이 아이의 전부인 것처럼 아이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삶을 이루는 수많은 구성 요소, 수많은 능력 중 극히 일부의 요소와 능력만으로 “너는 이런 존재다.”라고 낙인찍지 마라.
성적은 삶의 과정에 필요한 참고 자료일 뿐.
자신이 걷고 있는 것이 빠른지, 느린지, 지름길인지 돌아가는 길인지, 이 길의 끝은 어딘지, 그곳에는 무엇이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곳인지, 계속 갈 것인지 다른 길을 택할 것인지, 다른 길은 무엇이고 그 길은 어디로 통하는지, 지금의 처지를 살피고 상황을 판단하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성적표에 적힌 숫자는 아이들의 생각을 돕기 위한 참고 자료다. 그리고 참고할 가치가 있는지, 가치가 있다면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철저히 당사자인 아이들이 정할 일이다.
어른은 그냥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아이의 요구에 응하면 된다.
언제부터‘성적’은‘신분’이 되었고,‘성적표’는‘신분증명서’가 되어 아이들의 삶을 짓누르는 족쇄가 되었을까.
성적표를 쥐어들고 한숨을 토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옳은 일인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