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인터뷰
쿠퍼티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만 해도 마음은 제법 편안하고 담담했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 당일 아침 호텔에서 눈을 뜨자마자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은 진정이 되질 않았다. 머릿속은 영어와 한국어가 뒤엉킨 말도 안 되는 문장들로 가득 찼고, 논리와 서사를 정성껏 조합해 준비했던 이야기들은 갑자기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내 밑천이 다 드러나면 어쩌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제는 가야만 했다.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 앞, 유리로 지어진 Apple Park Visitor Center 안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2층의 테라스로 올라가면, 담장 너머로 둥글게 이어진 도넛 모양의 본사 건물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곳이었다. 그 거대한 건물은 마치 접근 불가능한 요새 같았고, 둘러싼 담장은 유독 높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낯선 땅, 미국. 무작정 건너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던 첫날은 참 막연했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망설였고, 흔들렸고, 두려웠지만 매번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문득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떨리는 숨을 가다듬고,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인터뷰는 총 8시간에 걸쳐 숨 가쁘게 이어졌다. 7명의 인터뷰어와 1:1로 마주 앉은 시간, 그리고 점심식사라는 이름 아래 이어진 Hiring Manager와의 시간까지... 단 한순간 방심할 틈도, 기댈 곳도 없었다. 인터뷰 룸의 유리로 된 문이 열릴 때마다, 새로운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제각각 말의 무게가 다르고, 표정의 결이 달랐으며, 분위기의 온도가 달랐다. 따뜻한 대화에 잠시 긴장이 풀리다가도, 서릿바람처럼 차갑고 매서운 질문이 휘몰아쳤고, 질문은 질문을 낳았으며, 이야기는 깊이를 더해갔다.
8시간이 흐르고, 문득 나 자신을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할 정도로 지쳐가던 무렵, 마침내 마지막 인터뷰가 끝났고, 애플 정문을 나섰다. 그리고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그 느낌.
나는 마치 발가벗겨진 채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무언가를 잘 해냈다는 뿌듯함 대신,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언어, 경험과 논리를 총동원해 그저 8시간 동안 짜내고 버티며 생존한 듯했다. 마지막 인터뷰어와의 한 시간은 거의 무아지경에 가까웠고, 그 시간이 어떤 대화로 채워졌는지는 기억조차 흐릿했다.
그날 저녁, 쿠퍼티노 외곽의 조용한 라멘집에서 뜨끈한 돈코츠 라멘 한 그릇을 허겁지겁 해치웠다. 무언가 속을 채우고 싶었다. 위장이 아니라, 모든걸 쏟아내 텅 빈 정신과 마음을. 그리고 호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하루를 복기할 정신은커녕, 단 한 줄의 회고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