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인터뷰
다음 날 아침, 전날 인터뷰에서 오갔던 대화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데자뷔처럼 떠올랐다. 시간의 순서 따위는 무의미했다. 문득문득 장면 하나, 질문 하나, 그때의 표정과 어조까지 조각난 기억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예전에도 그랬다. 극도의 집중과 긴장을 오래 유지하고 나면, 기억은 늘 그렇게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고,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제 모습을 찾곤 했다.
파편화된 기억들을 조각 모음 하며 멍하니, 의식처럼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산호세 공항으로 향했다.
앞선 장에서도 이야가했듯, 내가 살던 샬롯츠빌은 참 작은 도시였다. 국제선은커녕 국내선 직항조차 기대할 수 없는 공항. 이번에도 어김없이 애틀랜타를 경유해야 했다. 그리고 플로리다 인터뷰 때 겪었던 결항 사건은 '그저 운이 나빴던 한 번의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잊은 지 오래였다.
몸은 여전히 지쳐 있었고, 마음은 인터뷰의 잔상들로 분주했다. 처음에는 ‘망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기진맥진했던 어제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하면서,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왜 그토록 몰입했는지, 무엇에 그리고 왜 에너지를 다 쏟아낼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인터뷰는 더 이상 질문과 답으로만 이뤄진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화였고, 탐색이었으며, 공동의 사고 실험처럼 느껴졌다. 질문을 던지면, 나는 답을 하려다 질문을 했고, 그 질문 위에 또 다른 질문이 쌓였다. 면접관은 마치 내 생각의 방향을 알려주는 듯했고,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는 해답을 만들어갔다. 대화를 통해 단서를 찾으려 노력했고, 그러다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정답을 아는 사람을 찾기보다는, 함께 답을 찾아나갈 동료를 찾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면접 당시에 이를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면 마음이 조금 덜 쫓기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스쳤지만, 돌이켜보면 결코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어느새 애틀랜타에 도착했고, 다시 샬롯츠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몰려와 어느새 눈이 감겼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잠이 깼다. 비행기 안에 웅성이는 사람들, 무슨 일인지 고개를 돌려 물어보니, 기상이 좋지 않아서 샬롯츠빌 상공을 돌며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안내가 있었다고 했다. 별일 아니겠지?
그렇게 한 시간을 넘길 즈음 기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단호하면서도 무기력한 목소리였다.
“Unfortunately, 샬롯츠빌 공항의 짙은 안개로 인해 착륙이 어렵습니다. 애틀랜타로 회항하겠습니다.”
마침내 플로리다 인터뷰 때 겪었던 악몽 같은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아! 방심했구나... 날아온 거리를 다시 돌아간다니.
세시간여를 다시 회항해 돌아온 새벽녘의 애틀랜타 공항은 적막했다. 다음 비행 편은 언제일지 기약도 없었다. 승무원들은 공항에 머물지, 밖에 나가 있을지 선택하라며, 담요를 건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 공항 의자에 몸을 웅크렸다. 피곤한 탓에 차가운 공항 불빛 아래서 금세 잠들어 버렸다.
네 시간쯤 지났을까, 새 비행기가 준비되었고, 나는 무사히 샬롯츠빌로 돌아왔다.
온사이트 인터뷰 때마다 이런 일이 생기는게 참 야속하다 느껴지면서도 왠지 좋은 징조나 징크스 같은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