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인터뷰
미국의 취업 프로세스는 정해진 타임라인이 없다. 채용 진행자의 스타일, 포지션의 시급성, 그리고 다른 지원자들과의 상대적 경쟁력, 이 모든 요소들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복합적으로 얽혀 결정된다. 정해진 절차도, 확실한 길도 없다. 어떤 이는 단 하루 만에 오퍼를 받고, 누군가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간혹 리쿠르터가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춰, 계절이 바뀌도록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한 채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한다. 대기업이든, 작은 스타트업이든 그런 일들이 정말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플로리다의 스타트업이 있었고, 그곳에도 빠른 답변이 필요했기에 되도록이면 하루라도 빨리 답을 받고 싶었지만, 애써 마음을 비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의 인터뷰 프로세스의 시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온사이트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나는 정중한 감사 메일을 리쿠르터에게 보냈다. 말은 감사였지만, 한편으로 은근한 기다림의 신호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사흘 뒤, 짧은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너의 인터뷰에 대한 면접관들의 피드백이 매우 좋아! VP와 마지막 논의 후 최종 결정을 내릴 거야. 1주일 안에 다시 연락 줄게"
‘피드백이 좋다’는 말 한 줄이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눌러두었던 기대가 고개를 들었고, 애써 지켜오던 평정심이 흔들렸다.
그렇게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고, 마침내 기다리던 메일이 도착했다.
"좋은 소식이 있어. VP가 너의 채용을 최종 승인했어. 축하해!"
화면 속 단 몇 줄의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미국에 오고 난 직후부터 시작되었던 불안과 의심, 그리고 결정들에 대한 보상이 담겨 있는 듯했다. 수없이 들었던 걱정과 우려들이, 그 순간만큼은 하나의 ‘감사함’으로 녹아내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지금의 아내가 된 그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기쁨에 잠긴 채, 메일을 다시 한번 읽었다. 그리고 그제야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일 통화 가능할까? 연봉 협상에 관한 거야. 너의 기대치도 궁금해"
‘기대치', ‘협상’이라는 단어가 잘 와닿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높게 부르면 거절당할까? 낮게 부르면 손해 아닐까? 괜히 말 잘못했다가 오퍼가 뒤집히는 건 아닐까? 한국에서의 경험은 늘 정해진 연봉 테이블 안에서만 이뤄졌었다. 연봉이라는 것을 ‘내가 제시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고 두려웠다.
봄이 올 무렵의 햇살 좋은 겨울이었던게 기억이 난다. 아직 이르지만 봄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