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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r 07. 2024

조울증 7년 차 (7)

우울의 늪

 퇴원을 하고 한동안은 잘 지냈다. 친구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주말이면 교회에 갔다. 그때 당시 그만두었던 음악을 다시 하고 싶어서 담배도 끊고, 보컬레슨을 잡기도 했다. 자유롭고 평화롭고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회사에는 조금 더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해 병가를 연장했고,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갈 계획도 세웠다. 이제 회사에 복귀하기 전까지 휴가를 만끽하기만 하면 됐다. 병원에 있는 동안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에 이제 나에게 걱정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 약을 빼먹기도 했지만 다시 환청이나 망상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치의는 내게 경고했었다.


"조증이 끝나면 우울증이 오게 되니 잘 지켜봐야 해요. 조증이 심했던 만큼 우울증도 심할 수 있어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우울증은 예전에도 겪어봤고 약을 먹으면 금방 좋아지니 크게 겁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에 겪었던 우울증과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엔 그냥 가슴이 좀 답답했다. 역류성 식도염인가 싶어서 내과를 찾아가 내시경을 했지만 아무 이상 없었다. 그래도 계속 가슴이 답답해 소화제와 탄산음료를 달고 살았다. 친구들을 만나도 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분명 몇 주전까지만 해도 조증 때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었는데 이젠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았다. 한 친구가 담배를 끊어서 그렇다며 다시 담배를 피우라고 말했다. 친구의 유혹에 못 이겨 오랜만에 담배를 태우니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그리고 난 아직까지도 담배를 끊지 못했다. 못된 친구!) 가장 힘들었던 증상 중 하나는 인지능력 저하였다. 글 한 줄을 이해하려면 세 번씩은 읽어야 했고, 동영상을 시청할 때면 사람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난독증을 의심했지만, 주치의는 우울증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의 감정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담배를 피울 때와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화장실도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될 때까지 참았다가 가곤 했다.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고 가족들이 억지로 끌고 나와야 겨우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때는 한창 더운 여름이었는데 두꺼운 극세사 이불을 덮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극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증상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친구들과 예정되었던 일본 여행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초록 검색창에 '자살'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고통 없이 죽는 방법, 안락사 등등 내 머릿속은 죽음에 대한 사고로 가득했다. 하루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 번씩 했다.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복귀 예정이었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회사에 전화해 난동을 피운 사건도 한 몫했다.)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에서 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나의 의사와 상관없던 사직은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조증과는 다른 의미로 미쳐있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가족들은 맛집을 데리고 다니고, 바람을 쐬자며 여행도 데려갔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약을 먹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가장 친했던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내 소식을 들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나를 멀리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현재 내 상태를 전했고, 그녀는 나에게 매일 자신과 통화하며 산책을 하자고 권유했다. 그녀는 낮시간에 활동하는 것이 세로토닌 생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하루 1시간씩만 걷자고 했다. 그녀의 도움으로 침대에서 나올 수 있었고, 매일같이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산책의 효과는 미비했지만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발버둥이었다. 나는 우울의 늪에서 몇 개월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지독한 우울증도 영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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