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 Mar 07. 2024

조울증 7년 차 (6)

슬기로운 정신병동생활 2화

폐쇄병동의 생활은 무료했다. 여러 정신병적 증상이 심했기 때문에 안정을 위해서 휴대폰과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었다. (모든 정신병동에서 휴대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책이나 TV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고양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대화를 나눌 상대를 찾아다녔다. 공중전화와 커다란 TV, 여러 책들이 비치되어 있는 휴게실에서 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그녀가 특별했던 이유는 그녀의 헤어스타일 때문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삭발은 한 것일까? 궁금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그때 당시 나는 한국어가 가능한 모든 사람과 단시간에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을 갖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 환자였다. 우울증이 폐쇄병동에 입원할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질환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녀는 어린 나이였지만, 몇 차례 자살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손목에는 스스로 자신을 괴롭힌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벌을 주는 행동을 멈출 수 없던 그녀는 결국 가족들의 손에 의해 병원이 입원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 그녀는 눈물은커녕 웃음 많은 순수한 10대 소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도 나의 상황이 궁금했는지 병원에 오게 되어있는지 물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정확한 진단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이하고 신비한 영적인 현상 때문에 병원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 주치의는 나의 증상이 때문인지, 초자연적인 요인에 의해서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1개월 이상의 입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나를 신기하고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이야기해 줄 때면 그녀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집중해서 듣곤 했다. 나에게 여러 가지 초능력이 있으며 모든 인류를 구하기 위해 모진 박해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나의 이야기들을 온전히 믿진 않았겠지만, 최소한 지루했던 그녀의 병원생활에 새로운 자극이 되기엔 충분했다. 내가 보안요원들에게 플러팅을 하고 돌아올 때면 결과를 궁금해했고, 병동 사람들에게 전도를 할 때는 제자인 양 옆에 앉아 주의 깊게 들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의 병동에 찾아가 취침약을 먹기 전까지 함께 있었다. 내가 1인실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그녀가 나의 병실로 찾아왔다. 하지만 의료진은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이 서로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 고 판단했는지 서로의 병실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도 우리는 휴게실에서 만나 취침시간 전까지 함께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퇴원하기 전 그녀에게 말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살인과도 같은 거야. 그러면 절대 천국에 갈 수 없으니 앞으로 나쁜 생각 하면 안 돼!"


과연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입원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다시 심리검사가 진행되었다. 다행히 검사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기 때문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드디어 진단명이 나왔다. <양극성 장애 1형> 조울증으로 진단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울증이라는 병을 가볍게 생각했다. 조현병 환자들에겐 죄송하지만, 조현병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명확한 병식이 없었기 때문에 퇴원할 수 없었다. 아직도 내겐 초능력이 있고, 인류를 구원할 사명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모든 영적인 능력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회진시간에 주치의에게 영적인 능력들이 사라져 간다고 말했다. 매우 선명해 보였던 시야가 점점 탁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동자에서 더 이상 생각을 읽을 수 없었고, 동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신과의 연결이 끊어졌고 텔레파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모두 병 때문이었구나. 나 이제 정신병 환자구나'


현실감각은 돌아왔지만, 우울하거나 힘들진 않았다. 몇 가지 사고를 치긴 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 일어났기 때문에 충분히 합리화할 수 있었다. 주치의는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고, 2주 뒤 외래를 잡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망상과 환각은 모두 없어졌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은 만나고, 회사에 복귀하기까지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즐거운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내리막길을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조울증 7년 차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