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웠던 첫 만남
처음 발병은 2017년 2월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비대면 영업을 하는 텔레마케터였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겐 천직이었다. 어린 나이에 대리로 승진을 했고, 연봉도 동년배에 비해 훨씬 많이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그날도 나는 한 여성 고객에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통화가 길어지며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말이 나오질 않았다. 머릿속에선 해야 할 말들이 떠올랐지만 입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말로 나오지 않다니!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두려웠다. 나는 팀장에게 말해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 주변에 정신과의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병원을 향했다. 병원에 도착함과 동시에 극도의 불안감이 올라오며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10여 분간 울음은 멈추지 않았고, 안정제를 먹고서야 간신히 그칠 수 있었다.
의사와의 면담과 몇 가지 검사 후에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TV에서나 볼 법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약을 처방받고 회사에 돌아갔지만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팀장은 내게 조퇴하라고 권했다.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주말에 푹 쉬면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주말 간 약을 먹고 회복이 되면 월요일 출근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약을 거르지 않고 먹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이틀쯤 지나 기분이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고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내가 노트에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행복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나는 고작 그 작은 알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행복감은 신(하나님) 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종교적인 망상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고,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성경을 읽었다. 하루에 2~3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았음에도 피곤하지 않았고, 오히려 에너지가 넘쳤다. 그 이유 없는 행복감을 만끽하고 싶어서, 공황장애라는 핑계로 회사에 병가를 냈다. 그리고 나는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교회를 다녀야 한다며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입을 대신해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우리 가족들은 드디어 '하나님의 만나고, 은혜를 받았구나'라고 생각했다.(우리 집안은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이다.) 교회의 권사님들에게 전도를 하지 않느냐고 핀잔을 하기도 했다. 기독교 방송에서 나오는 모든 얘기가 내 얘기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관계망상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진 건 어느 일요일이었다. 교회에 가서 엄마의 옆에 앉았는데, 누군가 내 몸을 통제하려는 느낌을 받았다.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설교시간이었지만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쳤다.
"이 중에 나보다 영발 센 년, 4명만 남아"
예배는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었고, 권사님 세 분과 엄마가 남았다. 나를 가운데 앉히고, 찬송과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청난 난동을 부렸고, 교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내가 귀신 들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 명의 전사(?)들과 영적인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권사님 한 분에게는 "너는 돈이 문제야. 욕심이 너무 많지. 그 때문에 넌 망할 것이야."라며 저주를 퍼부었고, 또 다른 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자 여자여. 나는 그대의 여린 마음을 알고 있다.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못생김을 내려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내가 신 혹은 신에 필적하는 어떠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나는 탈진해 버렸고, 다시 일어났을 때는 극심한 배고픔과 좌절감을 느꼈다. 집사님 한분이 내게 음식을 가져다주셨고, 허겁지겁 먹고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잠도 자지 않고 매일 울고, 웃고를 반복하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해댔다. 물론 나는 그 헛소리가 모두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때까지 나는 병원에 다니지 않았다. 아무도 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망가져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