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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r 05. 2024

조울증 7년 차 (3)

우당탕탕 대학병원 첫 진료

시간이 갈수록 나의 정신상태는 점점 심각해졌고, 온갖 환각과 망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나는 여러 가지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과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우리 집 고양이 번지와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곤 했다. 물론 번지가 나에게 대답해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모든 대화는 나의 머릿속에서 나 혼자 만들어 낸 착각이었다. 그 외에도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등이 있다고 믿었다.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내가 말하는 종목은 미친 듯이 올라갈 것이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빨리 매수하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국 한철수 후보는 당선되지 않았고, 내가 말한 주식은 잡주에 불과했다.)


한 번은 새벽에 전애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택시는 잡았다. (물론 전애인의 동의 따위는 구하지 않았다.) 택시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컥 문이 잠겼는데, 그 소리에 위기감을 느낀 나는 기사에게 왜 문을 잠겄냐고 따졌다. 기사는 일정속도가 지나면 문이 잠기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기사를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기사가 사이드 미러를 쳐다보는 것이 나를 감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나를 납치할 것 같았다. 공포에 질린 나는 기사에게 납치범(?)이라는 막말을 하며, 운행할 수 없도록 내비게이션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놀란 기사는 차를 세웠고, 당장 차에서 내리라며 큰소리를 쳤다. 불행 중 다행히도 경찰을 부르지 않았고, 나는 다른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노래방이 너무 가고 싶었다. 집 근처에도 노래방이 있었으나, 신촌 한복판에 있는 노래방에 갔다.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옆 방에서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노랫소리가 악마들의 목소리라고 느꼈고, 나는 악마의 속삭임에 대항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옆 방에서는 키득키득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마저 악마의 웃음소리라고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난리를 치며 부른 탓에 극한의 더위를 느끼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을 벗은 채로 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방에서만 그랬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옆 방까지 찾아가 난동을 부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방 주인은 경찰을 불렀고, 나는 난생처음 은팔찌를 차 보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파출소에 있던 경찰들은 내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것을 느꼈는지, 부모님이 오시자 별다른 조치 없이 훈방시켰다.



수 차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가족들은 나를 병원에 데려갈 생각을 했다. 공황발작으로 인해 응급실을 몇 번 다녀와서 그런지 대학병원을 예약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원래 대학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1차 병원에서 진료 의뢰서를 받아와야 한다.) 첫 진료는 엄마와 함께 갔다. 대기하는 중에도 엄마에게 사람들의 생각이 들린다고 얘기했다. 또 병원에는 아픈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좋지 않은 기운이 가득하다고 얘기했다. 그때까지도 엄마는 심각한 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진료 순서가 되었고, 혼자 진료실에 들어갔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차갑고 냉철해 보이는 여의사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나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를 전도해야만 한다는 강한 사명감에 빠져있었다. 그녀가 묻는 모든 질문에 무성의하게 대답했고, 그녀에게 물었다.


“종교가 있나요?”

 

나는 속으로 그녀가 무교일 것이라 생각했고, 불행히도 나의 빌어먹을 예상은 적중했다. 그 사실은 초능력이 있다는 나의 망상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녀는 종교가 없다고 말했고, 그 주제는 진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전도해야 한다는 임무(?)를 받았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나의 주장을 펼쳤다. 그녀는 나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더 이상 진료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때였다. 또 무언가 나를 몸을 통제하려고 했고, 너무나 충격적 이게도 나는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너같이 유능한 의사가 신을 섬겨야지. 너 같은 의사가! 내가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려는데 왜 말을 안 들어?”


믿기지 않겠지만, 불행히도 그 일은 실제로 벌어졌다. 그녀는 바르르 떨면서 보안요원을 부르는 비상벨을 눌렀다. 나는 보안요원에게 포박당했고, 진료실에서 쫓겨났다. 그녀는 보호자였던 엄마에게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얼마뒤 있을 제주도 여행 때문에 당장은 입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처방전을 받고 약을 타러 가는 그 순간에도 엄마와 실랑이를 했다. 원외 처방전이었지만, 원내에서 약을 수령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병원 밖에서 약을 타야 하냐며 엄마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간신히 나를 설득했고, 몇 주치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만약 그때 입원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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