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달과 구름

미운 아기 오리들

by 이고

별과 달과 구름

-미운 아기 오리들-

목 차


1장. 초록 연못의 별똥별

2장. 미운 회색 오리

3장. 별오리와 달오리

4장. 노란 깃털과 회색 깃털

5장. 나무 댐의 비버, 구름 호수의 백조

6장. 나무꾼의 집

7장. 닭보다 알이 먼저

8장. 하얀 연못

9장. 별과 달과 구름

10장. 초록 연못의 달



“야 잘 좀 잡아봐, 어? 자꾸 퍼덕거리잖아!”

- 이놈이 왜 이리 말썽이야! 어? 또? 빨리 잡아!

“꽉 눌러놔, 기다려봐! 이걸 잡아서…….!”


―투둑―



1장 : 초록 연못의 별똥별


제 고향은 수련의 잎사귀가 초록빛 그늘을 만들고, 부서지는 햇살만큼 반짝거리는 잔잔한 물결이 이는 연못입니다. 우리는 이곳을 초록 연못이라고 부릅니다. 제 첫걸음마 헤엄, 발끝에 닿았던 살랑거리는 물고기 친구들의 간지러운 꼬리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어머니의 포근하고 보드라운 하얀 깃털을 기억해요. 눈을 뜰 때마다 너무 화사한 세상에 신비함보단 겁이 났지만, 기분 좋게 바스락 거리는 나뭇가지, 뽀글대는 연못의 숨 방울, 형제들의 달달한 아기 냄새, 흙내 나는 친구의 웃음소리까지 모든 게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나른하게 쓰러지게 하는 그 모든 아득한 것들을, 나는 기억합니다.




어느 날 형제 오리 중 한 명이 짧은 부리를 흔들며 물었습니다. “엄마 저게 뭐예요?”


형제가 가리키는 쪽엔 옆집 아줌마 오리가 조금 커다란 잿빛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옆집에 먼저 태어난 친구 오리들은 경계의 눈빛으로 알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엄마오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처음 보는 알인데, 나도 잘 모르겠구나.”

형제오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징그러워요! 색이 왜 저렇죠?”

엄마오리는 날개로 아기오리들을 감싸며 말했습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란다. 아가야 너희 친구고,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때였습니다.

잿빛 알을 깨고 까만 부리가 빼꼼거렸습니다. 아기 오리들보다 몸집이 두 배는 크고, 우리들과 같은 노란 털이 아닌 잿빛 털과 까만 부리, 까맣게 빛나는 눈이 어색한 분위기에 흔들거리며 불안해했습니다. 주변의 아기 오리들은 소리쳤습니다.


“으익, 이게 뭐야, 너 누구야!”

- 잰 뭔데 왜 저렇게 생겼어!


옆집의 아기 오리들은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파닥거렸습니다. 옆집 아줌마 오리는 눈을 지그시 감다 뜨더니 그 회색 오리를 하얀 털로 품었습니다. 갈 곳 잃은 휘청거리는 아기의 발걸음이 그제야 폭 안겼습니다.


옆집 오리 식구들은 그 후에도 해가 질 때까지 어수선하게 소란스러웠습니다.



따뜻한 꽃망울이 올라올 때면 가끔 초록 연못에는 은하수가 찾아옵니다. 엄마는 은하수가 고향을 찾아가는 별들의 긴 행렬이라고 했습니다. 떨어져 지낸 별들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했죠.


저는 밤하늘의 동그란 달을 보며 옆집의 회색 오리가 생각나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은하수에 갈라진 검은 밤하늘은 그 오리의 부리 같았고, 유난히 은색 달빛을 비추는 연못의 찰랑거림이 그 오리의 깃털 같았죠.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뭉쳐있는 듯 떨어져 있고, 서로를 뽐내며 반짝이지만, 오히려 외로워 보였습니다.


순간 놀라운 광경이 보였습니다! 밤하늘을 가르고 은하수로 날아가는 별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별을 보고 놀라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저건 뭐예요? 방금 별이 날아가 버렸어요!”

- 저건 별똥별이란다.


“별똥별이요!?”

- 그래, 별들은 가끔 저렇게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단다.


난생처음 보고 듣는 별에 대해 저는 흥분해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왜죠? 왜 가는 거죠?”

- 음……. 보고 싶은 별이 있을 수 도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을 수 도 있고…… 이유야 많겠지만, 다시 돌아오는 별들은 많지 않단다.


“혼자서요? 혼자 어디를 가는 걸까요? 제가 볼 때 가장 희미하고 작은 별이었어요!”

- 아가야, 우린 언젠가 모두 혼자가 되고, 그때가 되면 스스로 모든 걸 이겨내며 살아야 한단다.


엄마오리는 따뜻한 손으로 머리를 쓰담았습니다.


- 우리 아가도 언젠가 씩씩하고 튼튼한 오리가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네가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쓰러지지 말고 살아야 한단다.


처음 본 광경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도 있었지만, 엄마의 나지막하고 진지한 목소리에 그새 무서움이 느껴졌습니다.

“혼자. 혼자는 무서워요 엄마. 나는 엄마가 있잖아요.”

- 그래, 엄마가 옆에 있을 거야. 아가! 저기 가장 밝은 별이 보이니? 엄마를 비추는 별이란다.


엄마오리의 날개 끝에는 밤하늘에서 가장 크고 밝은 별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저 별처럼 늘 네 옆에 있을 거란다. 걱정 마렴. 그래도 멋진 오리는 혼자서도 씩씩해야겠지?”

- 엄마도 저 별처럼 멀리 가버리진 않겠죠?


아직도 불안한 아기오리의 꼬리털이 바들거릴 때, 엄마 오리는 지긋이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후후, 아가야. 우리는 모두 별이 된단다. 엄마는 저기 가장 큰 별처럼 언제 어디서든 너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언젠가 너도 별이 되어 엄마에게 찾아오렴, 언제든 널 기다리고 있을게. 알겠지?”


저는 갸우뚱거렸지만, 저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미소가 너무 따뜻했기에 웃으며 당차게 말했습니다.


“네! 가만있는 다른 별들이 아닌. 별똥별이 되어 엄마가 어디 있든 내가 날아갈 거예요!”


엄마의 미소는 따뜻한 포옹으로 이어졌고, 엄마는 저의 눈빛을 바라보다 하늘의 가장 큰 별을 보며 방긋 웃었습니다. 엄마의 눈가에 별이 담겼습니다.


그날 밤, 많은 별들이 날아다녔습니다. 저는 그 별들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잘 날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잠들었습니다.





2장 : 미운 회색 오리


초록 연못에서 첫 수영을 배우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겁은 나지 않았어요. 형제 중에 몇 명은 서성거리며 진흙에 발을 구르고 있었지만, 엄마의 꽁지깃을 보며 곧게 엉덩이를 치켜들고 물로 뛰어들었죠. 가슴팍까지 전해지는 맑은 물결의 간질거림과 휘젓는 발끝마다 느껴지는 시원한 감촉. 연못이 환영한다고 웃어주는 듯 자연스럽고 반가운 기분이었습니다.


형제들과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을 때, 진흙에 뒤범벅이 된 옆집의 회색 오리가 보였습니다. 회색 털에 엉겨 붙은 진흙덩이가 무거운 듯 비틀거리는 회색 오리의 모습을 보고 옆집 오리들이 야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야 변종아! 너는 우리랑 달라! 그냥 그렇게 계속 진흙 속에서 살아!”

"야……. 말이 심한 거 아냐? 엄마 말 못 들었어? 그래도 형제인데, 얘들아~ 좀 말려봐”

“내버려 둬, 신경 쓰지 마. 어젯밤 회색 털이 자기한테 묻었다고 저러는 거야”

“더러운 회색 털이 묻으면, 똑같이 변종이 될 거라고 기겁해서 화내는 거라고”

“저 회색털 뭉치는 덩치도 크면서 털은 또 엄청 날리잖아! 털이 못 날리게 진흙을 묻혀야 해!”

“엄만 왜 저런 알지도 못한 놈을 형제라고 하는 거야! 쳇!”


회색 오리는 쏟아지는 야유와 비방에 고갤 숙이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그때 옆집 아줌마 오리가 기겁하며 뛰어왔습니다.


“아가! 누가 이랬니? 꼴이 이게 뭐야!”

- 넘어졌어요…….


옆집 아줌마 오리는 다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회색 오리를 감싸고 옆집 오리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이 녀석들아! 막내가 이렇게 엉망인데, 다들 수영만 하고 있고! 형 누나가 돼서 어쩜 이러니!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지 않았니?!”


옆집 아줌마 오리의 엄한 꾸중이 무서워 옆집 오리들은 옹기종기 뭉쳤습니다. 주눅 든 오리들 중 한 명이 소리쳤습니다.


“엄마! 그놈은 우리 형제가 아니에요! 그놈 털이 날려서 우릴 모두 잿빛으로 만들 거예요!”

- 너 이 녀석들! 그게 무슨 소리야! 혼나야겠구나! 네 녀석들! 오늘 저녁은 없을 줄 알아라!


옆집 오리들은 구시렁거리며 흩어졌고, 옆집 아줌마 오리는 회색 오리를 연꽃 바위 뒤로 챙겨 데려갔습니다. 저는 옆집 아줌마와 함께 걸어가는 쓸쓸한 회색 오리의 뒷모습에 은근슬쩍 형제들을 벗어나 연꽃 바위 뒤로 헤엄을 쳤습니다.


연꽃 바위 뒤 얇은 물가에서 옆집 아줌마 오리는 황급히 부리로 회색 오리의 진흙을 털어내고 있었습니다.


“엄마, 전 괜찮아요. 제가 뒤뚱거리다가 넘어진 거예요…….”


옆집 아줌마 오리는 고갤 숙인 회색 오리의 말에 안쓰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아가, 날개 피렴. 누가 뭐라도 넌 내 자식이고, 너는 남들보다 특별한 오리인 거야! 너의 그 회색 털은 마치 이 초록 연못을 별빛으로 만드는 회색 구름과 같지!”


- 별빛……. 회색 구름이요……?


“그럼~ 하얀 연못이라고 하얀 별들이 잠시 땅에 내려오는 날이 있단다. 그때가 되면 온 세상이 새하얗게 빛이 나지! 여기 초록 연못도 별들이 내려와 별빛의 연못이 된단다.”


처음 듣는 하얀 연못에 대한 얘기에 커진 내 눈만큼, 놀란 회색 오리도 풀죽었던 고개를 들었습니다.


“근데 아가~! 그렇게 세상을 하얗게 빛내는 별들을 누가 내려오게 하는지 아니? 회색의 커다란 구름이란다. 우리 아가의 회색 털같이 풍성하고 부드럽지~!”


- 회색 커다란 구름이요?


“그래~ 우리 아가를 미운 오리라고 주변에서 손가락질하지만 절대 기죽을 필요가 없어요~! 사실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런 거란다~ 별들이 내려오는 커다랗고 넓은 회색 구름을 미운(彌雲)이라고 한단다.”


- 미운…… 별을 내리는 회색의 구름!


옆집의 회색 오리는 까만 부리를 까닥거리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푸른 하늘에 구름과 구름사이로 아름다운 날갯짓의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갔습니다.





3장 : 별오리와 달오리


달은 부끄럼이 많나 봅니다. 밤하늘 뒤로 숨었지만 어색하게 반쯤 나온 얼굴이 유난히 말갛습니다. 매일 밤 저는 혼자 연꽃 바위에 앉아 달을 부리로 다가 대고, 별과 날아다니는 별똥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아기 젖살이 빠지지 않아 작고 통통한 저의 날개를 파득거리며 흔들어봅니다. 아득하고 넓은 밤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서, 달과 별로 다가가고 싶어 조그마한 오리발로 힘껏 뛰어봅니다.


―풍덩!―


발을 헛디뎌 초록 연못으로 미끄러져 빠졌습니다. 밤하늘이 잠긴 초록 연못은 너무 차갑고 더욱 깊은 것 같았습니다.


“어푸, 어푸, 발이 말을 안 들어! 어푸어푸! 꽥꽥!”


너무 당황스러워 그간 배운 수영기술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왜 이리 몸이 무겁고 말을 안 듣는지, 차오르는 숨에 움직이지 않는 발,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어푸 어푸푸! 엄마! 살려주세요! 오리 살려요! 꽥꽥!”


연못 깊숙이 진흙 속에 커다란 눈동자가 껌벅거립니다. 송사리 친구들이 제 주변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죠. 송사리들이 소리쳤습니다! “메기다! 진흙 메기야!”


진흙 메기는 크기가 엄마만큼 크다며, 혼자 밤에 수영하지 말라던 엄마의 당부가 기억납니다. 뿌연 진흙 먼지가 연못 깊은 곳부터 요동쳐 올라오고, 저는 더이상 소리도 지를 수 없을 만큼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시커먼 주둥이가 제 목덜미를 낚아챘습니다.


“꽤액! 으윽!”


파닥거리는 몸을 조이듯 검은 주둥이는 저를 끌고 갔습니다. 달빛이 비친 연못에 세찬 물결을 마지막으로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오리야! 저기……. 오리야! 정신 차려!”


가물가물한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연꽃 잎사귀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새까만 부리질이 머리를 톡톡, 안절부절못하는 파닥거리는 회색의 날개가 보였습니다. 옆집에 따돌림을 당하는 막내 회색 오리였습니다.


“어? 오리야? 정신이 드는구나? 괜찮니?”

- 어……. 어……. 괜찮은 것 같아. 네가 날 구해줬구나……?


“……. 아……. 음……. 그래.”

- 넌 옆집에 막내 오리구나?


“어……. 음……. 어……. 그 괜찮으면, 난 갈게……. 아 털 떼 줄게…….”


회색 오리는 고갤 숙이고 얼굴을 마주치지 않다가 저를 구하느라 묻은 자신의 회색 털을 떼어주며 성급히 자리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잠깐만! 회색 오리야 잠깐만! 날 구해줘서 고마워!”

- 어……. 아냐…그… 난 갈게…


“잠깐, 잠깐만 오리야! 난, 나는 버드나무에 사는 다섯째 오리야! 형제들은 나를 별오리라고 불러! 밤마다 별을 보러 다니거든……. 너는 뭐라고 부르니?”


- 아……. 나는 흰 연꽃 근처에 사는 막내 오리야. 형제들이 변종이라고…… 변종 회색 오리라고 불러, 난 변종이거든……. 난 이제 가볼게……


회색 오리는 고갤 떨어뜨리고 힐끔힐끔 눈을 돌리며, 풀 죽어 읊조렸습니다.


“잠깐만! 기다려봐! 이렇게 몸이 다 젖어서 집에 가면 분명 혼날 거야! 나랑 같이 몸을 말리고 들어가자! 혼자 있으면 무섭잖아!”


고갤 숙이고 우두커니 서있는 회색 오리를 부리로 끌었습니다. 가까이서 본 회색 오리는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물에 젖어 그런지 잿빛보단 빛나는 은빛이었고 새까만 부리가 저의 노란 부리보다 배나 컸습니다.


“구해줘서 고마워, 발을 헛디뎌서 헤엄을 못 치겠더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 있던 거야? 나도 몰래몰래 나오는 편인데… 너도 별 보러 왔니?”

- 아니……


“그럼 배가 고팠구나! 저 옆쪽에 토끼풀이 많아! 같이 먹을까?”

- 난……. 집에서 못 자……


“집에서 못 잔다고? 왜…….?

- 형제들은 내 털이 묻으면 나처럼 된다고……. 나가서 자라고…… 밀어내.


“아줌마한테 말해서 혼내버려! 그런 게 어디 있어!”

- 엄마를 잠에서 깨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죄송해서... 난... 그냥 밖이 편해…….


“너 정말 착한 오리구나! 헤헤”


어쩔 줄 몰라하는 회색 오리의 부리를 저의 작은 부리로 툭치며 웃었습니다. 회색 오리는 온몸 구석구석이 형제들이 쪼아댄 터라 털이 빠지고 상처가 많았습니다. 저의 작은 부리질에도 놀란 듯 살짝 움츠렸지만, 저의 웃음을 보고 고갤 숙여 옅은 미소를 뗬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너는……. 왜 집에 안 가?”

- 별을 본다고 했잖아! 나는 별을 보는 게 좋아! 특히 별똥별을 보는 게 좋아!


“별똥별?”


별똥별을 처음 듣는 듯 갸우뚱거리는 회색 오리였습니다.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작은 별이야!”

- 별이……. 날아?


“잠깐 누워봐! 누워서 밤하늘을 보면 별들이 날아다니는 걸 볼 수 있어!”


우리는 연꽃 잎사귀에 나란히 누워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별이 날아올랐습니다.


“봤어? 봤지! 저게 별똥별이야!”

- 엇!


놀란 회색 오리의 눈망울과 까만 부리가 넋을 잃고 벌어졌습니다.


“봐! 저기! 저것도 날아간다!”

- 와! 봤어! 저게 별똥별이구나!


“그래! 맞아 하늘을 나는 별! 별똥별이야!”

- 근데 어디로 가는 거지? 사라졌어


저는 엄마와 나눴던 별똥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듣는 내내 회색 오리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그 밤하늘 같은 눈망울 속으로 별똥별이 날아다닐 때마다, 물에 젖은 회색의 날개가 은빛으로 파닥거렸습니다. 저는 연꽃 바위에 올라가 통통한 날개를 피고 가슴을 힘껏 부풀리며 외쳤습니다.


“나는 별똥별이 될 거야! 그래서 저 밤하늘을 날아 달도 만나고, 별도 만나고! 이 세상 어디든 날아갈 거야!”

- 와……!. 별이 된다고? 날아다니는 별똥별? 멋져……!


한창 동안 우린 달 아래에서 연꽃잎을 기울이며 별똥별에 대해 신나 얘기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빤히 보며 듣고만 있는 회색 오리가 이렇게 오래 한 대화한 게 처음이라는 기분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너……혹시 형제들……. 아무랑도 안 친한 거니?”

- 형제……. 형, 누나들은 내가 형제가 아니래……. 나는 변종 회색 오리야...


기죽은 목소리에서 회색 오리의 움츠러든 마음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래! 그럼, 형제는 없다 치고, 나랑 친구 하자!”

- 친구……?


“응! 나랑 친구가 되는 거야!”

- 별오리야……. 나랑 친해지면 너도 혼이 날 거야……. 초록 연못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오리는 없어……. 네 형제들에게 혼이 날 거야……


회색 오리는 눈을 떨어뜨리며,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별똥별 이야기 알지! 보고 싶은 이에게,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가는 별! 나는 별똥별이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별오리지!”


“회색오리야…… 나는 네가 변종으로 보이지 않아. 너는 좀……. 수줍음이 많고…… 음…… 우리보다 좀 크고 회색? 아니다! 은색 오리야! 그냥 그런 거야! 히히”


아직 기가 죽은 회색 오리는 고갤 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서 회색 오리를 찾았습니다.


“넌 달이야!”

- 응…? 달?


“그래! 넌 저렇게 커다랗고, 은색에, 부끄럼이 많아서 매번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는… 넌 딱 달이야!”


저는 달을 가리키며 크게 웃었습니다.


“저기 봐! 너랑 똑같지? 저 커다란 게 부끄러워서 밤하늘에 얼굴을 반만 비춘 모습이 딱 너잖아! 헤헤! 닮았지?”


회색 오리는 저의 웃음소리가 닿는 하늘을 보며 방긋 웃어 보였습니다.


“나 사실… 아줌마가 하는 말을 들었어. 미운(彌雲) 오리. 별을 품은 구름 이야기. 넌 달오리면서 미운 오리, 미운 달오리야! 나는 별똥별, 별오리!”


- 별오리…


“이 밤하늘 연못의 친구인 거지! 내가 나중에 별똥별이 돼서 달님인 너에게 날아가느라 힘들면 네가 구름이 되어 나를 업어주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줘, 그럼 되겠네!”


- 미운 달오리……. 별오리… 친구……?


깔깔거리는 모습에 회색 오리는 기분 좋은 듯 미소가 부리에 번졌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달과 별과 구름을 함께 했고, 연못과 밤벌레의 노랫소리를 함께하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꽥꽥 웃음소리에 개구리도 궁금한 듯 까끙거리고, 살짝만 엿듣고 싶은 지 물 밖으로 꼴깍대는 송사리들. 밤하늘을 담은 은하수 연못에서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잘 가! 내일 보자 달오리야!”

- 응…….! 잘 가 내일 보자 별오리야!


우리는 밤마다 만나 이슬을 머금은 토끼풀을 먹고, 통통하게 오른 배를 두드리며 싱그러운 풀 향기를 이불 삼아 잠들었습니다. 이젠 내일 보자는 인사에 회색 오리는 더 이상 어색한 웃음은 사라졌고, 집으로 돌아가는 회색 오리의 자박거리는 가벼운 발걸음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진흙 없이 빛나는, 은색의 뒷모습이었습니다.


뽀송뽀송 마른 털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둥지 안 형제들과 엄마가 엄청 부산한 눈치였습니다.


“너 어디 갔었어! 엄마가 엄청 찾으셨어!”

“다섯째야! 너 여우가 물어간 줄 알았어!”

“별오리 저 녀석! 또 밤에 몰래 별 보러 다녀왔겠지!”


형제들은 꽥꽥거리며 다그쳤고,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습니다.


“나간다면 말을 해야지, 걱정했잖니… 밤새 어딜 다녀온 거니?”

- 별을 보다가……. 밖에서 잠깐 잠들었어요.


형제들은 부리로 저를 콕콕 쑤시다가 놀라 소리쳤습니다.


“엇! 이게 뭐야!”

“으아! 회색 털이야! 옆집 회색 털이야!”

“꽤액! 건들지 마! 다가오지 마!”


형제 오리들은 등 뒤에 끼어 묻은 회색 털 쪼가리를 보고 놀란 듯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회색 털을 떼어주며 물었습니다.


“아가, 이게 뭐니…?”

- 아……. 이건 옆집에……. 제 친구 깃털이에요……


형제 오리들은 기어코 그렇구나라는 두려운 표정으로 엄마 뒤로 숨고, 털을 찾았던 형제 오리는 부리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울었습니다.


“으앙! 난 끝났어! 변종이 될 거라고! 회색 털이 돋아날 거야! 꽤액~ 난 끝났어~!”

- 아니야! 내 친구는 변종이 아니야! 달오리야!


우리가 투덕거리는 동안 엄마는 지그시 눈을 감다가 한숨을 쉬며, 조용히 떼어놓은 회색 털을 집어 둥지 구석 안 보이게 치웠습니다.


“엄마! 만지지 마요! 큰일 났다! 엄마도 만졌어! 다 끝이야! 변종이 될 거라고! 저놈 때문이야!”

- 아니야 이 겁쟁이들아! 내 친구야! 변종이 아냐! 너넨 다 나쁜 오리들이야!


“아가! 너희들! 형제끼리 무슨 말버릇이니! 멈추지 못해!”


엄마는 호된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처음 본 엄마의 화난 모습에 저는 기가 죽어버리고 서러움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내 친구란 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 아가! 너…!


저는 그 자리에서 둥지를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엄마의 안쓰러운 표정이 뒤로 느껴졌지만 차마 돌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왜 전부 친구를 욕하는지 이해가지 않았고, 서러운 마음에 뾰로통하게 땅을 발로 치댈 뿐이었죠.


진흙 범벅이 된 오리발만큼 마음도 싱숭생숭할 때 커다란 그림자가 발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깜짝 놀라 올려본 하늘에 구름같이 큰 새 한 마리가 날아갔습니다. 해를 가릴 만큼 큰 새를 처음 봐 신기한 마음에 열심히 뛰었지만 짜리 몽땅한 발로는 큰 새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큰 새는 구름 사이로 초록 연못을 지나 멀리 산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4장 : 노란 깃털과 회색 깃털


초록 연못은 우리들의 수영장이었고, 풀과 물고기들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웬만큼 수영에 자신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수영이 무섭거나 어색해지지 않았을 때, 저는 오동통한 날갯죽지를 피며 연꽃 바위에서 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물론 물에 떨어져 부레옥잠을 부여잡고 젖은 몸을 추스르길 반복했지만 저는 연습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별똥별이니까요. 한 동안 물에 젖어 푸득 거릴 때, 물가에서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그곳에는 옆집 오리들과 우리 형제들이 왁자지껄 싸우고 있었습니다.


“너희 변종 놈이 얼마 전에 회색털을 뿌리고 다녔어!”

- 무슨 소리야! 그놈은 우리와 관계없어!

“너네 막내 놈이 자꾸 물을 튀기잖아!”

- 그 녀석은 변종이야! 우리 형제가 아니란 말이야!


큰 덩치의 달오리가 물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우리 형제 오리에게 물을 튀긴 모양입니다. 달오리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구석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미안해, 물이 튀긴 줄 몰랐어……. 용서해줘.”


옆집 오리들이 고갤 숙인 달오리에게 다그쳤습니다.

“너는 항상 사고를 치는구나! 물가 말고 저기 진흙탕 주변에 있으란 말이야! 털도 안 날리고 좋잖아!”


우리 형제 오리 중 한 명이 튀어나와 말을 이었습니다.

“내 동생도 얼마 전에 너네 막내 털이 몸에 붙고 나서 자꾸 날겠다, 별이 되겠다, 정신이 나갔어! 우리 가족에게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


저는 그 순간 참을 수 없어 뛰어들었습니다.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저는 옆집 오리 형제들과 우리 형제가 얽힌 사이를 비집고 달오리의 앞에 섰습니다.


“수영을 하면서 물 좀 튀길 수 있잖아! 이 친구는 그냥 회색의 오리일 뿐이야! 그만해!”

- 넌 정말 쟤가 오리라고 생각해?


“그래! 오리야! 우리와 같아! 우린 모두 같은 오리라고!”

- 시커먼 부리에 시커먼 다리, 회색 털에 저 우둥퉁한 몸을 봐!


이렇게 날카로운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급하게 옆집 아줌마와 엄마가 달려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각자의 자식들을 자신의 뒤로 물러 세우며 말했습니다.


“우리 애들이 심한 것 같네요. 미안해요. 어서 너도 사과드리렴. 어서!”

- 저는 잘못 없어요! 회색 오리, 저 변종이!


찰싹! 엄마 오리는 날개 끝으로 형제 오리의 엉덩이를 쳤습니다. 그리고 화가 나신 표정으로 등을 떠밀었습니다. 눈물이 고인 형제 오리는 우물 쭈물대다가 낮게 읊조렸습니다.


“미안해……. 죄송합니다…….”


초록 연못의 시끄러웠던 회색 오리 사건은 이렇게 사과로 마무리되었고, 맨 마지막으로 뒤따라 둥지로 돌아가던 달오리의 축 처진 뒷모습에 저는 형제들에게 더 많은 화가 났습니다.


저는 그 사건에서 달오리를 편들었다는 이유로 변종이 되었다는 놀림과 함께 형제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물고기도 가장 작은 것으로 받게 되고, 풀을 뜯어먹으려 해도 형제들이 가로채가는 경우가 많았죠. 몇 번의 엄마의 만류와 꾸중이 있었지만 형제들의 따돌림은 뒤에서 일어났기에 매번 엄마가 신경 써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따라 엄마가 움직이는 시간이 적고 날개 깃털이 조금씩 빠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언제나 촉촉하던 엄마의 부리가 갈라지고, 엄마 등에 타서 초록 연못을 도는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형제들에게 떨어져 연꽃 바위에서 나는 연습을 하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실 대부분 혼자 놀고, 먹고, 자고, 밤이면 별을 보며 지냈습니다. 요새 달오리는 밤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별똥별을 기다리던 중 바위 구석지에서 달오리가 터벅터벅 힘없게 걸어왔습니다.


“달오리야! 무슨 일이야? 요즘 왜 이렇게 보기 힘들어?”


달오리의 몸은 전 보다 좀 더 큰 모습이었지만, 잿빛 털이 듬성듬성 빠져있고, 우울하고 초췌함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달오리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말을 했습니다.


“별오리야, 나는 떠날 거야.”

- 그게 무슨 소리야? 떠나다니? 그리고 꼴은 왜 이래? 형제들이 또 괴롭힌 거야?


“아냐, 형제들은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아. 근처에도 안 오거든. 털은 그냥…… 빠지더라고.”

- 근데 왜 떠난다는 거야?


“나는 변종… 맞는 것 같아. 아니, 사실 알고 있었어. 나는 오리 형제들과 같이 있으면 안 좋은 일만 생겨. 그래서 여길 떠날 거야.”

-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내 모습을 봐, 털들이 빠지고 이상하게 온몸이 쑤시고 아파.”

- 그건…


“엄마도 처음과 다르게 날 어색해하셔, 물론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시지만, 그 눈빛 속에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있어.”

-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리고… 나 때문에 누군가 피해 보는 건 나는 원하지 않아.”

- …….


“별오리야… 그간 고마웠어. 나에게 친구가 되어준 건 너뿐이었어. 너와 함께 했던 별과 달, 하늘과 연못 모두 잊지 않을 거야.”

- 달오리야……. 가지 마.


“별오리야, 너는 정말 별똥별이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알고 있어. 네가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밤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될 거라는 걸.”

- 달오리야…….


“그때, 우리가 처음 봤던 그 연못을 기억하니?”

- 초록 연못이 밤하늘을 담고 은하수 연못이 되었던 그때 말이야?

“나중에… 나중에… 내가 다시 널 찾아올게, 은하수를 따라서 너에게 갈게 별오리야.”


달오리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몽글몽글하게 일렁였지만 어느 때보다 굳게 빛났고, 저는 달오리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노란 털 품 안에서 가장 큰 깃털을 뽑아 건넸습니다.


“이거 받아……. 나의 첫 깃털이야. 다시 볼 때까지 꼭 잘 가지고 있어 줘.”


노란 깃털을 받은 달오리는 자신도 듬성듬성 빠진 회색 털 사이에서 깃털을 뽑아 나에게 건넸습니다.


“우리… 꼭 은하수 연못에서 다시 만나자.”

- 그래, 고마웠어, 별오리야.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일렁이는 눈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뒤돌아선 달오리에게 억지로 싱긋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내일…보자… 달오리야.”


달오리는 반쯤 얼굴을 비추며 싱긋 웃더니 인사했습니다.


- 그래…내일 보자…! 별오리야.


뒤돌아 걸어가는 달오리의 발걸음이 처음 본 달오리의 처진 어깨보다 그나마 가벼워 보였습니다. 달님도 헤어짐이 안쓰러운 듯 그날따라 더욱 밝게 비추었습니다. 저는 달오리가 물푸레나무 언덕을 넘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몸은 구멍이 난 듯 밤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데, 손에 쥔 회색 깃털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져 저는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저는 노란 깃털을 뽑았던 털 품 안으로 회색 깃털을 껴안고 커다란 회색 구름이 된 듯, 별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습니다.




혼자 남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이었을까요, 달오리와의 약속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연꽃 바위에 이끼가 닮아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형제 오리들은 유유히 연못 위를 떠다니며 손가락질했습니다.


“저 바보가 뭐하는지 모르겠네."

"변종이 떠나더니, 별종만 남았어.”

“내가 말했잖아, 변종과 어울리면 바보가 된다니까?”

“야 이 바보야! 그런다고 네가 날 수 있을 것 같아? 크크크”


실패와 별개로 도전마저 비웃음 받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저는 많이 실망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열심히 연습했지만 전보다 확연하게 나아지지 않았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날개는 짧고 통통해 마냥 추락하기만 했습니다. 하늘의 하얀 구름처럼 가볍게, 풀 사이를 뚫고 부서지는 햇살처럼 날카롭게, 바람을 느끼며 날 수 없을까. 저는 뛰었습니다.


―파닥파닥, 풍덩!―


“꽥꽥꽥! 아하하하! 혼자 또 왜 저러는 거야?”

- 깔깔! 저 바보 좀 봐!

“오리가 아니라 개구리 아니야? 하하하”


비웃음은 흠뻑 젖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창피하고 분한 마음은 물먹어 무거워진 가슴 털을 털어내며 꼭 움켜쥔 오리 발가락으로 매번 연꽃 바위에 다시 올랐습니다.


“또 하려고? 아주 별난 오리야!”

- 변종은 아니지만 별종이구나! 하하하!

“개구리 오리야 그만 뛰어라! 깔깔!”


모두에게 단 10초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아니 단 5초라도 연못 넘어 비웃고 있는 녀석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날아갈 수 있다면. 앙다문 부리를 바들바들 떨며 다시 자세를 잡았습니다.


“보여줄 거야. 난 별똥별이야!”


힘차게 바닥을 차면서 뛰어올랐습니다.


―미끌, 후닥닥 쿠콩콩―


이끼가 닮아버린 연꽃 바위는 반질거렸고, 작디작은 발톱에 넓은 오리 발바닥은 바위에서 미끄러져버렸습니다.


“어? 야 별오리야!”

- 별오리가 다쳤어!

“괜찮아? 별오리야! 정신 차려!”


형제 오리들의 외침이 흐릿하게 들리고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에 형제들이 혀를 차며 몸을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엄마 오리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가! 정신이 좀 드니?”


“별오리가 깨어났다!”


“엄마……? 이게 무슨……?”

- 너 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졌어! 너 죽은 줄 알았다고!


“아가…… 괜찮은 거니?”

- 엄마…죄송해요…….


“아가, 위험하게 왜 그랬니? 요즘 바위에서 뛰어내린다면서.”

- 별…별똥별이 될 거예요…….


엄마는 눈을 감고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 고갤 젓고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아가……. 이젠 그만 연꽃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하지 말거라.”

- 뛰어내리는 게 아니라, 날아오르는 거예요!


“아가……. 이젠 그만하렴. 앞으로 그런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말거라.”

- 엄마! 안돼요, 저는 꼭……!


“그만!”

- 엄…마…….


“그만하라고 엄마가 말…! 콜록! 콜록!”


엄마는 기운 없이 콜록대며 날개를 접고 주저앉았습니다.


“아가! 엄마 말 들으렴. 우리는 날 수 없단다.”

- 엄마, 난 할 수 있어요! 제 날개를 보세요! 전 보다 더 커진……! 아얏!


고갤 돌려 보니 날개가 살짝 꺾여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왼쪽 무릎도 까져 풀로 동여맨 상태였죠.


“엄마는 네가 더 이상 다치는 모습을 볼 수 없단다. 이젠 제발. 다른 형제들과 지내며 오리답게 살 수 없겠니? 부탁이란다.”

- 엄마, 저는 아직…….! 아! 이거 보세요! 나도 엄마 같은 새하얀 깃털이 쏟아 올라요! 조금만 있으면…….!


저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언제부터 이렇게 달라진 거죠. 부스스하게 마른 부리와 눈가의 주름, 듬성듬성 빠진 깃털. 그 폭신하고 따뜻했던 품이 더 이상 없을 것만 같은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아가, 엄마는 속상하단다. 네가 너무 걱정된단다. 나는 것은 이제 그만두고 수영을 더 열심히 하렴...”


엄마의 변한 모습과 간절한 목소리에 어떠한 반문도 할 수 없었지만, 수긍을 하자니 갓 나온 깃털들은 아직 빳빳하기만 했습니다. 어리광을 부리지도 못하겠지만 세상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저의 연못은 노란 품 안의 회색 깃털처럼 마냥 혼자 겉도는 기분이었습니다.





5장 : 나무 댐의 비버, 구름 호수의 백조


나무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어른 나무들이 그간 파랗게 흔들거리던 마음을 다잡고,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각양각색의 화려한 깃털을 갈아입는 계절이죠. 유난히 수줍은 작은 나무들은 바람에 전한 서로의 속삭임에 낙엽 깃털을 날리며 연못을 빨갛게, 노랗게 물들입니다. 작년의 푸른 새싹이 이제 어엿한 가지와 든든한 뿌리를 내렸고, 새로운 아기 나무가 될 도토리, 밤, 산수유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굴러다닙니다.


초록 연못의 아기오리들도 나무처럼 더 자랐고, 새하얀 깃털의 옷을 갈아입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물에 더 잘 뜬다며 싱글벙글 들떴고, 다소 차가워진 연못물은 개운한 세수로 더 크고, 말똥거리는 눈을 갖게 했습니다. 세 개의 숲과 연못을 겪다 보니 우리 오리들은 의젓한 자식들로 자라, 엄마에게 물고기와 싱싱한 풀을 찾아 드렸고, 엄마는 더 이상 자식들을 혼내거나 큰소리 낼일 없이 작고 마른나무처럼 가끔 이는 바람에 기침만 하실 뿐이었습니다.


먹이를 다 찾고, 형제들이 물가에서 쉬고 있을 때, 저는 남몰래 비버 아저씨의 나무 댐으로 갔습니다. 연꽃 바위만큼 높으면서 튼튼하고, 미끈거리지 않았죠. 저는 그곳에서 물가로 뛰어내리면서 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저 아이가 또 왔구나.”

- 어머~어머~ 그 별종 오리야 쟤가?


“이 시간쯤 되면 항상 오지”

- 아니 댐 위에서 저렇게 뛰어다녀도 되겠어요?


“어허! 이 사람이, 나 몰라서 그래? 여섯 개 숲 전쯤인가? 비 엄청 왔을 때! 그때도 안 무너진 댐이야!”

- 또! 또! 또! 그 소리네, 그게 뭐 당신 혼자 했소? 나도 하고, 건넛집 비버 양반도 같이한 거지!


“에헴……. 저 댐은 내 인생의 역작이다 이 말이야! 장인을 의심하지 말어!”

- 그럼 여기 살지, 왜 굴로 옮겼소?


“……. 요새 이빨이 좀 시려서.”

- 허이고~ 근데 저 오리는 왜 자꾸 저기서 날뛴대요?


“소문으로 뭐라나? 날아서 어딜 간다던데?”

- 오리가 뭘 어떻게 날아? 오리가 날 수 있나? 응?

“좀 애가, 좀 그래, 별종이야. 괜히 뭐 건드리지 말자고.”


-우두둑! 와장창!-


“아이고 강물님! 이게 뭔 일 이래!”

- 뭐? 무슨 일이야!


내가 뛰어내린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시냇물을 막은 댐의 일부분에 나뭇가지가 무너져 물이 세기 시작했습니다.


“일 났네! 일 났어! 기어코 일을 벌이는구나!”

- 좀 진정 좀 해요 당신! 안 무너진다고 장인 어쩌고 그러더니!


“진정하게 생겼어! 아이고! 이걸 어째!”

- 그 예전에 갈아둔 썩은 나무가 낡아서 세는 거 아니에요! 그것만 고치면 되겠구먼!

“아… 그런가…….? 아너 그보다, 이놈의 오리 궁둥짝을 그냥!”


비버 아저씨는 다급하게 나뭇가지를 물어 물가로 뛰어들었고, 깨진 댐으로 달려가 빈틈을 신속하게 막았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장면에 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광경을 넋 놓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비버 아저씨는 잔뜩 심술 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이놈아! 왜 남의 댐 위에서 뛰어다니는 거야!”

- 죄송해요, 아저씨……. 제가 잘못했어요. 댐이 너무 튼튼해 보여서.


“튼튼……. 헤헤. 그건 그렇지. 튼튼하긴 하지, 나무가 썩어서 어쩔 수 없던 거지.”

- 아저씨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물을 막아내시는지, 전 정말 놀랐어요…….!

“에……. 에헴! 오리 주제에 보는 눈은 있구먼……. 뭐 이런 거 나한테는 뚝! 딱! 이면 떡! 하고 나오는 거지. 헤헤!”


비버 아저씨는 헛기침을 하더니 수염을 씰룩거리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옆에는 그리 밝진 않은 표정의 비버 아줌마가 말없이 아저씨를 흘겨보다가 한숨을 쉬고 굴로 들어가 버리셨습니다.


“이런 게 하루 이틀 해서 나오는 기술이 아니거든! 나무가 털을 수백 번 갈아입을 때까지 반복과 연습! 응? 고도의 집중력이 있어야 이런 기술이 나온다! 이 말이야!”

- 와……. 나무가 수백 번이나?!


“뭐……. 수백 번은 아니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피와 땀을 흘리면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장인의 기술이다! 이 말이야! 헤헤헤!”

- 오오, 아저씨 대단하세요! 진짜 그게 되는군요!


“잉? 뭐가 돼?”

- 노력이요! 정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거요!


“어……. 그렇지……. 되지..”

- 아저씨도 처음엔 좀 서투셨겠죠?


“어? 그렇지……. 뭐... 다 처음엔 서툴지. 근데 열심히 하면! 응? 나처럼 된다 이거야! 하하!”

- 이 댐이 원래 있던 게 아니었구나!


“그럼~ 이 댐이 물길을 막아서 초록 연못이 되는 거라고!”

- 초록 연못을 아저씨가 만드신 거라고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아무튼! 비숫하다고 볼 순 있지.”

- 대단해요!


다시 보니 더욱 거대하게 보이는 댐은 저의 날개와 가슴을 더 크게 만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비버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는 그간 혼자 느꼈던 실망과 좌절을 보상받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 댐을 짓게 된 건가요?”

- 뭐……. 가족이지……. 안사람이랑 내 새끼들 지낼 굴 한 칸이라도 있으려면. 기술이라도 배워야지 않겠어?



비버 아저씨는 비버 아줌마가 들어간 댐 옆 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나도 인마, 처음엔 댐을 잘 못 지었어! 댐은커녕 나무도 자를 줄 모르는 비버였지! 아버지랑 아저씨들한테 많이 혼났다! 헤헤헤…….”

- 아저씨도 못했었다고요?


“그래 인마, 근데 어쩌냐! 나 하나 믿고 사는 마누라랑 콩알 같은 새끼들이 있는데! 밤낮으로 나무 자르고 이어 붙이고, 이빨에서 피나도록 나무를 물었다. 내 인생 모든 걸 걸었다! 이 말이야! 야 내 이빨 보여? 원래 이게 네모났어!”


비버 아저씨는 입을 벌리고 이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빨은 세모났고 날카롭게 갈려있었습니다. 저는 놀라움에 날개에 힘이 들어가면서 저릿저릿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저씨, 간절하다면, 그리고 모든 걸 걸고 열심히 한다면 이루어질까요?”

- 그럼! 네 앞에 안 보이냐? 내가 바로 그 증거야!


“저는 날고 싶어요.”

- 음… 어?


“저는 날고 싶어요. 약속도 했어요. 별똥별이 되어야 해요. 친구도 찾아가야 해요.”

- 별똥별?


“밤하늘을 나는 별이요! 열심히 나는 연습을 해서 별똥별이 될 거예요!”

- 그……. 오리가 날 수 있나……?


“네? 저도 아저씨처럼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하면 할 수 있겠죠!”

- 어… 그렇지?

“사실 다른 오리 형제들은 제가 별종이라고 손가락질해요. 아무리 연습해도 오리는 날 수 없다며 놀리죠.”


비버 아저씨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매일 날개가 부서져라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죠. 그래서 제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었어요.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죠. 난 왜 이리 못난 오리일까. 이게 되는 걸까 스스로 되물으면서요.”

- 음……. 나도 소싯적에 그랬었지. 형제 비버들이 나무 하나 못 자르는 놈이라고 놀렸지.


“저는 꼭 날고 싶어요. 밤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서, 달까지 날아가고 싶어요! 정말 열심히 해서 꼭 날고 싶어요!”

- 인마, 네가 그렇게 간절하다면, 그리고 노력한다면 될 거야. 남들이 놀리고 손가락질하는 것에 신경 쓸 필요 없단다.


“정말요?”

- 인마, 날 봐라. 지금 이 나이에 아직도 댐 지을 수 있는 비버가 몇이나 될 것 같냐? 나 놀리던 비버 녀석들? 지금은 다 내 밑이야! 헤헤!


“오오!”

-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한다면,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반드시 날 수 있다! 노력하지 않는 놈들에겐 국물도 없어. 내가 널 다시 보니 너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헤헤헤!


“아저씨 고마워요!”

- 자식이 고맙긴~헤헤~


“아저씨 죄송하지만, 제가 여기 댐에서 더 연습해도 될까요? 여기만큼 튼튼한 곳이 없어요!”

- 후후 튼튼하긴 하지. 얼마든 해도 좋아~ 아니 근데 너…


그때 비버 아줌마가 굴에서 뛰어나왔습니다.


“이 양반이! 굴에 안 들어오고 뭐해!”

- 어?


“이 양반이! 애한테 뭔 소릴 그렇게 하는 거야?”

- 아니! 내가 뭘!


“얘! 너 여기서 놀지 말고 딴 데 가서 놀아라!”

- 어허!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애한테 왜 그래!


“오리 너 왜 자꾸 댐에서 뛰는 거니?”

- 아, 저는 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응 날아? 오리가 어딜 날아? 아무튼 여기서 뛰어다니지 마라!”

- 어허! 이 사람이! 그만 들어갑시다!


비버 아저씨는 비버 아줌마를 말리며 굴로 밀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 윙크를 하며 세모난 이빨을 드러내며 방긋 웃었습니다. 그리고 댐 쪽 가리키며 작게 속삭였습니다.


“인마~ 열심히 해라~헤헤~”


가족 중에서도 없었던 내 편인데, 오늘 처음 본 아저씨가 들어줬다는 것은 건 엄청난 기쁨이었습니다. 응원을 받는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요? 친구 하자는 제 말을 들은 달오리의 기분이 이랬을까요? 나무의 깃털들이 더 빨갛고, 더 노랗고, 하늘은 더 푸르고, 시냇물은 더 맑게 들리고 숲의 모든 게 더 확실하게 보이고 들리는 느낌. 알을 깨고 나와 처음 세상을 보았을 때보다 모든 게 환했습니다. 온몸에 깃털들이 하나하나 느껴져 당장이라도 뛰어 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댐에 올라가 연못을 바라보았습니다. 연못에 빠져 또다시 물에 젖을지라도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다시 할 테니까요. 어차피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날 수 있습니다.


여느 날과 같이 댐에서 뛰어 나는 연습을 할 때, 새하얗고 큰 새가 날아왔습니다. 큰 새는 나무 댐만큼 크고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더니 우아한 몸짓으로 시냇물에 목을 축이고 있었습니다. 처음 본 거대한 새에 저는 넋이 나가 물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그러다 큰 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꼬마야, 왜 그렇게 쳐다보니?”

- 아니 전, 그냥……


저는 너무 놀랍고 위축된 마음에 말을 더듬거렸습니다. 큰 새는 긴 목을 갸우뚱거리더니, 저에게 목을 쭉 내밀어 부리로 톡 건드렸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생각에도 없던 자기소개를 외쳤습니다.


“저는 초록 연못, 버드나무에 사는 다섯째 오리입니다!”


큰 새는 잠시 당황했는지 말이 없더니, 목을 꺾어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하하하! 재밌는 녀석이구나! 귀여운 자기소개였다! 물 마시러 온 거니? 어머닌 어디 계시고 혼자 있는 거야?”

- 엄마는 집에 계시고, 저는 나는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뭐?”


큰 새는 다시금 목을 갸우뚱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곤 부리로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저의 날개를 쓱 훑더니 말했습니다.


“너는 오리 아니냐? 왜 오리가 나는 연습을 하지?”

- 저는……. 별똥별이 될 거거든요. 그래서 나는 연습 중이에요!


큰 새는 위아래로 저를 훑어보더니, 몸을 젖히며 말했습니다.


“그래, 나는 구름 호수의 백조라고 한다. 구름 호수로 가던 중이지.”

- 구름 호수요?

“그래, 여기서 좀 떨어진 곳이지. 해가 뜨기 전까지 호수 위에 구름들이 모여 잔잔하게 쉬어가는 곳이란다.”


저는 하늘 위에 뭉게뭉게 뜬 구름을 올려보고 구름들도 쉬는구나 하며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달오리가 생각나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도 구름에 대하여 아는 게 있어요! 하늘의 별들을 땅 아래로 쏟아내,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내는 회색 구름에 대한 얘기요!”

- 회색 구름이라……. 음 그렇군……. 그 얘기구나! 온 세상이 별빛으로 하얗게 빛나는 날이 있지! 흐르는 시냇물도 쉬고, 나무도 조용히 잠들고, 모든 숲과 강이 그 별빛을 기다리며 고요히 잠드는 날이지! 아마 여기 초록 연못도 하얀 별빛의 연못이 될 거란다!


“와……. 정말이었구나! 정말 별을 내리는 회색 구름이 있었어!”


저는 백조 아저씨의 이야기에 숨죽여 엿들었던 옆집 아줌마 오리의 미운 이야기를 떠올리며 황홀한 상상에 빠졌습니다.


“근데, 너는 오리면서 왜 날고 싶어 하니? 충분히 수영도 잘하지 않나?”

- 저는 별똥별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어요! 별도 만나고, 달도 만나고, 구름도 만나고 싶거든요!


백조 아저씨는 신난 저를 보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금세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하하하! 그럼 정말 많이 연습해야겠구나! 아저씨도 너만 했을 때, 잘 날 수 없었지.”

- 아저씨 가요? 날지 못했다고요?


“그래, 구름과 손 붙잡고 해님에게 날아가고 싶었지, 하지만 바로 그렇게 날 수 있던 건 아니란다. 깃털이 뽑힐 때까지 날갯짓해서 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지. 중요한 건 날 수 있다는 믿음이란다.”

- 믿음…….


“하늘을 나는 상상과 믿음이 곧 나의 날개가 된단다.”

- 우아와! 상상과 믿음! 날개라고?!


저의 눈에 이미 하늘이 한가득 담겼고, 꼬리를 씰룩거리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백조 아저씨는 제 반응이 과도했는지 아니면 당황스러웠는지, 처음에 호탕한 모습과 다르게 조금씩 안쓰러운 눈빛으로 변했습니다. 이따금 씩 긴 목을 젖히며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아저씨! 보세요! 제 날개가 어떤가요? 저도 아저씨처럼 나름 큰 깃털이 있어요!”


저는 솜털 사이, 저의 갓 나온 새싹 같은 깃털 중 가장 큰 깃털을 골라 흔들며 뽐냈습니다. 백조 아저씨는 쓴웃음과 함께 말없이 커다란 날개로 저의 머릴 쓰다듬었습니다.


“아저씨, 저도 나중에 커서 구름 호수로 날아갈 거예요! 제 친구도 함께 갈게요! 나중에 제 친구도 소개해드릴게요!”

- 그러려무나. 그때 구름 호수에 오면 내가 맛있는 물고기를 잡아주마.

“신난다! 좋아요 좋아! 꽥꽥!”


백조 아저씨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나직이 나이를 물었습니다.


“오리야, 네가 몇 숲 정도지?”

- 아, 저는 세 개의 숲을 막 지났어요!

“그렇구나… 장하다.”


백조 아저씨는 빙긋 웃고 날개를 추슬러 날아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날아오르기 직전에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멈칫 서서 뒤돌아 말했습니다.


“구름이… 왜 호수에 내려오는지 아니? 하늘이 생각보다 외로워서, 호수가 보고 싶어 내려온다는구나. 구름은 사실 울보란다. 호수에 가고 싶어 가끔 엉엉 울지.”


저는 갸우뚱거리며 백조 아저씨의 반쯤 보이는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구름도 하늘도 좋지만, 아저씨는 네가 깊고, 넓은 호수가 되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한단다. 그럼, 또 보자꾸나.”


백조 아저씨는 그 말을 뒤로한 채, 커다란 날개를 쳐 풀쩍 날아올랐습니다. 백조 아저씨의 날개 그림자가 저를 스쳐 지나고, 금세 파란 하늘 속에 하얀 점이 되었습니다. 백조 아저씨에 대한 감탄과 존경과 동시에 날 수 있다는 믿음, 마지막에 알 수 없었던 넓은 호수가 되라는 말을 곱씹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구름 없이 높고 파란 하늘이었지만, 나무 댐 사이 새어 흐르는 연못물 사이로 새하얀 솜털들이 구름처럼 흘러갈 만큼 뛰고 또 뛰었습니다.





6장 : 나무꾼의 집


나무의 깃털들이 이젠 색을 잃고 말라 떨어져, 소리 없이 오는 비에 추적추적 젖어갈 때, 우리 오리들은 이제 솜털을 완전히 벗고 오리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형제들끼리 싸우는 일도 적어지고, 더 이상 물을 튀기며 물장구도 치지 않았습니다. 먹이를 착실히 찾아 먹거나, 버드나무 가지를 주워 모아 둥지를 수리하는 오리들이었습니다. 엄마 오리는 싸한 밤바람처럼 차갑고 마른기침을 하셨습니다. 더 이상 집 밖으로 걸음을 하지 않으셨고, 물에도 들어가지 않으며 자식들이 물고 온 버드나무를 추슬러 둥지를 만드는 걸 겨우 도우실 뿐이셨죠. 찬 바람이 불수록 엄마의 휑한 눈빛과 한숨이 잦았고, 오리 형제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엄마 오리를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형제들을 모두 불어 모았습니다.


“아가들아, 엄마가 할 말이 있단다.”

- 예, 말씀하세요!


“조금 있으면, 하얀 숲과 연못이 온단다. 맛있는 풀과 벌레들은 모두 땅속 깊이 사라지고, 나무와 연못은 고요히 잠에 들지. 차가운 바람이 계속되고 해님도 추워 일찍 산 너머로 들어간단다.”

- 해님도 일찍 간다고요?


“그래 엄마 말이 맞아! 요즘 산 너머로 일찍 가시더라고!”

"맞아! 그리고 요즘 풀벌레도 잘 안 보이고, 연못물도 줄어든 것 같아!”

“추워서 그런가, 난 물에 들어가기도 싫어졌어.”


“우리 아가들이 걱정되는구나,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아서. 하얀 연못은 초록 연못과 다르게 많은 걸 허락해주지 않는단다. 차갑고 투명한 문으로 닫고 있지만, 우린 볼 수 있을 뿐, 그 문을 열거나 부술 힘이 없단다.”

- 엄마는 그 하얀 숲과 연못을 보셨군요?


“많은 하얀 연못을 보았었고, 나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지.”

- 무엇을 가져간 거죠?


엄마는 묻는 형제 오리의 부리를 깃털로 쓰다듬으며 말을 아꼈습니다.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이내 스며들었고, 떨어지는 고개를 간신히 잡는 듯 얇게 떨렸습니다. 형제 오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갸우뚱거렸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인자했고, 강인했기에 형제 오리들은 엄마의 이런 눈빛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저는 엄마의 이런 눈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별똥별을 처음 알려주며 밤하늘의 별들을 함께 보았던 그 밤이었죠. 이내 뒤돌았던 엄마였지만 밤하늘의 별만큼 반짝이던 엄마의 눈가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엄마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다시 형제 오리들에게 말을 이었습니다.


“초록 연못 뒤로 넘어가면, 엄마가 가지 말라던 물푸레나무 언덕이 있단다. 그곳을 넘어가면 그곳 물소리 숲에 사는 나무꾼이 있단다.”

- 나무꾼이요?


“그렇단다. 그 나무꾼 집에서 하얀 연못을 나려고 한단다.”

- 초록 연못을 떠난다는 말씀이세요?


놀란 형제 오리들의 부리와 날개가 퍼덕거리며 웅성거렸습니다.


“왜 그곳으로 가는 건가요?”

- 너희들은 아직 하얀 연못을 만나본적 없고,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하얀 연못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기 어렵단다.


“저희는 다 컸어요! 저희가 엄마를 보살필게요!”

- 콜록…….! 아니다 얘들아. 사실 초록 연못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기엔 비좁단다. 이젠 모두가 연못에서 같이 수영할 수 도 없잖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오리들의 몸집이 아기오리였을 때 보다 더 커져, 어린 시절 물장구치던 연못이 너무 작게 느껴졌었죠.


“나무꾼의 집으로 가면, 매일 맛있는 풀과 열매를 먹을 수 있을 거야. 살쾡이나 여우의 습격을 겁내지 않아도 되고, 우리 모두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거란다.”

- 예전에 옆집 아줌마가 나무꾼은 피하라고 했어요! 위험하다고요!


“……. 꼭 그렇진 않단다. 사실 엄마도 오래전에 그곳에 살았었단다.”

- 엄마 가요!?


형제 오리들은 많이 먹고 안전하다는 말과 함께 엄마도 그곳에 있었다는 말씀에 동요가 있는 듯 물었습니다.


“수영도 할 수 있나요?”

- 그럴 거야.


“혹시 버드나무 침대도 있나요?”

- 그것보다 부드러운 지푸라기 침대가 있고, 튼튼한 지붕도 있어서 둥지에 비가 세거나 무너져 고칠 일도 없단다…….


“오오~멋지다!”


형제 오리들이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띠며 서로 끄덕거렸습니다. 밝아진 분위기 속 형제 오리들이 앞 다투어 나무꾼 집에 대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구석에서 어두운 표정의 엄마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엄마, 그곳에서도 별을 볼 수 있나요?”

- 아가, 그곳에서도 별을 볼 수 있을 거야.


“엄마, 그곳에 가도 아빠 별이 우릴 보고 있겠죠?”


엄마는 흠칫 놀랐습니다.


“엄마가 밤하늘을 볼 때 면 엄마의 눈에 아빠 별이 보여요. 그리고 저는 아빠를 본 적 없지만 밤하늘을 보면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밤하늘이 좋아요.”


엄마는 큰 눈을 그렁거렸습니다.


“어릴 때 엄마가 말한 엄마를 비추는 가장 큰 별, 그 별 때문인지 저는 밤에 혼자 별을 보고 있어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사실 매일 밤이 반가웠어요.”

- 아가… 너……


저는 새하얗게 난 깃털로 엄마를 껴안았습니다. 흐르는 엄마의 별똥별을 다시 보기엔 너무 아파 겁이 났습니다.


사실 겁에 질린 제가 엄마에게 또다시 안긴 것 일지 모릅니다. 야위고 작아진 엄마의 품이었지만, 그토록 따뜻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무들이 깃털을 모두 내려놓기 전에 우리 오리가족은 초록 연못을 떠났습니다. 옆집 오리가족들도 우리들의 일행에 합류했습니다. 초록 연못의 끝에 물푸레나무 언덕에 올랐습니다. 달오리가 마지막으로 걸어갔던 길이었습니다. 정든 초록 연못을 떠나 형제들과 다 같이 가는 길이었지만 이렇게나 외로운데, 이곳을 혼자 가야 했던 달오리를 생각하니 울컥했습니다. 초록 연못에 멀어질수록 달오리가 걱정되었고, 품 안에 숨겨둔 달오리의 회색 깃털을 꺼내보며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습니다. 아쉬움이 길을 더 멀게 느껴지게 하는 걸까, 어느덧 밤이 되었고, 다른 오리들은 꽤나 기대감에 찬 모습이었지만 몸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걸음을 멈출 때마다 밤하늘의 가장 큰 별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처럼 더욱 쓸쓸했습니다.


드디어 물소리 숲 나무꾼의 집이 보였습니다. 반듯한 물푸레나무로 만든 집과 지붕 위 기둥에는 검은 구름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창문과 문틈으로 세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이 우릴 맞아주었습니다. 마침내 도착했다는 즐거움에 오리들은 꽥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무집의 문이 열렸습니다.


“음? 어라? 웬 오리들이야?”

- 이 오리들, 추워서 왔나 본데요?

“어머, 딱해라! 야윈 것 좀 봐~”


오리들의 웃음소리에 나온 나무꾼 가족들이 우리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디서 버린 건가? 비실비실한데 다들?”

- 이 오리들, 그 남는 닭집 있잖아? 거기 넣어주면 되겠는데요?

“야 얘들아~ 저기 들어가렴. 괙괙~ 저기로 들어가! 괙~”


나무꾼 가족들은 우리를 둥지 쪽으로 몰았습니다. 모두가 추위와 배고픔에 지치고 힘든 상태였는지라 우린 차례대로 따뜻한 불빛이 세어 나오는 둥지로 들어갔습니다.


―철컥!―


형제들은 기운이 없는 엄마를 둥지에 모시고, 가물가물한 정신에 밤하늘의 달과 가장 큰 별을 보았을 때 저는 금방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꼭? 꼬곡? 얘네 뭐야? 오리들이잖아?”

- 꼭? 언제 왔대? 주인이 데려왔나? 일어나 봐 꼭꼭!


“앗! 엄마야!”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뾰족한 부리와 붉은색 모자를 쓴 새들이 콕콕 찌르고 있었습니다. 오리들은 제 비명에 놀라 눈을 떴습니다.


“뭐야? 누구세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 나? 닭 처음 봐? 꼬꼬?

“닭이요?”

- 꼭! 얘네 우릴 처음 보나 본데? 꼭!


엄마는 힘겹게 일어나 닭들에게 말을 이었습니다.


“저희는 초록 연못에서 온 오리들입니다. 어젯밤에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 이 아줌마는 꼭! 닭을 아나 본데? 안녕하세요! 잘 지내봅시다. 꼭!


“이 아이들은 제 아이들입니다. 얘들아 인사드리렴.”

- 안녕하세요……. 초록 연못 오리입니다.


닭아저씨들은 서로를 번갈아보며, 갸우뚱 거렸습니다.


“잉? 근데 초록 연못이 어디야? 꼭!”

- 나도 몰라 꼭! 어디 농장인가 봐. 아무튼 잘 지내요!


눈을 뜬 둥지는 둘로 나뉘어 있었고, 한쪽은 닭 가족들이 쓰는 듯했습니다. 바닥에는 따뜻하고 푹신한 지푸라기들이 가득했고, 커다란 지붕과 구석마다 그릇에 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 나무꾼들이 둥지 마당의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오리들 일어났구나? 배고팠지? 밥 먹자!”

- 밥이다 꼭! 밥 먹자!


나무꾼은 모이를 뿌렸고, 닭들은 일제히 마당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바닥에는 갖가지 씨앗과 풀 조각들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오리들도 그간 쉽게 볼 수 없었던 씨앗들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아이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많이 먹으렴.”

- 꼬꼬 꼭! 꽥꽥꽥! 맛있다! 맛있다!


형제들은 허겁지겁 밥을 먹었습니다. 엄마는 그 모습을 슬픈 눈으로 지켜보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기어와 조심스럽게 모이를 주워 먹었습니다. 저도 모이를 주워 먹었습니다. 사실 그간의 배고픔에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만 같은 맛있고 풍족한 맛이었습니다.


배를 좀 채우고 정신이 들었을 때, 나무꾼의 집은 큰 마당이 펼쳐 있었고, 주변은 숲으로 메워져 있었습니다. 넓은 마당 구석에 큰 둥지 마당이 따로 있었고, 우리의 둥지 마당엔 높은 나무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밤이라 볼 수 없었던 둥지 주변의 풍경에 저는 크게 당황해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저 울타리, 높은 울타리가 보세요.”

- 저건……. 살쾡이나, 여우로부터 우릴 보호하는 벽이란다.


형제들은 미소를 띠고 서로를 쳐다보며 고갤 끄덕였습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여우들이 못 들어올 거야!”

"튼튼해 보여! 정말 여긴 밥도 많이 있고 안전한 곳이야!”


모든 오리들이 안심한 듯했지만, 저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엄마에게 다가갔습니다.


“엄마, 저는 왠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 아가, 하얀 연못보다 이곳이 더 안전하단다.


“엄마, 그럼 이번 하얀 연못만 피하고, 다음엔 다시 우리 연못으로 돌아가요.”

- …….


“엄마, 우린 초록 연못이 있잖아요. 다시 초록 연못이 되면 다시 돌아가면 되잖아요?”

- ……. 그러자꾸나.


엄마의 짓눌린 대답으로 불안감을 지울 순 없었지만, 기운 없는 엄마의 모습에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곳은 답답하면 넓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배가 고프면 바닥에 떨어져 남아도는 모이를 먹으면 되는 곳이었습니다. 추우면 들어와 지푸라기를 덮고, 야밤에 여우의 울음소리에도 불안하지 않은 모든 것이 완벽한 둥지였죠. 형제 오리들의 유일한 걱정은 엄마였습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추위에 타지 않도록 깃털을 뽑아 엄마가 눕는 지푸라기에 섞었고, 모이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엄마의 부리 앞에 주워 놓고 나서야 자신들도 밥을 먹었습니다.


저는 이유 모를 불안감을 주장하며 분위기를 헤칠 수 없었습니다. 부족할 것 없는 날이 매일 반복된 만큼 시간은 매일 빠르게 흘렀고, 밤 사이에 물통이 얕게 얼어붙는 하얀 연못의 계절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7장 : 닭보다 알이 먼저


저는 날기 위해 연습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잘 먹고 따뜻하게 자니까 몸이 점점 튼튼해졌고 전 보다 더 많이 노력했습니다. 둥지에 지붕에 올라 세찬 바람에 몸을 맡기며 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형제들은 이제 더 놀리지 않았지만, 닭 가족들은 한심하게 쳐다보기 일쑤였습니다.


“쟨 오늘도 시작이구나!”

- 꼭! 저러다가 다치는 거 아니야?

“별종이라고 하더군, 신경 쓰지 말아”


둥지 지붕에서 뛰는 건 위험했지만 바닥에 지푸라기를 깔아 두어 견딜 만했습니다. 이따금씩 무시와 야유가 들려와도 저는 화를 내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뛰어오를 때마다 비버 아저씨와 백조 아저씨를 떠올렸습니다. 노력과 믿음. 나무 댐과 커다란 날개를 떠올리며 나는 뛰어올랐습니다. 이 둥지 마당에서 이젠 더 이상 숨어서 연습할 필요도 없었고, 숨을 수 도 없었기에 실패에 대한 창피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죠. 가끔 걱정스러운 엄마의 시선이 느껴질 때면, 아프게 떨어져도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털어내기만 했으면 됐습니다. 어느 날 언제나처럼 떨어질 곳에 지푸라기 뭉치를 다듬는 중에 닭 중 한 명이 와서 물었습니다.


“꼬꼭! 저기 오리 양반!”

- 네?


“진짜 내가 궁금해서 묻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 무슨 말씀이세요?


“거 뛰어내리는 거 말이야. 날려고 한다는 데, 왜 그러는 거요?”

- 별똥별… 그…저는 나는 게 꿈입니다.


“휴……. 형씨! 당신이 하는 게 뭐요?”

-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다른 오리들은 몸을 살찌우고, 옆집 오리 중 옆 명은 알을 낳을 준비도 하고 그러는 데, 무슨 날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아직도 좇고 몸을 학대하냔 말이요!”

- 무슨…….


“꼭! 우리 닭들을 보소! 모이를 먹으면 주기적으로 알도 낳고, 새끼도 기르고, 그러지 않소? 그런데 별종 오리 양반은 난다고 푸덕거리기만 하지, 내가 보 다보다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하는 거요.”

- 닭 아저씨는 꿈이 없나요?


“꿈? 뭔 꿈? 오리 양반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 아기오리인가 보네? 다 커서 무슨 말도 안 되는 꿈 타령이요?”

- 그게 무슨 말이세요?


“집오리가 어떻게 난다는 말이요? 무슨 독수리도 아니고. 이봐요! 오리는 원래 날수 없어요!”

- 뭐…라고요!

“오리는 날 수 없다고! 원래 날 수 없다고! 그냥 수영하는 할 줄 아는 게 답니다!”


저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왜 날려고 하냐는 비웃음은 형제와 주변 오리들에게 많이 들었지만, 원래 오리는 날 수 없다는 말은 닭 아저씨의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아찔한 정신을 부여잡고 말했습니다.


“굳게 믿고 노력하면 날 수 있다고 했어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 꼬꼬꼬! 누가? 누가 믿고 노력하면 오리가 날 수 있다고 합디까?


“비버 아저씨가 그리고 백조 아저씨가 그랬어요!”

- 비버? 비버가 뭐야? 그리고 백조는 원래 날 수 있잖아~


“원래 날 수 있다고요?”

- 오리 양반 답답하네. 백조는 원래 날아요. 그냥 태생적으로 나는 새가 백조야.


“백조 아저씨도 처음부터 날 수 없었다고, 믿음을 가지면 날 수 있다고…….”

- 처음부터 누가 날 수 있나? 아기인데, 크면서 그냥 날 수 있는 거지!


“그게 무슨…. 거짓말하지 마세요! 아저씨도 못 날잖아요!”

- 거짓말? 무슨 거짓말? 그리고 내가 왜 날아? 알 잘 낳고 그러면 되지!


저는 믿고 싶지 않은 말들을 너무나 당당하게, 그리고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닭 아저씨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시끄러운 소란에 주변 닭과 오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분통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따지며 물었습니다.


“그럼! 닭 아저씨는 알 낳는 게 아저씨 꿈인가 보죠?”

- 꿈? 그게 무슨 꿈이야. 닭은 원래 알을 낳는 거야. 타고난 거라고.


“흥! 닭 아저씨는 꿈도 없네요?”

- 오리 양반! 닭은 알을 낳는 게 의무고 존재 이유야. 꿈? 알을 낳지도 않으면 닭도 아닌데, 꿈 이런 게 무슨 소용이야? 닭이 알이야. 알! 알이 먼저라고!


“그만해…….”

- 오리 양반! 내가 이렇게 이웃사촌이니까 형씨 위해서 이렇게 말해주는 거…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저는 쌓아둔 지푸라기를 걷어차며 귀를 막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닭과 오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거센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깜짝 놀라 얼어있던 닭들과 오리들은 종종걸음을 치며 하나둘씩 둥지로 들어갔습니다.


둥지 마당은 휑하니 찬바람만 불었고, 저는 귀를 막고 주저앉았습니다.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니 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느낀 게 있었습니다. 더 이상 형제들이 비웃지 않는 이유가 나를 믿거나 무언의 응원이 아니라 그저 더 재미가 없어 놀리길 포기한 것 만 같다는 것이죠. 크게 바라진 않았지만 주변의 무반응이 정말 무관심 그 자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동안 홀로 느꼈던 외로움과 쓸쓸함을 폭발시켰습니다. 모든 게 무의미했던 걸까. 난 정말 바보였나.


비버 아저씨: ‘인마~ 열심히 해라~ 헤헤~’

백조 아저씨: ‘구름도 하늘도 좋지만, 아저씨는 네가 깊고, 넓은 호수가 되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한단다.’


비버 아저씨의 세모난 이빨 웃음, 백조 아저씨의 마지막 말. 별똥별의 희미한 줄기까지 모든 게 지금까지 받아들였던 것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우중충한 회색 구름이 낀 하늘, 흙먼지 묻은 뺨으로 별들이 또르르 쏟아 내렸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모든 게 바스러집니다.




“…아가…. 엄마랑…들어가자…….”


엄마는 쉰 목소리로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엄마, 엄마……. 흑흑…! 난……. 흑흑…! 나는…….”


- 그래… 넌 내 아가야… 우리 아가…….


엄마는 마르고 휑한 날개로 저를 부축해 둥지로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내가 지쳐 잠들 때까지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때쯤 저는 모든 게 망가졌다는 마음보다 끊임없이 내 이마를 쓰다듬어주는 엄마의 손길과 슬픈 눈빛에, 내가 모든 걸 망쳤다는 죄송함이 더 커 눈물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따뜻했던 어머니의 손이 오늘은 너무 아팠습니다.


그렇게 쉬익 쉬익 가슴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만 들리는 밤이 지나갔습니다.





8장 : 하얀 연못


그날 이후, 저는 나는 연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둥지 구석에 틀어박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붕위로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닭 아저씨의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스스로 알고 있었죠. 둥지에서 뛰어오른 마지막 연습까지도 어린 시절 연꽃 바위에서 뛰어오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몸이 무거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그 섬뜩한 기분을 잊기 위해 스스로 무시하고, 과거의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밝은 척했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밥을 먹을 때 일부러 굶어가며 몸무게를 줄여보려고도 했었죠. 그러나 다 큰 오리의 배고픔은 어린 시절의 솜털만큼 가볍지 않았습니다.


발바닥은 모두 까졌고 떨어지길 반복한 무릎은 가끔씩 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혹사당한 날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힘이 빠집니다. 외면하고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지만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불안감이 무겁습니다. 스스로 망가져 간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몸으로 이미 느꼈지만 이건 일종의 시련이며, 이를 극복해야 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더 끊임없이 뛰었습니다.


누군가의 비판이나 비웃음, 야유는 저의 고통이 아닙니다. 부서진 몸과 무관심 또한 저의 고통이 아닙니다.

나의 노력이 나의 고집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새하얗게 잃어버리게 됩니다.


단 5초라도 나를 증명할 수 있다면, 형제들의 놀라움과 그간 걱정스러운 눈빛의 엄마에게 미소를 안겨 줄 수 있다면. 나를 보고 밤하늘 가장 큰 별이 크게 한번 반짝이길, 달오리가 “해냈구나! 친구야!” 소리 지르며 크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그간 꿈꾸던 것들이 전부 고요해집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느리게 흘렀습니다. 모이가 뿌려지면 주워 먹고, 지푸라기를 뭉쳐 둥지를 만듭니다. 물통에 물이 얼면 부리로 밀어 치우고, 흙을 퍼서 화장실을 청소합니다. 주변에 알을 낳은 오리가 있으면 깃털을 뽑아 둥지에 넣어줍니다. 알들이 깨지지 않게 지켜봐 주며 둥지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별똥별이 날아가도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있노라면 깊은 물속 같은 시커먼 하늘이 생각을 잡아먹고, 끌려 들어가듯 나도 모르게 잠들기 때문이죠. 그뿐이었습니다.


“꼭! 저기……. 오리 양반……. 그 괜찮나?”

- …….


“꼭… 이제 좀 오리답네…….! 보기 좋아! 꼭!”
- …….


“아니……. 밥 좀 잘 챙겨 먹고, 왜 이리 핼쑥해…….”

- …….

“꼬! 이거 토끼풀인데……. 구하기 힘든 건데……. 추워서 쫌 …시들었어…. 먹으라고...”

- …….


“꼬…. 그럼……. 또 먹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꼭…. 꼬…”


닭 아저씨는 토끼풀을 앞에 두고,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종종거리며 갔습니다. 어린 시절 제일 좋아하던 토끼풀이었지만 저는 아무런 입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밤하늘 아래에서 달오리와 함께 뜯어먹었던 토끼풀의 맛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뭐가 그리 맛있다며 깔깔거렸었는지.


달오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토끼풀을 다른 형제 오리의 알둥지 쪽으로 넣어줬습니다.


“야! 눈 온다 꼬곡! 눈 와 꼭!”

- 와아! 이게 눈이구나!


옆집 아줌마가 말했던 회색의 넓은 구름, 미운(彌雲)입니다. 형제 오리들은 처음 본 눈에 신나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부리를 열고 눈을 받아먹기도 하고, 소복하게 쌓이는 눈에 굴러다니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닭들은 부산스럽게 눈을 밀어 치우고, 눈을 피해 지푸라기들을 주워 들며 둥지로 들어갔습니다.


달오리의 솜털 같은 뭉게뭉게 커다란 회색 구름에서 새하얀 별이 펑펑 쏟아 내렸습니다. 금세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품속에서 달오리가 주었던 회색 깃털을 손에 쥐어보았습니다. 말을 더듬는 달오리의 말투같이 띄엄띄엄 추억이 떠오릅니다.


달오리가 있는 곳에도 이렇게 별이 내리겠죠. 그리고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달오리는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기분 좋은 그리움을 할 수 있지 않아 더욱 슬퍼집니다.



눈은 며칠 내내 계속됐습니다. 나무꾼은 눈 때문에 먹을 것이 떨어졌다며 먹이를 주지 못했고, 이젠 눈에도 시큰둥해진 오리들은 배고픔을 달래며 닭처럼 둥지에 틀어박혀 추위를 피했습니다. 별들이 쌓여 온 세상이 하얀 연못이 된 고요한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구석에 앉아 눈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던 저를 엄마가 조용히 불렀습니다.


“아가…….”

- 네, 엄마. 어디 불편하세요?


“아가……. 우리 아가…….”

- 네, 엄마. 말씀하세요.


“엄마랑… 같이 별 볼까?”

- 네…? 엄마 제가 도와드릴게요.


기운이 없는 엄마는 부축을 받아 밤하늘이 보이는 구석 창가에 앉았습니다.


“아가……. 눈이 많이 오는구나……. 오늘도 별똥별을 보았니?”

- 네……. 몇 개 봤어요.


“좋구나… 어디로 가던데?”

- 하나는 달 아래로 가고, 하나는 산 너머로 갔어요.

“산 너머로……. 호호… 그래….”


“아가, 저기 보이는 큰 별… 저 별이 아빠 별이란다.”

- 엄마…….


은하수가 뜨던 밤, 엄마와 처음 밤하늘을 봤을 때처럼 엄마는 힘겹게 날개를 들어 가장 큰 별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숨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 넌 알고 있었겠지, 아빠는 너희들이 알에서 나오기 전에 저 별이 되었단다…"

- 아빠…?


"그리고… 네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창가… 이 자리에 앉아 있었어.”

- 네?!


엄마는 별을 바라보며 나긋나긋 말씀을 이었습니다.


“아빠는 물소리 숲 나무꾼 집… 이곳에서 태어났단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는 밤하늘을 보는 걸 좋아했어. 나에게 밤하늘을 보여주며 별과 달을 이야기했지…….”


“아빠는 저 별똥별이 떨어지는 산 너머로 가고 싶어 했어……별들이 가는 곳으로 가겠다고…”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단다. 별똥별을 따라서 따뜻하고 안락한 둥지를 떠나, 여우와 늑대들이 있는 숲으로 가는 건 죽겠다는 얘기였거든. 하지만 아빠는 늘 밝고 자신 있게 말했어… 할 수 있다고…”


“은하수가 산 너머로 쏟아지는 밤, 아빠는 몇몇의 오리들과 둥지를 떠났단다……. 엄마도 그 오리들 중 하나였어.”


“우리는 초록 연못에 도착했고, 우린 정말 행복했단다. 난생처음 본 아름다운 숲과 물, 소리와 향기에 취했고, 아빠는 밤하늘을 보며 즐거워했지…”


엄마의 입가엔 옅었지만, 정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습니다.


“몇 번의 숲이 지나가고, 다시 하얀 연못이 다가왔을 때 우린 너희들을 가졌단다. 아빠는 알에서 너희들이 태어나면 먹을 게 많이 필요하다며 여기저기 먹이를 구하러 갔단다.”


“사실 하얀 연못에선 우리 가족 모두를 먹일 만한 먹이가 충분하지 않았어… 아빠가 걱정돼서 내일 가면 안 되겠냐고 말했지만 아빠는 괜찮다며 나섰고, 나도 엄마로서 더 만류할 수 없었단다…”


“별이 뜨기 전에 돌아온다던 아빠는… 눈이 한가득 쏟아지는 며칠 밤까지 돌아오지 않았단다.”


엄마의 눈가에 또 다시 별똥별이 말갛게 드리웠습니다. 그리고 휑한 날개로 저의 새하얀 날개를 감싸며 쉬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눈이 그친 날……. 밤하늘에 전에 보이지 않던 크고 환한 별이 떴단다…. 나는 알았어. 아빠가 별이 되었다는 걸.”

- 엄마……?

“아빠가……마지막에 둥지를 떠날 때…! 내가 말릴 때…! 웃으며 아빠가 그랬단다! 내 별똥별이라고…! 내 꿈이라고……!”

엄마는 결국 눈물을 떨어뜨리고 우시며 내 날개를 있는 힘껏 잡았습니다.


“……아가! 넌, 아빠의 꿈이야!”

- 엄마……!


“아가…! 흐흑……! 너는…별똥별이야…! 아빠의 꿈이고! 엄마의 꿈이란다…!”


엄마가 나의 얼굴을 쓰다듬으시며 오열하셨고, 그 모습에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가! 너는 별똥별이야! 아가… 그러지 말거라…! 너는 별똥별이야! 엄마가 미안하다…”

- 엄마!! 엄마가 뭐가 미안해요……. 흐흑… 뭐가… 엄마 울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아가… 그러지 마라……! 내 아가…!”


엄마의 마르고 휑한 몸을 받쳐 자리에 뉘었습니다. 엄마는 나의 망가진 날개와 상처 가득한 발을 잡고 계속 우셨고, 나도 눈물을 닦으며 엄마가 잠드실 때까지 눈물을 닦아드리고 날개를 잡아드렸습니다. 그 야윈 몸에서 수 없이 흐르는 눈물들을 주워 담아 드릴 순 없을까.


찢어지는 아픔에 저는 제발, 제발, 하늘에 기도하면서 엄마의 이마를 쓰다듬었습니다.




엄마는 다음날에도 일어나시지 않으셨습니다. 형제 오리들은 조용히 감은 엄마의 눈이 지긋이 뜨길 기다리며 울부짖었습니다. 하루 종일 둥지에는 오리 울음소리만 울렸고, 눈이 그친 밤하늘엔 가장 큰 아빠 별 바로 옆으로, 새 하얗게 빛나는 새로운 별이 떴습니다.



엄마는 별이 되었습니다.





9장 : 별과 달과 구름


평소와 다른 오리들의 울음소리에 나무꾼은 둥지로 달려왔고, 사태를 파악한 나무꾼은 조심스럽게 엄마를 들어 둥지를 나섰습니다. 떠나가는 엄마의 몸을 부여잡고 싶었지만 우리들의 울음 속에 울타리 자물쇠가 철컥하고 차갑게 대답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무집 지붕 기둥에서 근래에 볼 수 없었던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검은 구름이 새카만 밤하늘에 묻혀 흩어지고 그 사이로 엄마별이 반짝였습니다.


저는 밤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아빠별과 엄마별을 바라보며, 엄마가 마지막에 누워있던 자리의 낡은 깃털과 지푸라기를 집어 옅어지는 엄마 향기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 거기 있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하늘 위에 엄마별은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반짝일 뿐이었고,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대답 없는 하늘 위로 수많은 밤을 보냈습니다.




이젠 둥지에서 엄마의 향기도 사라졌고, 쌓인 눈도 녹아내렸습니다. 따뜻한 햇살에 숲과 나무들이 촉촉하게 움텄지만 저의 말라버린 눈가는 별빛에도 반짝이지 않았고 그저 매일 반복된 일과에 흘러갔습니다. 몇몇의 형제들은 아기 오리들을 낳았고 둥지 안은 시끌벅적하게 붐볐습니다. 둥지는 더 커졌고, 울타리는 더 높아지고, 둥지 마당은 더 넓어졌습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충실하고 서로 어울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 저는 전과 다르지 않게 그저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하고, 밤이면 구석에 홀로 별을 보는 오리였습니다. 가끔 제가 궁금해 다가오는 호기심 어린 아기오리들에게, 저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저기 있는 어른오리들을 잘 따르라는 말만 해줄 뿐이었습니다.


시간은 전과 달리 빠르게 흘렀습니다. 그렇게 또 네 개의 숲이 지났습니다. 하얀 연못의 계절을 지날 때, 엄마 얘기를 하는 오리들은 많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곧 엄마가 되었고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겠죠.




눈이 녹아 물소리 들리기 시작한 밤, 밤하늘에 가르는 빼곡한 은하수가 펼쳐졌습니다. 은하수는 달을 지나 산 너머로 길게 이어졌습니다. 반짝이는 가장 큰 별인 아빠 별이 은하수에 적셔져 더욱 반짝였습니다. 엄마 별도 아빠 별 옆에서 옅게 미소를 띠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엄마별이 새하얀 꼬리를 그리며 은하수를 따라 산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별똥별이었습니다. 엄마는 별똥별이 되어 산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저는 마당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엄마별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 어디 갔어요? 어디 갔어요! 엄마!!!”


오밤중에,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 저 때문에 깜짝 놀란 닭과 오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마당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껑충 뛰었지만 산 너머로 넘어간 엄마별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엄마와 처음 밤하늘을 봤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엄마오리: '후후, 아가야. 우리는 모두 별이 된단다. 엄마는 저기 가장 큰 별처럼 언제 어디서든 너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언젠가 너도 별이 되어 엄마에게 찾아오렴, 언제든 널 기다리고 있을게. 알겠지?'


순간 머리에 번개가 꽂힌 듯,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둥지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얼마 만에 올라온 지붕인지, 아득한 높이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습니다.


“별오리 아저씨! 위험해요! 내려오세요!”

“오리 양반! 형씨 왜 그래! 내려와!”

“지푸라기! 지푸라기 가져와!”


닭들과 형제 오리들은 허겁지겁 지푸라기를 챙겼고, 아이들의 눈을 가렸습니다. 힘 없이 흔들리는 몸과 아직까지 떠나지 않고 남은 하얀 연못 바람이 얼굴을 베었지만, 저는 땅바닥 아니라 아득히 펼쳐진 은하수 속으로 풍덩 빠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은하수에 몸을 맡기면 그 옛날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산 너머로 갈 수 있을 까요. 은하수 연못에서 젖은 몸을 털어내며 먹었던 달오리와의 토끼풀 맛을 기억할 수 있을 까요. 별이 되어 간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요.


수 없이 던지고, 빠지고 깨진. 나는 별똥별일까요? 이대로 별똥별이 되어 산 너머로 날아간다면 만날 수 있겠죠.


“별 아저씨! 꺄악! 뛰지 마요!”

“별오리야! 안 돼! 뛰지 마!”

“형씨! 멈춰!! 안 돼!!!”


이렇게 올라올 때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뛰어 본 적은 없었습니다. 난 또다시 뛸 테니까, 이렇게 올라올 때마다 깨진 무릎과 날개가 욱신거려 무섭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섭지 않아요. 마음에 떠오르는 얼굴들.


‘인마, 남들이 놀리고 손가락질하는 것에 신경 쓸 필요 없단다.’

‘내가 널 다시 보니 너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헤헤헤!’


‘하늘을 나는 상상과 믿음이 곧 나의 날개가 된단다.’

‘그때 구름 호수에 오면 내가 맛있는 물고기를 잡아주마.’


‘아가, 엄마 말 들으렴. 우리는 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란다.’

‘아가…! 너는 별똥별이야…! 아가… 엄마가 미안하다…’


‘이 밤하늘 연못의 친구인 거지! 내가 나중에 별똥별이 돼서 달님인 너에게 날아가느라 힘들면 네가 구름이 되어 나를 업어주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줘, 그럼 되겠네’


‘별오리야, 너는 정말 별똥별이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알고 있어. 네가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밤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될 거라는 걸.’


날개를 펴고 은하수를 바라보며 눈을 감습니다. 귓가에 은하수를 담은 연못의 시냇물 소리가 들립니다. 날갯짓을 시작합니다.

코끝으로 이는 초록 연못의 풀 향기가 느껴집니다. 이렇게 은하수 산 너머로, 뛰어오릅니다.



― 퍼덕, 퍼덕! 펄럭, 펄럭! ―


“날… 날았어!! 오리 양반이 날았어!!!!”


몸이 가볍고, 날개가 커진 것 같았습니다. 밑으로 둥지의 울타리와 놀라움에 가득한 형제와 닭들의 얼굴들이 보입니다.

이렇게 높았군요. 바람이 이렇게 가득했군요. 별이 더 밝아 보였습니다. 달이 더 커 보였습니다. 구름이 이렇게 부드러웠군요. 은하수,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웠네요. 이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여요.




“별오리 오빠!!! 안 돼!!!”


―투두둑, 투둑! 쿠쾅!―




정신이 들었을 때, 저는 울타리 바로 건너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밤하늘엔 아직도 은하수가 가득했습니다. 한쪽 다리가 꺾이고 양쪽 날개가 완전히 부러졌습니다. 울타리 건너편에선 오리와 닭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뛰어왔습니다. 온몸이 진흙과 피가 뒤범벅되어 엉켜있었습니다.


“형! 이러다 형 죽겠어! 가만있어!”

“꺄악! 오빠 어떡해! 으앙!”

“꼬끼오~! 형씨 가만있어! 주인 부를게! 꼬끼오!”


저는 비틀거리며 일어났습니다. 저는 아직 가야만 했습니다.


“얘들아……. 나는… 별똥별은…. 간다… 잘 있어…. 나중에 보자…”


아우성을 등뒤로 저는 절뚝거리며 숲 속으로 향했습니다. 오래전에 나무꾼의 집으로 엄마를 모시고 걸었던 그 길을 돌아갑니다. 저와 같은 이 길을 걸었던 아빠도 저 은하수를 보며 걸었겠죠? 아빠의 꿈으로 가는 길. 아빠, 보고 있죠? 하늘의 아빠별을 바라보며 웃음이 났습니다.

달오리가 이 길을 걸었겠죠? 돌아가 저를 보러 왔었을까요? 연못을 떠나 물푸레나무 언덕으로 걸어가던 그 쓸쓸한 뒷모습이 돌아오는 길엔 밝은 웃음이었다면 좋겠어요. 내가 연못에 없어 많이 당황했을 텐데, 오늘은 은하수가 떴으니 은하수 연못에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빨리 가야겠어요. 구름 호수에 데려가야 하거든요.


품속에 넣어뒀던 달오리의 회색 깃털과 엄마의 낡은 깃털, 엄마가 누워 있던 지푸라기 조각을 꺼내 쥐고 앞으로 절뚝이며 나아갔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엄마… 나… 별똥별이 맞았어요…….”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죠…? 엄마 말이 맞아요…”


“나… 나 날았어요…!”


“내가, 날았어요. 다 봤어요……! 형제들도 닭들도… 다 봤어요!”


“내가, 엄마 아들이 날았다고요…! 지금… 엄마한테 가고 있어요!



저는 별들을 따라 산 너머로, 그렇게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얼마 뒤 눈앞에 수많은 별들이 담긴 은하수 연못이 보였습니다. 연못 속의 달님도 반가운 듯 일렁거리며 밝게 비추었습니다.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네요. 어린 시절 그렇게 뛰어올랐던 연꽃 바위에 앉아보니, 이렇게 작았었나. 이 조그마한 바위가 어찌나 미끈거렸는지. 이젠 다 부르터지고 찢긴 발바닥을 바위에 대봅니다. 이럴 줄 알았어요. 포근합니다.


엄마는 어디 있을까요. 예전에 우리 둥지는 그대로일까요. 달오리는 오고 있을까요.




그때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야! 여기 있다! 오리 여기 있어!”

- 어휴 꼴이 이게 뭐야? 그러게 왜! 어휴!


나무꾼들이 그물과 몽둥이를 들고 오더니, 뒤에서 제 날갯죽지를 잡아당겼습니다. 안돼요……! 난 아직, 엄마! 친구를 기다려야 해요! 놔요! 이거 놔요! 놔!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쳤습니다. 하지만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야 잘 좀 잡아봐, 어? 자꾸 퍼덕거리잖아!”


제발 좀 놔줘요! 나는 아직 엄마도, 친구도 못 만났단 말이에요! 엄마! 달오리야! 어디 있어! 나 왔어! 나 여기 왔어요! 다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퍼덕거리며 다 부러진 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놈이 왜 이리 말썽이야! 어? 또? 빨리 잡아!”

-꽉 눌러놔, 기다려봐! 이걸 잡아서……!


―투둑―



저는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론가 풍덩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아요.

흐릿해져 가는 눈 앞에 또 다시 멀어지는 연못이 보입니다. 이제 느껴져요. 확실히 느껴져요. 기억이 모두 납니다.

제 고향은 수련의 잎사귀가 초록빛 그늘을 만들고, 부서지는 햇살만큼 반짝거리는 잔잔한 물결이 이는 연못이죠. 우리는 이곳을 초록 연못이라고 부릅니다. 제 첫걸음마 헤엄, 발끝에 닿았던 살랑거리는 물고기 친구들의 간지러운 꼬리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어머니의 포근하고 보드라운 하얀 깃털을 기억해요. 눈을 뜰 때마다 너무 화사한 세상에 신비함보단 겁이 났지만, 기분 좋게 바스락 거리는 나뭇가지, 뽀글대는 연못의 숨 방울, 형제들의 달달한 아기 냄새, 흙내 나는 친구의 웃음소리까지 모든 게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나른하게 쓰러지게 하는 그 모든 아득한 것들이, 이젠 기억이 납니다.


멀어지지만 가까운,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10장 : 초록 연못의 달


긴 시간이었습니다. 잘 지낼까요? 너무 보고 싶네요. 오늘도 은하수가 떴어요. 오늘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별똥별이 된다던 내 친구에게 달이 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 바람결에 스치는 별과 달과 구름, 하늘의 은하수를 보여줄 거예요. 저는 가벼운 몸과 큰 날개를 갖게 되었고, 그 친구를 태우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 무서워한다면 별을 껴안은 회색 구름처럼 사뿐히 땅에 내려줄 수 있죠.


만나면 가장 먼저 토끼풀을 뜯어먹을 거예요. 그 친구와 함께 먹던 그 새콤하고 알싸한 맛이 그리워, 저는 친구와 헤어지고 단 한 번도 토끼풀을 먹지 않았어요. 누가 가져다주어도 다시 남에게 미뤄주었죠.


언제나 상상했어요. 은하수가 잠긴 연못에 그 바위, 그 친구가 가슴을 펴며 뽐내던 그 연꽃 바위에 다시 그 친구가 서 있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그 당당함이 너무 멋졌어요.


아직도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한 번도 버린 적 없어요. 햇살처럼 밝던 그 친구의 노란 깃털. 제가 쓸쓸할 때마다 꺼내 봐서, 이젠 많이 낡았네요. 이젠 더 이상 그 친구에게 다시 구할 수도 없겠죠? 그 친구도 자신의 이 노란 깃털을 보고 쑥스러워 깔깔 웃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웃음이 보고 싶네요.


은하수 연못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밤은 길지만, 왠지 오늘도 못 볼 것 같아서 벌써 불안합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은하수가 펼쳐질 때마다 찾아왔습니다. 초록 연못이든, 하얀 연못이든 오래전부터 찾아왔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매번 수십 개의 강과 숲을 힘겹게 건너왔죠. 주변에서는 널 잊었다며 포기하라고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전 알아요.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걸 상상하고, 저는 그렇게 믿어요.


연꽃 바위에 앉아 있으면, 그 어린 시절 친구가 얼마나 겁이 났을지, 그리고 얼마나 용감했을지 새삼 놀랍습니다. 잠시 앉아 있어 볼까요? 이럴 줄 알았어요. 포근합니다.


엇 이건? 이건 제가 준… 회색 깃털입니다! 지푸라기 조각도 있어요. 낡았지만 다 큰 오리의 깃털도 있네요! 다른 건 몰라도 이 회색 깃털은 분명 저의 깃털입니다! 분명히 내 친구 별오리에게 준 깃털이에요. 별오리가 왔다 갔어요! 자기도 기다리고 있다고 깃털을 두고 간 거죠!

역시 날 잊지 않았어! 역시 우린 친구였어! 다들 내가 뭐랬어! 내가 맞았다고! 내 친구가, 바로 여기 있어!


별오리를 만나면 구름 호수의 친구들을 소개해 줄 거예요. 맛있는 물고기도 많이 잡아 줄 거예요!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올려본 하늘이 아름답군요. 그 때 그 기억이, 이젠 멀리 있지 않아요.

은하수 사이로 수많은 별똥별들이 일제히 쏟아집니다.


저 별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별오리도 보고 있겠죠?


많이 보고 싶습니다.




End









실패와 성공, 슬픔과 기쁨, 과거와 미래. 0과 1, 우리는 그 가운데에 존재할 수 있는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흐르는 시간속에서 멈춰있지 않다.


지나온 모든 것은 기억이 되고 그것이 아름다울 수도 아플수도 있다. 잊으려 했기에 혹은 잊고 살았기에, 꺼내봤을때 아득히 멀게 느껴지지만, 그 만큼 가까워 지는 것도 없다. 과연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만 위로할 수 있나. 앞으로도 더 만날 일종의 과정들을 연속해서 밟아가고 있을 뿐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 때처럼 무엇이 되기 위해 살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때 만큼 살고 있는가.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만, 사실 지금의 나는 과거라 불리는 기억 그 자체인가. 실패한 자의 씁쓸함일뿐인가. 성공한 자의 아쉬웠던 순간일 뿐인가. 더 먼 곳의 나는 지금의 모든 것들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갈 수록 멀어지지만, 무심코 멈췄을 때 코앞에 와 있는 것들. 그것들을 애써 무시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온 모든 것들을 되밟아가는 것. 어디가 아닌, 우리가 왔던 그곳으로 가고 있다.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 계속 나아가지만 결국 도착한 곳은 처음 시작한 곳이라는 것.


나는 무엇인가.

나는 멀지만, 가까운 그 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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