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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Nov 29. 2022

프롤로그. 관계를 만드는 만남

지속적인 만남을 하는 사람들과 그 이야기 조각들

노르웨이에 살게 된 지 3년 차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휴직한 상태였고, 코비드 19 규제로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으며, 당연히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다. 새로운 만남이 없었기에 어떠한 관계도 생기지 않았다. 나의 가족과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였다. 노르웨이에서의 고독한 일상과 휴직이라는 불안은 몇 개월 만에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런 우울한 시기에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방식의 만남을 시작하였다. 우연히 발견한 온라인 소설 쓰기 모임으로 자주 글쓰기 카페에 들락거리며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는 시간이었다. 단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같은 주제로 쓴 멤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글을 쓰는 시간도 즐거웠다. 온종일 영어로 대화하고 쓰고 읽다가 휴직 후 한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소중하게 다가온 날들이었다.


그 후 꾸준히 새로운 한국인들과 비대면 만남으로 라이브 강연도 듣고, 독서감상도 하며, 글도 쓰고, 쓴 글을 읽는 모임까지 갖게 되었다. 서로의 마이크와 카메라를 켜고 온라인상으로의 만남이라니. 나에게는 새로운 일이었다. 그들은 나의 글쓰기 친구들이 되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공유와 공감으로 시작하여 피드백까지 내밀며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읽어주는 소중한 관계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 지난 내 시간들을 뒤돌아 보게 되었고, 내 주변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나의 삶이 활기차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코비드 19의 규제가 풀리면서 나름대로의 오프라인 만남을 만들 용기를 갖게 되었다. 큰 집으로 이사한 후 빈 공간에 화실을 만들어 학생들과 성인 미술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20여 년 만에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서 미술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만남도 시작되었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자 복직도 금새 하게 되었다. 복직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인지 지금은 학교 밖에서 만나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함께 일하는 중학교 미술교사는 학교에서 나와 마주치는 시간이 적어 종종 메시지로 대화를 한다. 교사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20대의 그녀는 물감 주문이나 도자기 화덕을 사용하는 문제 등 늘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나와 의논한다. 일적인 관계이다. 공적인 만남을 하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늘 밝고 활기차며 따뜻하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읽고(메시지 창의 작은 글씨체를 읽는 것이 피곤한 일이기는 하지만) 힘껏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메일이나 메시지로 답변한다. 새삼 나에게 인간관계를 하는 데 있어 만남이란, 직접적일 수도 있고 간접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면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든 카톡으로든) 그 사람의 말투나 마음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 그럴 걸까. 그들의 문자 속 글에서는 따뜻하게 혹은 차갑게 하물며 비꼬는 마음도 보일 때가 많다.


짧든 길든 글이라는 것에 묘한 힘이 있다.


자신을 꽁꽁 숨기는 이와는 긍정적 만남을 했더라도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사람에게 한 두 번은 다가갈 수 있겠지만 계속 나와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면 깊은 관계는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너무 감상적이라 마음이 맞는다고 느껴지면 내 이야기를 털어 높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이 뻔히 자신이 아닌 다른 쪽으로 돌려 이야기하는 것이 보이는 대화가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솔직하게 내 모습을 먼저 보인 것이 손해라고까지 후회한다. 나라는 사람은 가볍게 관계를 하는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가벼운 관계는 공적으로나 내게 필요한 관계라 지속해야 하는 긍정적인 만남이라고 해두자. 모든 만남을 깊은 관계로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학교에서는 종종 학부모님들을 마주친다. 등하교 시에 인사만 하고 헤어질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은 직접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러 오실 때도 있고, 온라인상으로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쪽지, 메일 등이 올 때도 있다. 이 만남은 조심스러운 관계라 귀한 손님을 모시듯 매우 친절하게 대하는 편이다.


직업상 매일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관계는 생기지는 않는다. 카페나 특정한 상점에 매일 가지도 않기에 새로운 만남보다는 익숙한 관계를 하는 만남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들의 남겨진 조각'이라는 매거진을 통해 지속적인 만남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이야기 조각들을 조금씩 풀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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