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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엘리 Dec 04. 2022

프롤로그. 조각조각 모아 모자이크 만들기

스치는 인연에도 흔적은 남는다

손님을 상대하는 일을 하며 산다. 이제 해가 바뀌면 무려 6년 차 접객 경력자의 길로 접어든다. 일의 특성상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교류하며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손님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셈을 치르면 관계는 끝이 난다. 이 짧은 순간에도 손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흔적을 남긴다. 단골손님은 단발성 손님에 비해 조금 더 많은 흔적을 남긴다. 덕분에 나에게는 손님들의 분위기, 냄새, 말투, 단어, 겉모습, 제스처, 미소와 같은 특징들이 쌓인다. 아무리 많은 흔적들이 쌓인다 해도 개개인의 손님에 대해서 아는 바는 그 사람 전체 모습의 1%도 안 되겠지만, 그 특징을 통해 나는 사회를 들여다보고 세상을 넓혀간다.


뉴질랜드로 이주해서 일했던 첫 번째 직장은 바쁜 도심 상업지구에 위치한 제법 매출이 큰 약국이었다. 이곳의 약국은 우리나라의 약국과는 달리 병원에서 받아온 처방전에 따라 약만 내어주는 곳이 아니다. 처방약을 비롯하여 처방전 없이 파는 각종 의약품, 그 밖에 영양제나 화장품류처럼 헬스와 뷰티 항목으로 여겨질 만한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게다가 내가 일했던 약국에서는 특이하게 로또 판매를 했기 때문에, 나는 로또도 판매했다. 약학 테크니션 자격을 얻기 위해 학교에서 익혔던 지식과는 별개로 약국 현장에서 배우고 알아두어야 하는 것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비슷한 것 같아 보여도 매일 다른 손님을 만나고, 매일 다른 손님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의 직업이었던 약학 테크니션 일을 뒤로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모텔 운영이다. 모텔은 호텔처럼 대규모 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오너가 거의 모든 일을 한다. 예약, 접객, 청소, 물품 및 시설 관리를 총망라한다. 약국만큼 많은 손님을 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손님과 대화를 하고, 주변 정보를 안내하고, 한 손님이  떠나면 그들의 흔적을 지우고 다른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마비시킨 시절에 모텔을 인수했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뉴질랜드 전국에서 찾아오는 국내의 손님들만을 만났다. 전국을 누비며 제품 홍보과 관리를 하는 세일즈맨들, 새 집을 짓거나 사러 오는 은퇴자들, 주말여행을 오는 연인들과 가족들도 만났다. 유럽과 호주에서 관광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지 불과 한 달 여가 지났을 뿐이다. 개별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외국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현재 우리 모텔은 거래하고 있는 여행사를 통해 주로 독일인 단체 관광객들이 오고 있다.    


‘그들의 남겨진 조각’에서는 뉴질랜드에서 만났던 또는 만나는 사람들, 주로 손님들이 내게 남겨 놓은 흔적 이야기를 적을 작정이다. 때로는 그들의 말 한마디, 눈짓 하나가 글 전체의 소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작은 조각들을 모아 붙이면 하나의 큰 모자이크 작품이 될 수 있듯이, 손님들의 작은 흔적들이 쌓이고 쌓이면 큰 세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이 매거진을 채워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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