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입구에 이런 변이!!!
일했던 약국은 아침 여덟 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출근하자마자 유니폼을 걸치고 조제실의 컴퓨터와 매장의 결제용 컴퓨터 세 대, 로또 판매 틸(till)을 부팅시켜 놓고 입구의 무거운 미닫이형 문을 양쪽으로 힘껏 밀어 연다. 그리고는 입구 양쪽에 판매용 모자걸이, 우산 진열장, 홍보용 카탈로그 스탠드를 차례로 보기 좋게 배치한다. 영업의 시작을 알리는 루틴이다. 여름에는 챙이 넓은 햇빛 가리개용 모자가 진열되고, 겨울에는 방한용 모자가 진열되어 계절의 변화를 말해주지만 약국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일 년 내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영업을 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차례로 직원들이 속속 출근했고 몇몇 손님들이 다녀갔고 몇 개의 처방전을 처리했다. 마침, 도착한 주문 물건과 약을 선반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한 손님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내가 인사도 건네기 전에 먼저 말을 건다.
“약국 입구 앞, 길에 똥이 있네요. 아마 개똥이지 싶어요.”
나는 웃으면서, 알려주셔서 고맙다고 답했다. 그 말을 하려고 들어왔던 손님은 말을 마치고는 미련 없이 뒤돌아 나갔다. 떠나가는 ‘친절한 그이’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는 ‘아! 어쩌란 말인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동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매장 안에 나 이외의 다른 직원도 있고, 매니저도, 사장님도 있는데 왜 하필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 것인가? 이런 일을 매니저에게 말해야 하는가? 말하면 어차피 나에게 똥을 치우라고 하려나? 개 주인은 본인 개의 똥을 안 치우려면 개를 데리고 나오지 말아야지, 어쩌자고 남의 영업장 앞에 똥을 그대로 두고 갔는가? 따지고 보면 약국 매장 안도 아니고 매장 밖의 도로인데 이것을 약국에서, 그중에서도 내가 치워야 하는가?
변기에 묻어 있는 남의 똥 정도는 변기 솔로 닦아 청소해봤다. 그러나 애도 없고 개도 없는 나는 통째로 떨어져 있는 온전한 형태의 남의 똥(사람 똥은 아닐지라도)은 치워본 적이 없다. 약국의 쓰레기통도 비우고 선반도 닦고 청소기도 돌리는 약국 청소 업무도 하고는 있지만, 약국 앞의 똥을 치우는 업무까지 해야 된다고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약국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행여나 불편할까 얼른 치워야지’ 하는 주인 같은 마음은커녕, 가능하다면 굳이 내가 치우고 싶지는 않았다. 못 들은 척, 안 들은 척하고 약국 안에서의 업무를 계속했다면, 수시로 밖을 드나드는 사장님이나 다른 직원이 발견하고 치웠을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도로 청소를 하는 그 지역 환경미화 업무 담당자가 치울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었다.
약국 앞 똥 치우기를 피할 수 있는 여러가지 대안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그렇지만 결국, 라텍스 장갑을 꺼내어 끼고, 종이봉투와 비닐봉지를 겹쳐 들고 나가 약국의 다른 직원이나 매니저, 사장님도 모르게 문제의 그 똥을 처리했다. 아무도 몰래, 약국 앞의 똥을 처리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장님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는 내 직장이 소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싫은 그 일이, 그 누구라도 좋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날의 ‘약국 앞 똥 치우기’는 지금까지 나만 알고 있는 일이다. (약국을 떠날 때, 내가 겪었던 모종의 사건 때문에 나는 이런 일을 하고도 생색을 내지 않은 것을 조금 후회했다. 할 때는 말없이 했을 지라도, 적어도 하고 나서는 매니저한테라도 말할 걸 뒤늦게 생각했다.)
영업장 앞에 똥이 떨어져 있다면 누가 치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영업장의 가장 말단 직원이 그 일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 영업장의 가장 높은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영업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이 사장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일뿐만 아니라 가장 힘든 일, 가장 더러운 일 역시 주인, 사장의 몫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사장이 아니라면, 그 영업장 관리를 맡은 매니저가 다음 차례가 되어야 한다. 힘든 고객, 더러운 상황을 매니징하라고 고용된 사람이 매니저니까 말이다.
모텔 사장이 되었다. 직원이 아닌 사장은 처음이다. 우리 모텔의 직원이 출근해서 손님이 다녀간 객실을 청소하는 동안 사리씨는 종종 똥을 치운다. 새소리로 아침을 여는 뉴질랜드 시골에는 새가 참 많다. 하루만 건너 뛰어도 난간이며 계단에 새똥 천지다. 객실에 들어가 싸놓기도 한다. 걸레를 들고 돌아다니며 새똥을 닦는다. 깜깜한 밤에 동네 산책 나온 고양이들이 남기고 간 마당 한 구석의 고양이똥, 개를 데리고 나왔다가 개 주인이 뒷처리를 하지 않은 모텔 앞 길의 개똥을 치우는 것도 흔한 일이다. 어쩌다 객실의 변기가 막히면 막힌 변기를 뚫는 것도 사리씨이다. 역시, 사장이 똥을 치우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사랑하는 사이에도 상대의 똥을 치우는 것은 유쾌한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직원이 우리 모텔을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 해도 우리 모텔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사리씨와 내가 아니겠는가? 이쯤 되니, 약국 앞의 똥 치우기가 다시 생각난다. 사무실에 앉아 있던 사장님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약국 앞에 똥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 것을 그랬다. 그랬다면, 그 곳의 사람들 중에서 약국을 가장 사랑하는 사장님이 벌떡 일어나 나가서 치웠을지 또 모를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