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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Dec 29. 2022

미완성 된 이야기

부정적 편견을 만드는 싱글 스토리

얼마 전 연말 홈파티에서의 일이다.

맛있어 보이는 사모사(매콤하게 으깬 감자소가 들은 인도식 튀김만두)를 집어 한 입 베어 먹었다가 너무 매워서 끝내 못 먹고 내려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파티를 연 집주인이 이 정도 매운맛은 딱 좋은 것 같은데 나의 입맛에 맵냐고 물어보았다. 순간 식사를 함께하던 동료들이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았고, 누군가 소리쳤다.

"한국인인데 매운 걸 못 먹는다고? 한국인스럽지 않은데? 이 정도는 약간 매운맛인데 말이야. 하하하, 진짜 한국인인 맞아?"


어릴 때부터 매운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파서 덜 먹는다는 이야기나 한국식 달콤한 매운맛은 인도식 매콤함과는 다르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나는 한국인스럽지 않은 한국인이 되었다. 금세 매콤한 음식, 매운맛의 강도, 각 국가의 색다른 매운맛으로 화제는 전환되었다. 이 날 함께한 동료들은 영국인, 인도인, 멕시코인, 미국인, 캐나다인, 터키인, 뉴질랜드인 등 다양한 국적의 국제학교 교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자 취향의 매운맛 토크로까지 이어졌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것과 강도는 개인적 취향임을 잘 알고 있는 그들도 내게 한국인스러움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였다. 한국인스럽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편견은 식사 시간 내내 인종차별이라도 받은 마냥 불편함으로 남았다.



2009년, Chimamanda Adichie라는 나이지리아 여성 소설가가 Ted 강연(한국의 세바시 강연과 같은 세상을 바꾸는 목적을 둔 강연)에 나온 일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강연 내용이 좋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물론 국제학교 학생들이나 교사들에게도 큰 깨달음을 준 강연이었다. 그녀는 'The danger of a single story'라는 주제로 20분 정도의 강연을 하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영어로 된 책에서(미국이나 영국에서 온 책) 말하는 아프리카의 삶은 그녀가 살고 있는 삶과는 꽤나 달랐다고 하며, 그녀의 강연은 미국으로 대학을 가자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남에게 전해 들은 하나의 이야기로(특히나 부정적인 이야기) 사람이나 국가 전체를 일반화하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일반화가 비슷함에서 다름으로, 인간의 평등함을 불평등함과 차별을 만든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가난, 에이즈, 전쟁에 허덕인다는 하나의 이야기만 듣고 자신을 불쌍히 여겼다는 미국인 룸메이트 이야기가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그 룸메이트뿐만 아니라 나도 흑인 친구를 사귀기 전까지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 룸메이트가 아프리카인들도 평범하게 교육을 받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나이지리아 중산층 가정에서 교육을 받고 잘 살아온 그녀를 오해하여 불쌍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많은 이야기들 중 그녀가 대학 때 쓴 소설의 등장인물인 아프리카인이 아프리카인스럽지(authentic african) 않다는 미국인 교수의 지적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교수가 지적한 정통적인 아프리카인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기대하는 인물은 아프리카인들 중 단면일(인물이든 국가든) 뿐이다. 즉 미완성 된 이야기만 존재한다고 그녀는 일깨워 주었다. 교수는 순수하게 아프리카인의 이야기를 읽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그에게 '아프리카인스러움'을 가진 인물만 기대하고 그 부분이 드러나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어온 교수나 우리는 또 다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톰슨 씨와 결혼을 하기 전 그의 나라와 문화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주변 지인들이 수군거렸다.

'마오리는 뉴질랜드에서 미개한 원주민에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가난하며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인종이야. 미국에 흑인들을 생각해 봐. 깡패가 다 흑인들이잖아.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이런 부정적 시선과 생각을 듣고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톰슨 씨는 교육도 제대로 받았고, 인성도 바르고 생각이 깊은데. 마오리면 다 그런 건가. 왜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지하며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자주 접하는 뉴질랜드 지역 카페나 코리안 포스트에 마오리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담긴 표현과 글들이 올라와 속상한 적이 많았다. 뉴질랜드로 이주한 유러피안인 백인들에게는 키위라고 하면서, 마오리는 덩치 큰 원주민이라고 칭하거나, 대놓고 마오리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적는 글들이 난무하였다.

예를 들면 '마오리인들이 적은 안전한 지역 추천 바랍니다'라는 문구 말이다.


내가 아는 톰슨 씨 가족들 중 덩치 큰 이들은 없고 오히려 그의 누나들은 나 보다도 체구가 작다. 또한 마오리와 유러피안의 혼혈이 많기에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거나 마오리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톰슨 씨처럼 아이리쉬 피가 섞인 혼혈인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사촌들과 조카들은 그와는 다르게 겉모습은 유럽인 같은 마오리 혼혈도 많다. 나의 아이들은 한국인스러운 마오리계 혼혈 아이들이다. 나는 마오리 혈통을 무조건 비방하는 말들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 것인가. 흘러 듣기에는 꽤나 마음이 쓰인다.


17년의 세월을 함께하면서 그나 그의 가족들이 마오리이기 때문에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가난하며, 덩치가 커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다. 그의 어린 시절 가족의 수가 많아 넉넉치 못한 살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가 마오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을 사랑하는 마오리 전통과 성실하며 바른 인성을 모든 이들이 칭찬한다. 또한 이러한 성품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우리가 실제로 접하지 않은 이야기라면 그 말을 전적으로 믿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하나의 이야기로는 끝나지 않을 장편소설 같은 우리의 삶이 함부로 판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Ted Speaker 강연자: Chimamanda Adich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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