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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Mar 31. 2023

나를 닮지 않은 아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엄마로서.


1. 나를 닮지 않은 아이


아이는 나를 닮지 않았다. 나를 닮았더라면 하얀 피부와 갈색머리, 오뚝한 코, 옥소리처럼 큰 눈을 가졌을 텐데.

굳이 말하자면 아이는 못난 얼굴에 속한다. 주근깨가 가득하고 가무잡잡한 얼굴, 까만 머리, 튀어나온 눈, 매부리코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점 투성이다. 못난 얼굴에 고집스러운 성격까지 가졌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평범하게 자랐다.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 동안 말썽 한번 부린 적이 없었기에 학교에 불려 간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특출 나게 잘하는 과목이 있어 상을 받거나 일등을 하는 일도 없었다. 나는 아이가 나를 닮지 않아 그런 것 같았다. 나를 닮았더라면 계산적인 머리가 있었을 것 같다. 어릴 때 몇 번 주산을 가르쳐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가르 칠 수가 없었다. 슈퍼마켓에서 장 바구니에 넣는 식품을 암산으로 계산시켜 보려 했으나 매번 실패하였다. 아이는 수학과 과학을 포기한 것 같았다. 공대를 나온 아이 아빠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틈만 나면 독서를 하고 음악 듣는 것을 즐겨했는데 아무래도 아이는 그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주인과 함께 거주하는 주택 반지하 월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는데, 아이 아빠와 단 둘이 알콩달콩하게 보낼 시간도 없이 아이가 들어섰다.

임신과 동시에 나는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을 정도로 지옥 같던 입덧이 시작되었다. 입덧을 견디지 못한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주변 이웃들은 태어나지도 않은 아가가 엄마를 말라 죽이네 하며 불쌍히 생각했다. 임신 기간 내내 몸과 마음이 시들어 갔다. 고통스러웠던 임신 내내 말라버린 나와 다르게 아이는 적당한 평균치의 몸무게와 키를 가지고 태어났다.

다행이다. 미숙아로 태어나지 않아서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밤낮으로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아무리 견디려 해도 견딜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예민하여 통 잠을 잔 적이 없다. 낮이나 밤이나 귀청 떨어지게 울고는 하였다. 집주인이나 주변 이웃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아이 아빠가 출장을 간 날, 밤새 아이를 안고 있다가 졸아서 아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며칠째 잠을 자지 못했던 날이었다. 너무 괴로워서 아이를 베개에 잠시 묶어두고 지쳐서 옆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고작 24살이었다. 내 젊은 청춘이 이렇게 시들어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직업 군인인 아이 아빠는 아무리 고단해도, 아이가 울거나 내가 발로 툭 치면 벌떡 일어나 아이의 분유를 타서 아이를 데리고 안아 재웠다. 첫 아이라 그런 것인지 아이 아빠는 늘 아이를 예뻐해 주었다. 성실한 이 남자를 볼 때마다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형제들 중 최고로 잘 살고 싶다. 내가 마음을 먹으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 맞선을 봐서 결혼하게 된 이 남자는 집안의 막내아들이다. 형제는 많지만 시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셨다. 공과 대학을 나왔고, 성실한 성격에 직업 군인이 될 것이라고 했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장군 와이프가 되고 싶었다. 아이가 4살이 채 안 되었는데, 근무하던 군대에서 대형 사고가 났다. 아이 아빠는 수술 후 일 년 동안 병원에서 누워 있다가 기적처럼 깨었다. 그가 살아 돌아온 것은 기뻤지만, 그는 더 이상 장군이 될 수가 없었다.


내 꿈이 사라졌다.

꿈을 잃은 그와 나는 종종 다투게 되었다.




2. 엄마를 닮고 싶은 아이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게 못난이라는 소리를 많이 하였다. 또한 ‘어쩜 그렇게 아빠를 닮았니’ 라며 나를 놀리듯 말하는 엄마가 참 이상했다. 아빠는 늘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는데, 아빠를 닮아서 좋다며 나를 예뻐해 주셨다. 종종 동네 이웃집 사람들은 나와 젊고 예쁜 엄마를 비교하며 친척이냐고 묻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엄마가 예쁘고 날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닮고 싶었다. 엄마가 외할머니와 똑같이 닮았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마흔이 넘은 지금 보니 나는 큰 눈 과눈밑 주름이 (엄마는 눈밑 당김 수술로 없애버렸지만) 닮은 것 같다. 아 또 있다. 엄마 발목에 있는 짙은 푸른 점이 내 왼쪽 팔에도 하나 있다. 엄마는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누군가 사진을 보고 내가 엄마를 닮았다고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엄마는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빠르고 무엇이든지 마음먹으면 해 내고야 말겠다는 자신감과 의지로 뭉친 사람이다. 엄마는 유치원 교사, 요리사, 부동산 중개인, 증권 투자등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미처럼 따고 끝내는 일을 반복하였다. 직업이 아니라면 수영과 골프등 일정한 연습과 단계를 거쳐야 하는 운동으로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엄마의 빠른 결단과 성취욕이 부러웠다. 엄마처럼 해 보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비교당하는 것은 그리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면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 그래서였을까 더 열심히 책을 읽었다. 나는 글쓰기나 그림 그리는 것을 꽤나 좋아했지만, 칭찬받기 위해 주산도 배우고 수학도 열심히 하였다. 학교에서는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중학교에 가서는 과학 과목 중 생물이 재미있었다. 시험 점수도 잘 나와서 엄마에게 자랑하려고 했는데, 엄마는 수학점수와 반 등수만 눈여겨본 것 같았다. 나는 시험을 잘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시험 문제를 이해하거나 문제집을 외우는 등의 학습방법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 주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잘 따라가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어려웠다. 수학과 과학에 뒤쳐지자 엄마는 나에게 실망한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미워한다고 생각까지 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 신경 쓰고 거슬리는 일은 꼭 다시 돼 씹는다. 본인 생각이 늘 옳다고 믿는 고집스러운 엄마는 늘 힘들어 보였다.


이러한 엄마의 모습은 닮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와 나는 이제 다르지만 닮아 있었다.  




3.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엄마로서


졸업 후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났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느껴졌다. 왜 ‘어머니의 마음’ 노랫가사에 ‘진 자리, 마른자리,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는’ 이 나오는 지를 알게 되었다.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육아였다. 아이들이 크면서 예쁜 행동도 했지만 미운 행동도 많이 했다. 종종 아이들에게 투덜대면서 주 양육자였던 우리 엄마도 나를 키우면서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자유시간이 송두리째 사라진 지난 십 년을 돌이켜 보면 더욱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나를 키우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미웠을까. 사실은 나도 안다. 내 몸의 한 부분 같은 아이를 예쁘다니 밉다니 하고 따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의 소중한 가치 때문이다.


나의 첫째 아이는 나를 많이 닮았다.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도 닮았지만, 길게 파인 동양인 눈과 주근깨 가득한 얼굴도 똑 닮았다. 아이가 태어난 지 13년이 흘렀는데, 태어난 그날이 어제처럼 기억난다.

파란 눈의 조그마한 두상의 서양 아이들 사이에 이름표 없이도 알아볼 수 있었던 까만 눈의 아이. 나를 꼭 닮았다.

나의 좋은 점만 닮으면 좋겠지만, 아이는 여과 없이 골고루 닮아 가는 중이다. 첫째 아이는 내가 본인을 미워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언짢은 표정을 하거나 둘째 아이와 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는 서운하다는 표현을 한다. 내가 질책하거나 실망하는 것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엄마로서 맹세코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의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겠지.


이번 이야기는  '희.로. 애. 락. 애. 오. 욕' 중 ‘오(미움)’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성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 애. 락. 애. 오. 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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