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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Apr 07. 2023

건강한 욕망

그리고, 쓰고, 운동하고.


1. 내신점수를 깎으면 안 될 과목, 체육


“내일이 체력장이야, 어쩌지. 이번에도 망하면 내신 떨어지는데.”

“세상에서 체육이 제일 싫어.”

“나는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100미터 기록이 잘 안 나와.”

“차라리 400미터 달리기가 낫지. 아 정말 싫다”

“수영이라면 자신 있는데, 왜 이런 것만 점수 매기는 거야??”


고등학교 시절, 철봉 매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는 한 개 이상 성공한 적이 없고, 달리기는 거북이처럼 느리기만 했다.

어릴 때부터 허약하기도 했지만, 수영 외에는 스포츠를 배운 적도 없고 즐긴 적도 없다. 1990년대 고등학교를 다녔던 많은 학생들에게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

열정과 열망을 알지도 못했으며, 그나마 예체능 과목을 좋아했다거나 전공하겠다는 일찌감치 마음먹은 나 같은 학생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 그쪽길로 빠르게 접어들 수 있었다. 그러니 공부 외 운동을 진심으로 즐긴 자가 얼마나 있을까. 지금 우리 집 아이들처럼 원하면 스키를 타고, 수영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열정(passion)을 찾기 위한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자녀의 건강한 체력을 길러주기 위해 혹은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부모와 함께하는 동네 산책, 시내 걷기, 등산, 스포츠를 함께 하는 활동등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체력장이나 체육점수가 내신을 깎아먹지 않을 정도만 줄넘기 시험전에 설렁설렁 연습 했던 것을 운동이라 불렀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어린 시절 다녔던 수영 학원이 자신감을 가지게해 주었던 것인지 수영 외에 체육시간 잠깐씩 경험해 본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꽤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후 운동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던 터라 나는 늘 체육 과목에 소심했고, 성인이 되고도 한참을 운동과 멀리 하였다.


2016년, 새로 이직한 학교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던 해였다. 국제학교 교직생활 십 년 만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험하지 못한 문화권과 생활환경 등에 적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와중 동료교사 두 명이 매년 실시하는 피검사 소견상 나온 이상반응으로 부랴부랴 출국하였다. 그들은 각각 유방암과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그 해에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석유회사 재단의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두 명은 이미 그곳에 십 년 정도 거주한 교사들이었다. 깨끗한 환경이 아닌 그곳의 물은 먹을 수 없었고, 미세먼지나 공이 오염도도 상당히 높은 나라였다. 또한 자국민의 암 진단율이 높고 의료기관의 수준은 매우 낮은 상태였다.

새로운 나라와 직장에 적응하던 중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며 지내던 중, 가슴 통증이 찾아왔다. 생각이 지배해서 그런지, 가슴에서 무언가 만져지는 것 같기도 했다.

덜컥 겁이 났다. 둘째 아이가 돌쟁이였던 그때, 나는 만으로 36살이었다.   

그 해 계획에 없던 여러 가지 유방암 검사를 했고, 여러 개의 혹들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그중 한 개가 꽤 크고 모양이 좋지 않으니 조직 검사를 하자고 했다.


*유방암 조직 검사(Breast Biosy): 유방의 종괴가 의심될 때 암세포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세침 흡인 세포검사, 침생검, 맘모톰 등으로 조직을 채취하여 조직 검사를 시행한다.


  


2. 건강하고자 하는 마음


유방암 조직 검사를 했던 그 해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다행히 암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그 사건은 내게 경고장 같은 메시지였다.

서른 여섯해동안 운동, 헬스장, 스포츠 등을 멀리, 멀리 했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스트레스 완화의 목적으로 명상과 요가를 참여하고 있었는데,

주 1회 하는 요가를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처음으로 헬스장을 등록해서 주 3회 그룹 운동 클래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워낙 기초 체력도 없고, 운동을 한 경험이 없어 어지럽고 힘들기만 했다. 또한 혼자 동양인이라 튀는 것은 말할 것 없었다. 자신감이며 자존감 모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자가용으로 가면 5분 거리로 멀지 않았지만 도보로 30분 정도 걸려 매우 귀찮았다. 또한 직장에서 8시간 근무 후 바로 가거나 저녁식사를 차려 준 후 가야 하는 저녁 운동은 좀처럼 실행되기가 어려웠다.

주 3회를 가려고 했던 마음은 어느새 1회로 줄어들고 일 년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놓은 터라 돈 낭비가 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건강을 위한 것이라지만 하기 싫은 것을 혼자 억지로 하려니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핑곗거리만 생기고 재미가 없었다. 운동은 재미없었지만, 건강하고자 하는 마음은 계속 남아 있었다.

주말에는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같은 사택에 사는 여자 동료들과 함께 가서 오전 운동 후 점심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톰슨 씨에게 스쿼시를 함께 치자고 설득하여 헬스장 가는 시간을 좀 더 늘렸다.

또한 운동 클래스가 힘들 때는, 러닝머신에서 뛰는 것으로 대신했다. 러닝 머신에서 뛰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니 시간이 훌쩍 가기도 했다. 조금이나마 운동하는 활동이 좋아하는 시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운동을 조금씩 한다고 해도 매일 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큰 변화가 없다. 여전히 새로운 환경과 업무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고, 몸은 피로에 찌들어져 있었다.

내가 진행한 주말 워크숍을 참여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온 교사들에게 지방투어까지 시켜주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토요일이었다. 오전부터 왼쪽 머리와 왼쪽 귀 안 쪽이 아팠는데,

두통약으로 해결이 안 되어 한참 머리 쪽을 문지르고 있었다. 어느 한 곳을 누르자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통증이었다.

‘왜 이러지’라고 하기도 전에 나의 혀와 코가 마비가 되고 있었다. 왼쪽 얼굴이 조금씩 마비가 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왔다. 의사인 지인에게 전화하여 증상을 말하니, ‘벨마비’ 같으니 당장 응급실로

가서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쪽 얼굴이 내려앉는 일, 내 몸의 한 곳이 마비가 되는 상황은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 내내 육체적 불편함과 정신적 불안함을 마주해야 했다. 이것은 두 번째 경고장이었다.  


*벨마비(Bell Palsy): 안면 구안와사와 같은 것. 제7 뇌신경의 기능 이상에 의하여 얼굴 근육 한쪽에 일어나는 불완전 마비나 완전 마비.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3. 건강한 욕망


더 이상의 경고장은 절대로 받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 경고장이 너무 셌기 때문이다. 나에게 몇 가지 변화와 건강한 욕망이 생겼다.


욕망 (欲望/慾望):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진행 중인 업무와 받은 감정 모두 직장에 두고 오기 위해 나만의 노트북을 장만하였다. 그동안은 직장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집과 학교에서 개안적인 일과 직장일을 병행했다. 퇴근 후 개인 메일을 읽을까 하고 켠 노트북은 늘 직장업무로 연결되어 스트레스를 추가하기 다반사였다. 직장과 집 사이 진정한 분리가 필요했다. 직장 노트북을 사무실 안에 두고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계약이 끝나던 해 나는 일 년 휴직을 신청했고,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이 있는 나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면서 제일 먼저 하기 시작한 것은 장롱면허를 다시 꺼낸 일이다. 17년 만에 꺼낸

장롱면허를 들고 나에게 편할 것 같은 차를 샀다. 다시 차를 몰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노르웨이 시골에서 독립적으로 덜 불편하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랐고, 운전을 부탁하며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함이기도 했다. 매일같이 차를 몰고 가족들의 출퇴근을 챙기는 일도 했고, 쇼핑을 하러 다니며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제일 중요한 건, 쉽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운동하러 갈 수도 있다. 운동을 하러 가면서 차가 중요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꽤나 중요한 요인이다. 헬스장 근처에 살면 제일 좋지만, 지금처럼 3-4킬로 떨어진 곳에 살면서 나처럼 동기부여가 절실한 사람에게 자가용은 중요하다.  어쨌든 운동을 쉽게 자주 하게 되었다. 운동을 하게 된 지 이제 꽤 되었다. 운동 클래스에서 배운 팁으로 혼자 러닝을 뛰고 근력운동하는 두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무섭게 여겨졌던 헬스장 운동 기구들도 쉽게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은 이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맞벌이로 미루었던 작업실을 만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만의 공간을 처음 만들었다. 그곳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학생들도 가르친다. 작업실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작업실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하므로, 업무와 연결된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라 온통 물감냄새가 진동하고 이곳저곳에 연필가루, 물감자국, 지우개 등이 어질러 있다.

그래도 이곳이 편하고 따뜻해서 앉으면 바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학생들 뿐 아니라 동네 이웃이 와서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는데 나만큼이나 행복하게 머문다.

이곳에서 쓴 글과 그린 그림이 나에게 그렇듯 다른 이에게도 공감이 되길, 건강한 욕망을 꿈꿔본다.  


이번 이야기는  '희.로. 애. 락. 애. 오. 욕' 중 ‘욕(욕망)’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 입니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성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 애. 락. 애. 오. 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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