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된다, 내 멘탈만 빼고.
이전 글에서 영국 NHS와의 악연을 다룬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7401a069bda44c6/14
그런데, 사실 영국에서 느린 건 NHS만이 아니다.
비자국, 학교 행정실, 그리고 교수들까지.
툭하면 유학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영국 대학의 행정 시스템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돌아간다.
담당자의 컨디션에 따라 심각한 서류가 10분 만에 처리되기도 하고, 같은 서류가 몇 주째 감감무소식일 때도 있다. 특히 입학 시즌이 되면 이런 불확실성은 극에 달한다.
정말 미치겠는 건, 결국 일이 어떻게든 진행되긴 한다는 것이다.
내내 묵묵부답이던 담당자가, 마감 직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갑자기 서류를 내준다.
혹은, 이미 마감일을 넘겼지만, 서류를 받는 쪽도 마찬가지로 느려서 마감일 자체가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빨리빨리의 민족"인 나는 매번 속이 터지지만, 정작 그들은 태연하다.
오히려 내가 쓸데없이 조급했던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2021년, 새로운 석사과정을 시작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원래 학석사 통합과정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사 졸업 전에 다른 학교의 석사 과정에 지원했고, 조건부 합격을 받았다.
조건은 단순했다.
1) 1st class Honor (최우등)으로 학사 졸업
2) 7월 31일까지 최종 성적이 기재된 졸업장을 제출
하지만, 영국에서는 이게 단순할 리가 없었다.
그 해는 코로나로 인해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전면 온라인 운영되었다. 행정 절차는 한 없이 늦어졌고,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우리도 처음이라서요.”
최종 제출일이 고작 10일 남았는데도, 졸업장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영국에 살면서 늘 그래왔듯이, 또 피가 마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학사과정 코디네이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바로 답장이 왔다. 자동응답이었다.
“여름휴가 중입니다.”
그날부터 매일 영국 출근 시간에 맞춰 학과 사무실에 전화했고, 학교 온라인 행정 시스템은 물론, 학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DM까지 보냈다.
돌아오는 건 뻔한 답변뿐이었다.
“제 담당 업무가 아닙니다”
“담당자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묵묵부답)
석사 진학의 가장 큰 관문이 입결을 뚫는 것도, 입학 조건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고작 제때 졸업장을 발급받는 것이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석사 과정 코디네이터에게 3년 치 성적표를 보내며 물었다.
‘이 성적이면 졸업이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걸로 입학 처리를 해주면 안 될까요?’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공식적인 졸업 증명이 필요합니다”
7월 28일, 제출 기한 3일 전,
이제는 루틴이 되었다.
영국 출근 시간. 전화. 이메일. DM. 좌절.
그런데,
띵.
이메일함에 알림이 떴다.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학사 코디네이터였다. 그리고, 첨부파일.
‘임시 졸업 확인서 (In lieu Notice of Award)’
서류를 보내자마자 석사과정 입학 증명서와 새로운 학생 비자 신청을 위한 ‘CAS 넘버’가 발급되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막혀 있던 일이, 갑자기, 순식간에 해결됐다.
‘이제, 비자만 신청하면 된다.’
… 정말로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인 7월 31일.
학교는 마치 원래부터 그럴 예정이었다는 듯, 공식 졸업장을 발급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