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Zopf
“왜 이렇게 머리카락을 기른 남자가 많지?”
독일 생활 두 달 차, 학교로 향하던 트램 안에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이전에 살던 영국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봤다. 아니, 헤어스타일뿐 아니라 외모 전반의 스펙트럼이 더 넓었다. 한국에서라면 ‘눈에 띄는’ 외모가, 거기선 넓게 퍼진 벨 커브 안에 편안히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웬만한 스타일링에는 크게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와서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했다. 머리가 치렁치렁하게 긴 남자들이 꽤 많았다. 적어도 그날 타고 있던 트램 안에서는 네 명 중 한 명꼴이었다.
영국에서도 가끔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들을 보긴 했지만, 이 정도로 흔하진 않았다. 오히려 거기는 대머리가 더 흔했다.
‘왜지?’
그 의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혹시 이 나라의 미의 기준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걸까? 남자의 찰랑이는 머릿결이 스타일리시하다고 여겨지는 걸까?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빗질을 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가끔은 정말 오랫동안 머리를 감지 않아서, 그 풍성한 머리카락 속에 작은 생태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혹시 미용실이 너무 비싼 걸까? 아니면 어떤 자연주의 문화의 영향일까?
수많은 가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사이, 트램은 학교에 도착했다.
그날은 NODE 과제를 함께하는 조원과 답을 맞춰보는 날이었다. 우린 여전히 썩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무뚝뚝한 대화만 이어졌다. 솔직히 몇 번 과제를 같이 하다 보니 손발이 너무 잘 맞아서… 오히려 대화의 빈도는 더 줄어들고 있었다.
과제를 제출하고 집에 가려던 찰나, 친구가 물었다.
“나 점심 먹으러 Mensa(학생 식당)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수학과 건물에서 나와 친구와 함께 멘자로 향했다. 역시 우리는 별로 말이 없었다.
11월 말의 독일답게 날씨가 흐렸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바람이 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던 그때,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첫 유럽 겨울은 어때?”
“아, 나 유럽 겨울은 익숙해. 영국에서 대학 다녔거든.”
친구가 잠깐 멈칫하더니, 물었다.
“… 어쩌다 날씨 구린 나라만 골라서 다니게 된 거야?”
“그러게… 물리학 같은 걸 공부해서 그런가…?”
그리고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번엔 내가 말을 꺼내야 할 차례였다. 친구가 먼저 한 마디를 던졌으니, 이제는 내가 뭔가를 꺼내야 했다.
식은땀이 살짝 나는 것 같았다. 알맞은 대화 주제를 찾기 위해 머릿속을 뒤적였다. 그러다 문득, 아침 내내 고민했던 그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독일 남자들은 원래 머리 기르기 좋아해?”
“응?”
친구가 살짝 놀란 듯 되물었다.
“트램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그렇고… 머리 긴 남자들이 꽤 많더라고. 그게 독일 문화인가? 싶어서.”
친구는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진짜네? 지금 보니까 왜 이렇게 많지?”
또 정적. 다시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자기 나라 문화를 비난한 걸로 들렸나?’
‘다음엔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분위기 이상해진 건가…’
혼자 고민하고 있던 찰나, 친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말이 맞는 것 같아. 근데 그거… 독일 문화가 아니고, 수학과 너드 특징이야.”
그리고는 그날 점심 먹는 내내,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진짜야. 진짜로 머리 긴 애들이 많아…’
그날은 그렇게 조용히 헤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수업 시작 전에 친구가 내 옆에 와서 말했다.
“어제 네가 한 말 때문에 진짜 빵 터졌잖아… 오늘 강의실에도 머리 긴 애들이 다섯 명이나 있더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 표정은 진지했다. 심지어 약간 피곤해 보이기까지 했다.
‘진짜로 웃긴 게 맞나..?’
그날 이후, 친구는 머리로 zopf(땋은 머리)로 묶은 사람만 보면 이 이야기를 했다.
'이게 그렇게까지 웃긴 일인가...?'
여전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말을 꺼낼 땐, 우리 둘 다 평소보다 조금 더 말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