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의 거리에서
수완나품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드디어 방콕 시내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그랩을 타고 이동해서 호텔에 체크인한 후 세븐일레븐에 맥주를 사러 나갔는데, 술 섹션이 모두 닫혀 있었다.(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태국은 오전 11시~오후 2시/오후 5시~자정까지만 술 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필 딱 술 판매를 하지 않는 시간에 맞춰간 우리는 아쉬운 대로 컵라면과 주스를 몇 캔 사서 아쉬운 마음을 안고 호텔로 돌아갔다.
"우리 오늘 뭐 하지?"
항상 큰 이동을 하는 날에는 피곤해서 딱히 계획을 짜 놓지 않는 편인데 체크인, 편의점 탐방 등 이것저것 하고 난 후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다.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기 싫었던 우리는 여행자들의 성지로 불리는 '카오산로드'에 가기로 결정했다.
옷을 갈아입고 그랩을 잡아탔는데 카오산로드는 내가 있던 수쿰윗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적어도 차로 30분 정도는 걸렸다. 한국이었다면 지루함에 잠이 들었겠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계속 보이는 낯선 건물들과 차들 사이를 피해 다니는 오토바이들에 시선을 뺏겨 카오산로드에 도착할 때까지 한국에서의 필수품이었던 에어팟도 끼지 않고 휴대폰 한 번 들여다보지 않았다.
(카오산로드는 생각보다 면적이 커서 정해놓은 가게가 있다면 미리 위치를 확인한 후 가까운 길에서 내리시는 게 좋아요!)
택시에서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갓 스무 살이었던 우리에겐 정말 별전치였다. 사람과 노랫소리가 가득한 거리는 20살 되고 가본 곳이라고는 역전할맥이 다였던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오토바이들과 툭툭이 한 곳에 모여 호객하는 소리,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소리,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등에 조금이라도 정신을 뺏기면 친구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친구 옷자락이 늘어나도록 꼭 붙잡고 다녔다.
우리가 카오산에서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한 건물 2층에 있는 인도 음식점이었다. 딱히 인도음식이 당겼던 건 아니고, 좀 조용한 실내에서 밥을 먹고 싶었다.
복잡하고 좁은 통로로 올라간 뒤 가게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니 인상 좋아 보이시는 종업원아저씨 한 분이 오셔서 테이블 세팅을 해주셨다. 우리가 고른 메뉴는 탄두리치킨에 이름 모를 볶음밥 하나 그리고 창맥주 한 병. 그냥 사진이 맛있어 보여서 시킨 음식들이었는데, 볶음밥이 말도 못 하게 매웠다. 뭔가 속이 쓰린 느낌의 위산 올라오는 매운맛이었는데 또 은근한 중독성이 있어서 볶음밥 한 입, 시원한 맥주 한 입을 반복하며 깨끗하게 다 비웠다. 이름을 알았다면 한국에서도 찾았을 독특한 맛!
친구와 열심히 밥을 먹던 도중 친구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뒤에 아저씨랑 자꾸 눈 마주친다.."
친구 이야기를 듣자마자 뒤로 휙 고개를 돌렸는데 진한 인상의 인도인 아저씨가 밥을 먹다 말고 아예 의자를
뒤로 돌려서 우리를 구경(?)하고 계셨다. 당황한 나는 급히 고개를 돌리고 친구에게 말했다
"아니 나 뒤통수에 구멍 나겠는데;; 원래 저 나라는 사람을 저렇게 쳐다보나?"
친구와 아저씨가 쳐다보시는 이유에 대해서 한참 토론하던 중 그냥 "다른 나라 사람이 외국까지 와서 자기 나라 음식 먹는 게 뿌듯하신가 보다"라는 결론을 내고 아저씨와 눈이 계속 마주치는 내 친구가 밥 먹다 체하기 전에 얼른 가게를 빠져나왔다.
가게를 빠져나가서 주변을 둘러보던 중에 빵빵거리는 스피커 소리가 아닌 사람목소리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호객행위를 계속 거절하며 천천히 소리를 따라가니 조그만 재즈바가 나와서 우리는 주저 없이 바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마르게리따 피자 한 판과 '소주 밤'과 그리고 모히토 한 잔을 주문한 후 우리를 가게로 이끈 목소리의 주인공을 마주했다. 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분이셨는데 잔잔한 가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허스키한 보이스의 소유자셨다. 그런데 그런 목소리에서 달달한 팝이 흘러나오니 이상하게도 홀린 듯이 듣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노래를 감상하고 있으니 우리가 시킨 칵테일 두 잔이 나왔다. 모히토는 모두가 아는 그 맛이었고, 소주 밤은 이름이 생소해서 우리끼리도 한창 그게 뭘까에 대한 토론을 하던 중이었는데 직원분이 모히토를 먼저 가져다주시고 뭔가 비장한 얼굴로 맥주가 따라진 컵에 소주잔 하나를 들고 오셔서는 맥주잔에 소주를 빠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셨다. 우리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떴지만 비장한 표정의 직원분을 위해 박수를 쳤고 직원분은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가셨다.
"아니 이거 그냥 소맥 아니야?"
"아 그러니까ㅋㅋㅋ설마 이게 소주밤인거가..?"
직원분이 돌아가신 뒤 우리는 다시 토론을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맥 그 가게의 칵테일들 중 꽤 비싼 편에 속했었단말이다! 소주밤은 우리가 생각했었던,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시는 그 맛 그대로였다.
친구와 나는 먼 곳에서 고국의 맛을 찾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며 다시 노랫소리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