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마주한 전범기.
마야몰은 치앙마이에 몇 개 없는 대형 쇼핑몰이다. 물론 방콕의 쇼핑몰들에 비하면 귀여운 사이즈지만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어서 한 바퀴 구경하기 좋다.
한 바퀴 쓱 돌며 구경하다가 우리는 귀여운 액세서리들을 파는 곳에서 멈춰 섰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 깜찍하고 저렴한 액세서리들이 많았지만 그중 우리가 고른 것은 이어 커프였다. 실버색상에 가끔 기분전환으로 끼고 다니기 좋을 것 같아서 구매했는데, 친구는 지금까지도 잘 끼고 다닌다.
시원한 마야몰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돌아다니다 숙소에 돌아가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는데 건너편에 아기자기한 가게가 보였다 그 가게는 일본과자들을 파는 과자가게였고 그 앞에는 한국인들한테도 익숙한 만화인 "마루코는 아홉 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마루코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벤치가 있다.
가게를 천천히 구경하고 나온 후에 수다를 떨며 신호등을 기다리던 중 우리는 가게 앞에 세워진 깃발을 하나 발견했다.
태국여행이 첫 해외여행이었던 나는 이 전범기문양을 보고 굉장한 충격에 빠졌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번화가에 전범기가 걸려있다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전범기를 보는 것이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차례 여행에서 전범기를 마주치고 나니 화가 나기보다는 속상한 마음이 커졌다. 아직까지도 일본의 전범기가 피해국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옷이나 간판 등의 디자인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며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들고,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커졌다. 나는 이런 전범기들을 마주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거리를 지나쳐 숙소에 돌아와서까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깃발에 적혀있는 주소로 연락해 무언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하거나 옷 가게 주인에게 이 문양이 어떤 의미인지 알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고작 내 이야기가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가 걱정되고 내가 혹시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을까 두려워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몇 차례 전범기를 마주한뒤 한국에 돌아와 전범기와 관련된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내 생각에 확신이 들었고 그제야 비로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젠가 또 전범기를 마주하게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한 번 부딪혀보기로.
뜨거운 태국의 날씨와 달리 마음이 쓸쓸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