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치앙마이에서

길거리에서 마주한 전범기.

by 메기

마야몰은 치앙마이에 몇 개 없는 대형 쇼핑몰이다. 물론 방콕의 쇼핑몰들에 비하면 귀여운 사이즈지만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어서 한 바퀴 구경하기 좋다.


한 바퀴 쓱 돌며 구경하다가 우리는 귀여운 액세서리들을 파는 곳에서 멈춰 섰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 깜찍하고 저렴한 액세서리들이 많았지만 그중 우리가 고른 것은 이어 커프였다. 실버색상에 가끔 기분전환으로 끼고 다니기 좋을 것 같아서 구매했는데, 친구는 지금까지도 잘 끼고 다닌다.

시원한 마야몰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돌아다니다 숙소에 돌아가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는데 건너편에 아기자기한 가게가 보였다 그 가게는 일본과자들을 파는 과자가게였고 그 앞에는 한국인들한테도 익숙한 만화인 "마루코는 아홉 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마루코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벤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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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천천히 구경하고 나온 후에 수다를 떨며 신호등을 기다리던 중 우리는 가게 앞에 세워진 깃발을 하나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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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여행이 첫 해외여행이었던 나는 이 전범기문양을 보고 굉장한 충격에 빠졌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번화가에 전범기가 걸려있다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전범기를 보는 것이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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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여행에서 전범기를 마주치고 나니 화가 나기보다는 속상한 마음이 커졌다. 아직까지도 일본의 전범기가 피해국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옷이나 간판 등의 디자인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며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들고,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커졌다. 나는 이런 전범기들을 마주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거리를 지나쳐 숙소에 돌아와서까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깃발에 적혀있는 주소로 연락해 무언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하거나 옷 가게 주인에게 이 문양이 어떤 의미인지 알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고작 내 이야기가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가 걱정되고 내가 혹시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을까 두려워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몇 차례 전범기를 마주한뒤 한국에 돌아와 전범기와 관련된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내 생각에 확신이 들었고 그제야 비로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젠가 또 전범기를 마주하게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한 번 부딪혀보기로.


뜨거운 태국의 날씨와 달리 마음이 쓸쓸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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