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을 수 없어요. 시간이라도 벌어야 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인류는 끝났습니다. 희망이 없어요.
기후위기는 이미 피부로 느끼게 된 지 오래이고
사람들은 전부터 질리도록 들어온 이 지루하고 진부한 이야기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분리수거를 잘하고, 전기를 아끼고,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줄이고...
이런 똑같은 이야기들에 우리는 지쳤습니다. 이미 깨달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지구를 살리고 이 행성의 많은 생명들을 구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요.
이제 작은 발자국들이 모여 큰 한걸음을 만든다는 것에 공감하기 어려워졌어요.
우리는 큰 발자국의 더 큰 걸음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조부모님 댁이 있는 욕지도라는 섬에서 유년시절의 많은 부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나름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이것저것 생겨났지만 제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그곳은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햇살이 반짝거리는 정오의 바다, 그림같이 노을 지는 저녁의 바다,
다 삼킬 듯 어두우면서도 왠지 모를 경이감을 주던 깜깜한 밤의 바다
바다를 구경하다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습니다.
햇살이 따뜻해지면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 입과 손이 보라색이 될 때까지 먹었고,
여름에는 산딸기를 한가득 따서 배를 채웠습니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에는 하늘 가득 별을 봤고
운이 좋은 날에는 마당까지 날아온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물질하시던 할머니와 엄마를 기다리다 파도에 휩쓸려 물을 먹고 조그만 몸에 따갑게 생채기가 나도
다음날이면 잊고 바닷물에 온몸을 적시던 아이, 그게 저였고 저는 바다의 모든 부분을 사랑했어요.
그리고 바다는 내일도 그 자리에, 어제와 같게 있어주는 것으로 어린 제 마음에 보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욕지도는 제 기억만큼 아름답지 않습니다.
방파제 사이에 끼어있는 쓰레기들과, 보이지 않는 지렁이와 풍뎅이들
밤에 불을 아무리 환하게 켜도 예전만큼 나방들이 날아오지 않아요.
반딧불이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미 눈에 띄게 자연이 사라지고 있고, 늦추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를 겁니다.
나 죽기 전엔 안와~
지인들과 기후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저런 안일하고 이기적인 생각들이 인류의 모래시계 속 모래알들을 앗아간 건 아닐까요?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나에게 기후변화가 다가오지 않을 거라는 건 다 옛말이에요.
2023년 3월 20일 UN 산하의 기후변화의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제6차 기후변화평가 종합보고서가 승인되었습니다.
IPCC는 앞으로 10년 안에 지구의 존폐가 달려있다고 봤습니다.
사실상 지금부터가 위기이며 즉각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필요하다고 분석했고,
2015년 맺은 파리기후협약에서 넘지 않기로 약속했던 지구상승온도 1.5도를
2040년 전에 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2040년. 이제 20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 IPCC에서 말한 대로 지구온도가 1.5도까지 상승한다면,
토양이 건조되어서 2019년 호주에서 9월 2일 시작되어 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34명의 사람과 약 12억 5000마리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산불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으며,
그와 반대로 나이지리아에서 600명의 목숨을 앗아간 홍수와 같은 폭우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요.
2018년 한국의 기록적인 폭염 같은 상황이 밥 먹듯이 일어날 거고, 폭염으로 인한 전자제품 사용 증가로
기후변화는 더욱 가속화되겠죠. 지구의 온도는 빠르게 오를 겁니다.
1.5도 상승은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20년도 남지 않았어요.
기억하세요,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인 반도입니다. 기후난민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 수 있어요.
어쩌면 인류가 끝났다는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표현이 불편하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시간은 흐르고 있고 우리는 당장 닥쳐오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미래세대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우리 지구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