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사람들에게
20살이 되자마자 태국으로 한 달 여행을 떠났던 것은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달라지게 했다.
노래를 10년 가까이했었고 중, 고등학교 때도 실용음악과 진학을 위해 학교-학원-집을 반복하며 열심히 노력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슬럼프가 왔었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복잡해졌었다. 음악을 여전히 사랑했지만 음악을 내 업으로 삼은 내 모습이 흐릿했고 모든 게 불투명해 보였다. 중고등학교 내내 생활기록부에 가득하게 채워진 음악 관련 내용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냥,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막연하게 미뤄왔던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진로를 잡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과의 마지막 입시상담에서 실용음악을 그만뒀다고 말씀드리자 당황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3년 내내 잘 쌓아가던 진로를 막바지에 바꾸는 일은 리스크가 아주 크다. 난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들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그 년도 수시, 정시원서를 하나도 넣지 않았다.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의 나에게는 긴 휴식이 필요했다. 다시 생각정리를 하고 다시 내 길을 잡아갈 수 있는.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서 학원비와 용돈 충당을 위해 하던 아르바이트도,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학원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학원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의 매니저 오빠께 여행날짜를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다. 흔쾌히 허락해 준 오빠한테는 아직까지도 많이 고맙다. 한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쉬는 걸 허락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마음만 먹으면 나를 자르고 새로운 사람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아 주셨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덕에 나는 여행을 다녀오고도 1년을 그 가게에서 더 일할 수 있었다.
다음 관문은 부모님이었다. 나와 친구 둘이서 가는 한 달짜리 태국여행은 집안 어른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다. 끈질기게 설득한 덕에 허락을 받을 수 있었고 우리는 무사히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우리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나와 내 친구의 태국여행을 지인분들께 말씀하시곤 한다. 말은 안 하셨어도 대견하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다.)
이렇게 쓰면서 돌아보니 여기까지 오는 것도 주변사람의 도움이 컸다. 음악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별말 없이 나를 지지해 준 부모님과 여행을 같이 가 준 친구 등 여러 사람의 도움이 없었으면 난 아직도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헤매고 있었을 거다.
친구와 갔던 태국여행은 나에게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닌 휴식이자 생각전환의 기회,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첫걸음이었다.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에 정해진 삶의 방식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자주 웃고 가끔은 울며 내 친구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며 가족에 대한 내 사랑도 처음으로 선명하게 확인했다.
물론 무서웠다. 이때까지 쌓아온 것들을 한 순간에 포기하고 1년 동안 여행을 다녔던 것이 어쩔 때는 내가 도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어쩌면 도피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밟아본 낯선 땅에서 낯선 일들을 마주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내 생각보다 내가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도피성이었음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적어도 나는 1년간의 휴식으로 얻은 게 많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게 눈에 보이는 것이든 아니든. 그리고 그 경험 덕분에 이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 여행이야기를 쓰고 있지 않은가.
나도 아직 어리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하지만 계속 알아내가는 중이고 미세하지만 내 길을 천천히 그려나가는 중이다. 혹시나 저 때의 나 같이 보이는 것이 없어 헤매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이 조금의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