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자다. 방송국에서 기사나 써가며 벌어먹고 산지 어연 5년이 넘어간다. 지금까지 사회와 가장 가깝게 지내며 알게 된 건 생각보다 별로 없지만 이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사람들은 미담에 관심 없다. 미담보다는 마약, 범죄 등 다른 사람이 추락하는 것을 보며 자신들의 자존감을 채운다. 이런 기사나 쓰려고 기자가 된 게 아닌데. 입사 당시 재미있진 않지만 담백한 기사만을 쓰던 나의 통장엔 늘 적자가 났다. 하지만 당시 나보다 먼저 입사한 선배가 이런 기사만 쓰고선 아르바이트하는 수준밖에 더 되냐며 언뜻 봐도 물타기로 여론 몰이가 될 만한, 그럴 의도가 다분한 기사를 던져주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선배가 던져준 기사를 게시함으로써 월급에 두 배가 넘어가는 돈을 성과급으로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사가 팩트가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쓴 기사로 인해 피해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는 그 돈을 5년이 지난 지금도 쓰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 적당히 흥미를 끌 만한 기사를 쓰고 있지만 이런 기사를 쓰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던 예전과 달리 요즘 들어 점점 감정이 무뎌지는 것 같아 나 자신이 조금씩 무서워져 간다. 나도 저것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나의 일상을 통째로 바꿔버릴 아이를 곧 마주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아이가 들어온 나의 일상은 더 이상 안온한 일상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처음 마주친 건 회사 로비였다. 얼굴과 몸 곳곳에 멍자국이 선명하길래 그냥 쌈박질하다 온 비행청소년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아이를 좁고 외진 골목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학교폭력,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어나서 반격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그저 덜 맞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고 발길질에 뒹구는 아이가, 너무나 작았다. 너무나 작은 몸으로 열댓 명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잔인하게 타인을 짓밟던 그들이 제 풀에 지쳐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들의 얼굴을 본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은 가해자들은 너무도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즐겁다고 웃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학생들 말이다. 그 상태로 얼어붙은 내 뒤로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 작은 아이가 던진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쟤네 모범생이에요. 그것도 전교권 안에 드는."
이 말을 들은 나는 영문도 모르게 화가 끓어 그 작은 아이에게 따지듯 질문을 쏟아냈다. 억울하지도 않냐고, 왜 맞고만 있냐고, 네 몸에 남은 것들이 다 증거인데 신고는 왜 안 하느냐고, 부모님은 아시냐고. 나의 분노가 이 아이에게 향하면 안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무엇에 그리 화가 난 것인지, 나의 입은 멈출 줄 모르고 가시를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학교에 밥먹듯이 안 나오는 보육원 출신 비행청소년, 번듯한 가정에서 전교권 안에 들 정도로 공부 잘하는 모범생. 언니라면 어느 쪽 말이 더 그럴듯해 보여요? 난 뭐 다들 흔히 말하는 날라리, 비행청소년, 뭐 그런 거라 이만큼 상처 나서 집에 가도 패싸움 붙었냐며 혀를 차시는 분들밖에 없는데. 그런 나를 누가 믿어 주겠어요. 그냥 애들이 때릴 때 잘 웅크려서 평소보다 덜 맞는 게 행운이고 나한텐 그게 더 편해요."
한치의 감정 변화도 없이 아픈 말들을 하는 아이였다.
아니다. 그럴 리가. 내 눈에는 그저, 하루하루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작은 소녀에 불과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절실히, 정말 절실하게 도와주고 싶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너에게 등을 돌린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가, 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아프지 않은 내일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가 내 물음에 답을 끝내고 돌아서려는 순간, 내가 그 아이를 붙잡은 말은 어이없게도 배고프지 않냐는 말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