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향한 곳은 고작 패스트푸드 가게였다. 나는 그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음식을 씹는 소리 외에는 적막한 공기만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이가 밥을 다 먹자마자 던진 물음은 나의 직업이었다. 내가 기자라고 말하니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의 눈을 길게 응시했다. 얼마나 길고 자세히 응시했는지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게 되었다. 내가 눈을 피하자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아차, 싶었다. 아이를 붙잡고 싶어 여기까지 온 건데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는 나에게 다시 한번 만날 것을 제안했다. 내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며 여기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다음 주 수요일 이 시간에 만나자는 말을 남긴 뒤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아이의 당돌함에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질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그렇게 가 버린 후, 아이와 연락할 방도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고, 나는 아이와 말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때인 수요일만을 눈이 빠질 정도로 기다리게 되었다.
수요일 저녁 8시 즈음, 나는 지난주에 아이와 갔던 패스트푸드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앞에선 이미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에게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던 나는 아이를 데리고 패스트푸드 가게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아무 메뉴를 고르고 자리에 앉자 또다시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아이가 입을 열었다.
"언니, 근데 전에 저 본 적 없어요? 저번 주 말고요. 한... 5년 전쯤?"
아이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긴 했지만 5년 전이면 막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외근을 나갈 일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내 인간관계는 상당히 좁았기에 내 주변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본 적 없다고 답하자 내 대답을 들은 아이의 얼굴엔 잠깐이지만 실망의 기색이 비쳤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하고 멀뚱히 앉아있는 나를 본 아이는 짧게 한숨을 내뱉더니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 말해주기 시작했다.
폭력 속에 웅크려 살아간 아이가 마음조차 작아져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구할 방법을 고민 중이었다. 자신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근사한 지옥을 선물할 것이라고 아이는 말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로 굳이 정의하자면 복수, 정도가 되겠지만 아이가 바라는 건 단순히 복수라는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자신의 계획을 말하는 아이의 눈빛은 누구보다 굳세고 반짝거렸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계획에 내가 협조해 주길 바랐다. 공권력으로 그들을 추락시키기보다 언론, 그리고 선동과 날조로 인한 그들의 사회적 죽음을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선 어떠한 증거가 필요했다. 작더라도 그들의 만행을 알 수 있는 증거와 그런 일을 본인이 당했다는 증거. 조금 조잡하고 과장된 것이라도 증거가 있다면 더 확실히 대중들을 아이의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증거를 확보할 이런저런 방법을 떠올리던 그때, 아이가 조용히 무엇인가를 내게 건넸다. 이리저리 구른 듯 여기저기 닳고 해진, 낡아 보이는 공책 한 권. 아무 말 없이 내게 공책을 건넨 아이는 읽어보라는 듯 공책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의문스러운 표정을 한 채 공책을 한 페이지, 넘겨본 나는 공책의 첫 문단에 적힌 글자를 보고는 황급히 공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공책은 일반적인 내용이 담긴 공책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낱낱이 적힌 날 것 그대로의 일기장이었다. 놀랄 새도 없이 아이가 입을 열었다.
"폭력이 시작된 날부터 지금까지의 일기예요."
이 일기장이라면 충분할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 법적 효력이 생기기엔 애매하지만 먹이에 굶주린 사람들이 물고 뜯기엔 충분한 증거.
그러나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아이는 대체 언제부터 일을 꾸민 걸까. 괴롭힘이 심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웅크려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일기를 썼다. 설마, 폭력에 노출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 이미 아이는 수백, 수천 번 도움을 향해 간절히 손을 뻗었던 것이라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답이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중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이 작은 소녀가 오랜 기간 폭력에 노출되었다는 가설은 너무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에게 일기장을 넘겨준 뒤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사이 조리를 마친 햄버거를 우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집으로 향하는 어둠에 몸을 감췄고, 나는 그 아이가 떠나간 길을 홀린 듯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아이가 귀가하는 뒷모습을 보는 게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더 근사한 저녁을 선물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