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은 항상 내게 말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살라고, 그렇게 살면 꼭 베푼 만큼 돌아온다고.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주는 만큼 돌려받는다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서 난 그때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며 돈을 착실히 모았다. 그리고 내가 마흔이 될 무렵, 나는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 퇴사를 했다. 물론 적지 않은 퇴직금과 함께.
그리고 난 나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모아뒀던 돈으로 보육원을 세웠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인 아이들, 그중에서도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내가 나아갈 길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 생긴 보육원에 아이들이 몰리는 일은 없었다. 나의 보육원엔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난 직접 내가 돌볼 아이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거리를 잠시 거닐었을 뿐이었는데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길을 잃고 우는 아이부터 홀로 멀뚱히 서 있는 아이까지, 모두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나의 보육원에 데려왔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모두 잘 자라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흠이 하나 있었다. 도통 어른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툭하면 징징대고 자신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은 안 먹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아이들이 바르고 올바르게 크기 위해선 훈육을 해서라도 아이들이 말을 잘 듣게 해야 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었고, 곧 아이들은 내가 매를 집어 들기만 해도 조용해졌다. 징징대지도, 고집부리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있음이 매우 뿌듯했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베푸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다시 충족감을 가져다주니, 이 얼마나 완벽한 그림인가! 누가 봐도 완벽한 삶이었다. 그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들어오니 신뢰감이 쌓이기 시작한 나의 보육원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더 늘어갔다. 하지만 보육원 규모에 비하면 아직 턱없이 적은 아이들에 나는 아이들을 계속 데려오곤 했다. 그때 한 아이를 발견했다. 고작 7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여자 아이였다. 심지어 버려진 지 꽤 오래된 듯해 보였다. 공원 벤치에서 잠을 자다니, 돌아갈 곳이 없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 아이를 조심히 안아 보육원으로 데려왔다. 직원들에게 아이를 씻기게 하고 아이가 입을 만한 옷을 찾아보았다. 여느 아이들이 입었던 것처럼 편안한 옷을 준비해 아이에게 향했지만 씻고 용모를 단정히 한 아이는 정말 예뻤다. 여태까지 본 아이들 중 제일 아름다웠다. 나는 이 아름다운 존재가 나의 보육원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흥분되었다. 이런 미의 존재가 나에게 속한다는 것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이런 편안한 옷은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옷장 가장 안쪽에 걸려 있던 원피스를 아이에게 선물했다. 원래는 가장 처음 입양 갈 아이가 입양 가는 날 그 아이에게 선물하려고 사둔 옷이었지만 이 옷을 입은 아이가 기뻐할 것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는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부모를 찾았다. 하루 종일 앵앵거리며 울었다. 나는 아이가 자신을 버린 부모를 왜 저렇게 애타게 찾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부모님이 너를 버렸다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말을 믿지 않았고, 밤낮으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모두가 존경해 마땅한 사람인데. 어쩔 수 없이 그 아이에게도 매를 들게 되었다. 이틀 동안 울던 아이는 내가 매를 든 지 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이제야 아이를 봐줄 만했다. 울음을 그친 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은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내가 생각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