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해 한빈아

나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by Biiinterest

24.05.30(목)

"생일 파티 2일 차, 나도 나의 생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EP.1

오늘은 나형이와의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약속 장소와 메뉴의 선택권을 나에게 넘겨줬다. 그래, 나보고 찾으라는 말이겠지. 오늘은 딱히 부지런히 뭔가 하고 싶진 않아 침대와 한 몸을 이루며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기에 카페에 가서 어딜 갈지 찾아볼까 생각을 하자마자 침대가 날 붙잡았다. 어딜가냐며 얌전히 집에 있으란다. 그렇다. 정말 너무 귀찮다. 귀찮으면 먹는 것조차 귀찮은 나에게 무엇도 이길 수 없는 존재는 바로 귀찮음. 그렇게 귀찮음이 지배하는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메뉴는 정해겠지. 뒹굴면서 인스타를 활용해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 멀지 않은 곳... 집에서 멀지 않은 상동에서 좀 더 가까운 부천시청으로 장소를 픽스! 메뉴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나형이니까 그런데 이자카야는 가고 싶은데 그렇다면 이자카야와 파스타, 여기까지만 정해 놓자.


너무 누워있었는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준비해서 걸어가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번째 생일 파티에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신경을 쓴 듯 신경을 쓰지 않은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 재밌을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


생각보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멍하니 지하철 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한눈 판 사이 발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나형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손에 케이크를 들고 반가운 모습으로 인사하는 나형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설레진 않지만 꽤 괜찮은 그런 감정이었을까. 메뉴를 설명하면서 장소를 옮겼다. 이자카야라는 말에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이자카야?"라고 되묻는 모습에 놀랐다. 다이어트 중이라 술을 마시지 않는 나형이. 오늘은 술이 당긴다고 하는 나형이. 그렇다면 오늘은 술을 마시는 건가? 나형이와의 첫 술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술"에 설레며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다른 이유는 없는 술이 가져다주는 설렘이 우리를 설레게 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에 더욱 설레는 나형이와 이자카야를 좋아하는 생일자인 나, 그렇게 우리의 오늘은 설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돌이켜보면 기억에 막 남는 대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술에 대한 이야기, 안주가 맛있다는 이야기,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아서 한 병 더를 외치는 나형이. 즐거웠다는 단어 하나면 오늘의 하루가 설명이 되는 그런 술자리였다. 술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 시간이 조금 애매한 시간이었다. 기분은 차오르고 노래를 듣는 것만 좋아한다는 나형이를 꼬셔 코인 노래방을 향했다. 무슨 노래를 불렀지. 취한 걸까. 기억이 잠시 사라진 순간이었다. 분명 그렇게 취하지 않았는데 왜 기억이 편집됐을까. 민망스럽게 못 불렀다. 허허. 사진첩에 남아있는 사진이 아니었다면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만 같다. 잘했다 한빈아. 역시 몰카쟁이.


진짜 생일을 30분 정도 남겨두고 기다려주겠다는 나형이. "난 내일 쉬지만 나형인 출근인데 괜찮아?" 너도 술기운에 기분이 좋은지 생일을 함께 맞이해 주겠다네. 고마운 마음에 맥주 두 캔을 들고 중앙공원을 향했다. 밴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일어나 걷고 그렇게 시간은 금방 지나고 진짜 내 생일이 도착했다.

"생일 축하해 한빈아."


"고마워, 나형아."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생일을 나형이와 함께 맞이할 수 있었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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