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삶
'찬란하다' 어쩌면 이 단어를 만났기에 나의 삶도 찬란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끝없는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었다. 하루하루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시간에 대한 개념도 사라지는 순간 며칠이 지났는지, 몇 달이 지났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시간들. 집은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있었고 쓰레기 더미 안에서는 뭔지 모를 생명차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삶의 끝자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세요~ 가스 검침 나왔습니다."
무시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기에 대꾸할 수 없었다. 몇 번을 두드리던 소리는 차츰 사라지고 인기척 또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조금 더 먼 곳에서 들렸다.
"계세요~ 가스 검침 나왔습니다."
저 사람은 내가 궁금한 게 아니었구나. 그냥 여기저기 본인의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일 뿐이구나. 이제는 누구도 날 찾지 않는 이 상황이 삶의 끝을 바라고 있음을 더욱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잊혔다.
암막 커튼 사이로 빛이 세어 들어오고 있었다. 저 빛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다가 다시 저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틈새를 통해 들어온 한 줄기의 빛은 나에게 하루가 지났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오늘도 하루가 지났구나. 오늘도 나에게 저 빛은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서서히 죽어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서서히 말고 빨리 죽음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죽음으로 향하고 싶은 이 감정을 초조하다고 표현해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나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넘어졌다. 그동안 제대로 먹고 마신 게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땅을 짚어 다시 일어서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땅을 짚은 손에 힘이 풀려 다시 처참하게 쓰러졌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혔고 혼미했던 정신이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맑아진 정신은 내게 말했다.
'죽을힘도 없는 녀석'
오기였을까. 승부욕이었을까. 속에서 무언가가 끓기 시작했다. 얼얼해진 이마를 만지며 주먹을 쥐고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연속된 충격이 좀 더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땅을 짚고 일어났다. 정말 어이없지만 이게 뭐라고 성공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보잘것없는 이 작은 일어섬이 성공이라는 단어와 어울리기는 할까. 잠깐 스쳐간 감정은 뒤로한 채 틈새로 들어오는 작은 빛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저 커튼을 치고 문을 열고 난간만 넘으면 원하는 죽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한결 가벼워진 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튼을 활착 열었다.
어두운 방 속 작고 보잘것없던 그 빛이 거대한 빛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눈부심을 거부하기 위해 손으로 빛을 가려보지만 빛을 가리기에는 나의 손은 초라할 만큼 작았다. 손을 치우고 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머릿속에 어디서 본 적은 있지만 어디서 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단어가 떠올랐다.
'찬란하다'
찬란하다는 말의 뜻조차 모르는 내게 이 단어가 왜 떠올랐을까. 아마 이런 순간을 찬란하다고 표현하는 걸까. 뭔지 모를 감정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오기, 승부욕, 충격, 호흡, 성공, 죽음, 빛 조금 전 생각했던 보잘것없던 단어들이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 밖을 바라봤다. 엉성한 나뭇가지에 작은 꽃봉오리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방을 좀 치워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