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만년필 가게는 큰길에서 두어 골목 안으로 들어간, 허름한 상점가의 한가운데쯤 있었다. 출입구에는 유리문 두 짝만 한 간판이 나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문패 옆에 '만년필 맞춤'이라고 조그만 글씨로 씌어 있을 뿐이다. 유리문은 끔찍하게도 아귀가 뒤틀려 있어 열었다가 반 듯하게 닫기까지 일주일은 걸릴 상 싶은 낡은 것이었다. 물론 소개장이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도 걸리고, 돈도 든다.
'하지만 말이야, 꿈처럼 제 맘에 쏙 드는 만년필을 만들어 준다고'하고 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온 것이다.
주인은 예순 살 정도, 숲 속 깊은 곳에 사는 거대한 새 같은 풍채이다.
"손을 내놔봐요."하고 그 새는 말했다.
그는 내 손가락 하나하나 그 길이와 굵기를 재고, 피부에 껴있는 기름기를 확인하고, 바늘 끝으로 손톱이 얼마나 딱딱한지도 살폈다. 그러고는 내 손에 남아 있는 갖가지 상처 자국을 공책에 메모한다. 그러고 보니 내 손에는 알지 못할 여러 가지 상처 자국이 얽혀 있었다.
"옷을 벗으시죠."하고 그는 짤막하게 말한다.
나는 뭐가 뭔지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셔츠를 벗는다.
바지를 벗으려고 하는 찰나에, 주인은 당황하여 만류한다.
"아니, 윗도리만 벗으면 돼요."
그는 내 등 뒤로 돌아, 척추뼈를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손가락으로 더듬어 간다.
"인간이란 말씀이에요, 척추뼈 하나하나로 사물을 생각하고, 글자를 쓰는 법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척추에 딱 맞는 만년필 밖에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 나이를 묻고, 고향을 묻고, 월급이 얼마인지를 묻는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이 만년필로 대체 무얼 쓸 작정이죠, 하고 묻는다.
석 달 후, 만년필은 완성되어 내게로 왔다.
꿈처럼 몸으로 쏙 스며드는 만년필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 만년필로 꿈같은 문장을 술술 쓸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꿈처럼 몸에 배어드는 문장을 파는 가게에서라면, 나는 바지를 벗으라 한들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만년필 / 무라카미 하루키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열망은 사람을 날아오르게 만든다. 나 또한 그러하다. 열정 속에서 살며, 배우고 노력한다. 이 열정은 곧 사랑으로 변모한다. 내게도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만년필이 있다. 이것은 소소한 나 자신의 표현이요, 의지다. 순수한 그 순간의 느낌을 글로 적어 내려간다. 물론 워딩으로 이렇게 남길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펜이 주는 짧지만 긴 사각거림의 순간이 좋다.
F 촉 가늘고 긴 잉크의 선과 번짐에서 오는 미학을 나는 사랑한다. 잉크의 냄새가 코 끝을 맴돈다. 글을 쓸 때의 마음은 사손 하다. 잔잔하게 표현하는 단어들 문장들 속에서 공유와 공감을 기대해 본다.
물론 가장 수다스러운 표현은 사랑에 대한 표현 이다.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고, 표현되는 단어가 사랑 애 愛 다. 이 사랑애의 한자는 우리가 사랑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의 기준과 의미를 담교 있는데 이는 곧 중심이다. 마음이 중심이 되는 것 이것이 곧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펜으로 이를 표현할 때, 그 중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여 쓴다. 서신이 주는 감동은 이 서신의 진정성이다. 내가 쓰는 펜은 이 진정성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한다. 치우치지 않고 그 의미와 뜻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부수적 역할이 내 펜의 존재이며, 이유다.
오늘도 그대를 위한 한잔 그리고 마음의 사각거림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