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지식에 대한 욕구며, 생각에 대한 확장이다. 생각을 확장한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순전히 자신의 영역 안으로 영입했다는 것으로 의미할 수 있다.
자신의 영역은 그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한다. 환경은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으며, 가치관은 곧 자신의 예기로 변모한다. 보통의 언어적 표현에서는 예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예의의 사전적 의미는 예의 (禮儀)[예이/예의] (명사)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이 예의의 전에는 예기가 있다. 예기는 예의로 변모하는 바로 전의 단계이다.
예기가 예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예기 銳氣 명사 날카롭고 굳세며 적극적인 기세. 이 예기는 인간관계에서 초기에 기본적으로 인지되고, 장착이 된다. 이 예기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주변의 환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환경을 조금 더 평안하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기세의 편안함이 예의로 이 예의가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우리의 백자 전 즉, 조선의 백자 전시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연령대에 안 맞는 웬 도자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도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내 생각에 무한한 상상과 영감을 주는 장르들 중 하나다. 국내외 최고의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 백자기는 약 59 점이 있는데, 이들 중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것이 31 점이니, 반수가 넘는 작품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작품들 중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작품이 있다.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 청화 백자 중 가장 난해한 기법으로 제조된 국보다. 간송 미술관의 소장 작품인데, 일반에 공개가 잘 되지 않는 작품 중 하나다. 작년 간송 수장고에서 보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조선 초기부터 중국의 화려한 청화백자나 알록달록한 오채 그릇이 유입되어 중외에 파다하게 퍼졌지만, 절검(節儉)을 중시했던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들은 약간의 장식이 있는 소박한 느낌의 백자 사용의 전통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경시대(숙종-정조) 들어 수요층의 기호가 변화하면서 조선백자에도 절제된 화려함이 시도되었다. 백자에 두 가지 이상의 안료를 사용하여 장식한다든가 문양을 양각이나 투각으로 조각하고 그 위에 채색을 가하여 한껏 멋을 낸 것들이었다.
청화백자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하는 수작이다. 목이 길고 몸체가 달항아리처럼 둥그런 유백색의 병으로 산화코발트, 산화철, 산화동 등을 모두 안료로 사용하여 청색, 갈색, 홍색으로 장식하였다. 먼저 푸른색을 내는 청화는 산화코발트가 주원료로 중국에서 수입하여야만 사용이 가능했다. 청화의 색상은 온도에 민감해서 밝은 청색에서 검은색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적당한 발색 온도를 찾기 위해서는 오랜 연구와 실험이 절대적이다. 국내산인 철화백자에 사용되는 산화철 역시 번조온도 및 번조시간, 번조 분위기에 의해 그 색상이 크게 달라진다. 17세기 이후 등장한 붉은 색조의 동화는 산화동이나 탄산동이 주원료로 실제 사용할 때는 보조제와의 혼합과 유약의 두께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처럼 이 세 가지의 안료는 모두 성질이 달라 소성 온도와 가마 분위기에 따라 발색이 좌우되어 제작에 있어 상당한 기술이 요구된다. 이런 복잡하고 고난도의 소성 과정 때문에 이 작품처럼 제대로 구현된 작품은 극히 일부로 명품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볼 수 있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그마만큼 의 환경적인 안정을 기본으로 한다. 평안한 상태에서의 연구와 공부 그리고 여유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치열하고 치열한 현재 지금의 환경에서 미술이 주는 즐거움은 이러한 평안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이른 퇴근길의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