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화려한 장식성(飾り), 이에 대비되는 절제된 미(「反」 飾り), 자연의 변화에 대한 애잔한 정서(あはれ), 유쾌 하고 재치 있는 자유분방한 표현(遊び)이라는 네 가지 시선을 통해 일본미술을 조명한다. 이 요소들 은 서로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며 일본인의 삶과 세계 관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일본미술은 화려하다. 형과 색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미술의 특징보다 우선시 하는 것은 바로 차를 위한 문화인 다도(茶道)이다.
16세기 무렵 일본에서는 공간과 도구를 갖추고 차를 대접하는'차노유(茶の湯)가 성행했다. 이 시기에는 조선이나 일본 각지에서 만든 꾸밈없는 도기가 다도 도구로 새롭게 조명받았다. 완벽한 형태를
고수하지 않고, 굽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흠이 생기더라도 애써 고치지 않고 개성으로 받아들였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표면과 찌그러지고 금이 간 모양을 마치 '차갑고 마른 [冷え枯れる] 겨울처럼 담담하면서 깊은 멋을 풍기는 것으로 여겼다.
전시에 선보이는 다도 도구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사용감까지 고려해 만든 것으로 여기에는 도구 하나하나를 아끼고 사랑한 다도인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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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12세기 말 송나라에서 차가 처음 전래 되었을 당시에는 중국혹은 고려에서 수입한 고급 자기그릇 등을 카라모노(唐物)라 부르며 다완과 찻그릇으로 사용하였고 이러한 문화는 점차 사치스러워졌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사치에 대한 반발로 소박한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와비 정신에 입각한 다도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뒤 조선에서 만든 이도다완을 찾아 들여왔다.
이 이도(井戸)다완을 포함해 다기 하나 하나가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도 다완 하나가 성 하나랑 같은 값어치일 정도.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의 그 유명한 조나라의 화씨의 벽(구슬)은 진나라에서 성 15개와 교환하자고 했다. 정확하게는 고가에 팔린 다완들의 값이 성 하나를 만들 수 있는 비용인 경우가 있었다.
무로마치시대 까지는 중국의 텐모쿠다완이 최고였으나 전국시대와 모모야마시대까지는 이도다완이 다도를 지배했다. 대표적 다완으로 사발형태로 되어 있으며 삼각형 모양 덕분에 손에 착 잡히며 그리고 다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 밑부분은 유약들이 뭉쳐 오돌토톨하게 되어 있는데 이 부분 때문에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일본도의 손잡이와 비슷한 감촉이라 매우 선호했다고 한다. 물을 담가두면 옹달샘에 담가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국보로 선정된 것도 있고 다완의 왕으로 칭송되면서 가장 귀하게 치는 그릇이다. 그래서 가짜도 많고 가장 많이 시도되는 경우이다.
현재는 한국 경남 동남해안의 흙을 사용해서 구우며 이도(井戸)의 약속이라는 부르는 비파색 표면, 죽절굽, 매화피(카이라기), 반시계방향 물레방향을 지키는 것만 이도다완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이도(井戸)를 재현하는 사람들도 흙이 다르면 이도형, 이도 모사다완이라고 분명히 부른다. 물론 가짜는 그런 것이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이도(井戸)는 주로 대정호(오이도大井戸)이며 보다 작은 소정호[고이도(古井戸 혹은 小井戸)]와 함께 유약이 다소 푸르고 크기도 작은 청정호(아오이도青井戸), 그리고 엄격히 따지면 이도는 아니지만 이도와 비슷한 정호협(이도와키井戸脇)로 나눈다. 특히 소정호(小井戸)는 단순히 크기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문품이 아닌 본래 실 사용의 원 정호(井戸)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분류된다.
메이지시대부터 쇼와에 걸쳐 일본의 전력과 보급 및 진흥에 힘쓴 마쓰나가 야스자에몬. 그는 ‘일본의 전기왕’, ‘전력의 귀신’ 이라고 불리운다.그가 수집한 일본의 구로라쿠 다완이다.
일본 특히 센노리큐는 다완이 조선이나 중국에서만 생산되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일본만의 다완을 만들려고 했는데 라쿠다완은 그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라쿠다완은 일본에서 조지로(長次郞)라고 불린 한 외래인이 만든 것이다. 한국에는 조선 출신 기와공이라는 말이 많지만 일본에서는 명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더 많다. 하여튼 수수께끼의 인물로 라쿠 가문에서도 전승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으며 갑자기 획기적인 자료가 튀어나오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중국인이라는 설이 더 우세하다.
조지로는 원래 기와를 만드는 장인이었는데 센 리큐는 그의 기술을 다완만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여겨 여러번의 실험 끝에 마치 유약이 타서 나온 것 같은 무광의 차분한 지금의 검은 라쿠다완(쿠로라쿠다완)인 것이다. 이 검은 라쿠다완은 리큐가 추구하던 와비차에 가장 적합한 다완으로 여겨져서 이후로도 다도에 제1은 라쿠 제2는 하기 제3은 카라츠라는 말이 나왔다.
교토의 도예공인 쵸지로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의 대표 다완으로 독특한 맛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일본 정신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말차 격불 시 다완벽에 찻물이 부딪혀 파도처럼 부서지는 감각이 일품이다. 센 리큐가 선호했던 검은 쿠로라쿠(黒楽)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호했으나 저평가되다가 혼아미 고에츠와 3대 도뉴에 의해 향상된 붉은 아카라쿠(赤楽)가 대표적이다. 만드는법이 매우 특이한데, 도자기처럼 물레를 차서 빚는게 아니라 흙덩어리를 직접 쌓고 손으로 주물러서 만들며 구울때도 한번에 딱 한개만 구울 수 있다. 소성이 완료된 라쿠다완을 꺼낼 때에는 집개로 집어서 꺼내기 때문에 모든 라쿠다완에는 집개자국이 남게 되어있는데, 이 또한 중요한 감상포인트로 여긴다. 요약하자면 대충 막 만든것 같지만 의외로 치밀하게 의도한 대로 엉성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다완으로는 유이하게 단 2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라쿠다완이다.
차를 마시는 삶은 정중동 그리고 고요속에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고요속의 재미와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다. 에도 시대 후기에서 말기에 교토에서 활약한 도공 닌나미 도하치가 제작한 구로라쿠 찻잔이다.
몸체에 검은 유약을 두껍게 바른 뒤 유약 일부를 벗겨내고 흰 점토를 채워 찻잔 바깥에는 하얀 학을, 안쪽에는 거북을 표현했다. 처음에는 겉면의 학을 감상한 다음 차를 마시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거북을 발견하게 된다는 유쾌한 발상이 돋보이는 찻잔이다.
일본의 다도 예법에 의하면 다회에서 쓰이는 다완은 정해진 격식에 따라 분류되며 또한 사계절, 다회의 목적에 걸맞은 다완을 준비하는 것이 예의이다. 그래서 다도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다섯개의 다완을 보유한다. 특히 고이차(농차)를 쓰는 다회의 경우 격식에 따라 라쿠, 하기, 카라츠 순서로 높은 격으로 친다. 또한 다회에서 한국산 다완을 쓸 경우에는 이도다완을 높은 격으로 여긴다.
유명한 다완의 경우 이름을 붙일 수 있는데 이 또한 엄격한 격식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글자가 정해져있고, 다완의 분위기, 색감이 연상되는 계절에 걸맞은 이름을 쓴다. 이렇게 이름이 붙은 다완은 해당 계절에만 나오는 것이 상례이다.
차를 통한 미의식의 추구와 마음. 그것의 연장인 와카.
와카(和歌)는 일본의 전통적인 정형시다. 5음과 7음의 일본어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노래'라는 의미인 와카라는 명칭은 헤이안 시대에 한시와 구분하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야마토우타(やまとうた) 또는 단순히 '노래(うた)'라고 부르거나, 와시(일본어: 倭詩) 또는 와교(일본어: 倭語)로도 불렸다. 하이쿠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시가 문학 장르다.
고대 일본에서 와카는 귀족을 비롯한 인텔리층에 있어 필수적인 소양의 하나였으며 남녀가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한 방편으로 쓰였을 뿐 아니라, 와카의 우열을 짓는 시합이 자주 열려 이를 위한 와카가 많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읊어진 와카는 개인의 가집(개인 시가집)과 헤이안 시대 이래의 칙명에 의한 칙찬(勅撰) 와카집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그밖에 개인이 편찬한 사찬(私撰) 와카집이 있었는데, 《만요슈》도 사찬 와카집에 속한다. 사찬 와카집 중에서도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뽑은 오쿠라 백인일수(小倉百人一首)는 후세에 카드로도 제작되는 등 일본인들에게 잘 알려져 일본인의 '와카'에 대한 시각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와카에는 '문학'으로서의 해석과 '음악'으로서의 해석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문학의 범주에서 해석되기 때문에 학교 교육에서 '노래'로서의 와카의 요소는 배제되고 있다.
다회의 기록
무장이자 다도 명인으로 활약한 호소카와 산사이가 차 모임을 연 다음 그 공간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넓은 방을 장식한 족자와 향로, 향대와 같은 물품을 간단히 나열했다. 이방에는 바닥을 한 단 높여 격식을 갖춘 공간인 조단노, 창문턱 형태로 만든 선반인 쓰케쇼인, 조단노마의 옆방인 쓰기노마, 장식용 선반인 지가이다나가 있어 물품을 위치별로 기록한 것을 알 수 있다. 센노 리큐의 다도를 계승하여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았던 호소카와 산사이의 취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源氏物語 겐지모노가타리는 무라시키 시키부의 소설이다. 일본 헤이안 시대 중기에 성립한 일본의 모노가타리계 장편이야기이자 소설이다. 문헌으로 처음 나온 게 1008년 (간코 5년)이다. 작가는 무라사키 시키부이며, 그녀 생애 유일한 모노가타리 작품이다.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를 통해 연애, 영광과 몰락, 정치적 욕망, 권력투쟁 등 헤이안 시대 귀족사회를 그렸다.
하급 귀족 출신인 무라사키 시키부는 20대 후반에 후지와라노 노부타카와 결혼해 1녀를 두었으나, 결혼 후 3년만에 남편과 사별하면서 현실을 잊기 위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겐지모노가타리》 시작이다. 당시에는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종이 제공자가 있으면 그때마다 쓰고, 동료끼리 서로 비평하는 등 즐거워했다. 그 이야기 평판에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딸인 중궁 후지와라노 쇼시(아키코)의 가정교사로 무라사키 시키부를 불렀다. 이를 계기로 궁중에 들어간 무라사키 시키부는 궁에서 근무하며 후지와라노 미치나가 지원 아래 이야기를 계속 썼고, 54첩 《겐지모노가타리》를 완성했다.
겐지모노가타리 중 제39첩 유기리
호분을 바른 흰색과 옅은 남색 종이에 사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들판과 산골 마을의 풍경을 금은 가루로 그렸다. 글씨와 종이 장식이 어우러져 산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유기리(夕舞, 저녁 안개)」의 정경이 한층 돋보이며, 『겐지모노가타리』의 바탕이 되는 궁정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11세기 일본 궁정을 위한 오락거리로 쓰였기 때문에, 이 작품은 현대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준다. 가장 중요한 점은 무라사키가 사용한 언어인 헤이안 시대 궁정 일본어가 매우 복잡한 활용과 문법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작품 내에서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화자는 남성들을 주로 그들의 관직이나 사회적 지위로 지칭하고, 여성들은 주로 그들이 입은 옷의 색깔이나, 만남에서 사용된 말, 혹은 유력한 남성 친척의 지위로 지칭한다. 이로 인해 같은 인물이라도 장에 따라 다른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언어의 또 다른 특징은 대화에서 시가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헤이안 궁정 생활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고전 시가를 변형하거나 바꾸어 말하는 것이 예상된 행동이었으며, 이는 종종 얕은 암시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었다. 겐지모노가타리의 시들은 주로 고전 일본의 단가 형식을 따른다. 많은 시들이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보통 첫 몇 구절만 제시되고 나머지는 독자가 스스로 완성하도록 되어 있다. 독자들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나머지 부분은 언급되지 않는다.
헤이안 시대의 대부분의 구어체 문학과 마찬가지로, 겐지모노가타리는 주로 가나(일본어 표음 문자), 특히 히라가나로 쓰여 있으며 한자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당시에 한자로 글을 쓰는 것은 남성적인 행위로 여겨졌다.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한자 사용에 신중했으며, 대개 야마토어를 주로 사용했다.
정치와 불교 관련 어휘를 제외하면, 겐지모노가타리는 한자어를 놀라울 정도로 적게 포함하고 있다. 이는 이야기에 매우 균일하고 부드러운 흐름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동음이의어가 많이 있어서, 현대 독자들에게는 맥락만으로는 어떤 의미가 의도되었는지 파악하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추초도병풍
가을의 꽃과 풀을 금박 바탕에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병풍에는 쭉 뻗은 가지 끝에 노란 꽃이 핀 마타리, 긴 가지 끝에 자줏빛이 섞인 자그마한 흰색 꽃이 촘촘히 모인 등골나물, 그 아래로 푸른 꽃을 활짝 피운 도라지 등이 바람에 흔들려 자연스럽게 나부끼는 모습을 그렸다. 마타리, 등골나물, 도라지는 8세기 무렵의 시가집 『만요슈』에 실린 시에서 유래한 ‘가을의 일곱 풀’에 속한다. 가을에 잠시 피었다 지는 풀꽃은 지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애틋함을 담고 있다. 가을풀은 일본에서 그림 소재로 널리 사랑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