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by Doc



선종의 가르침을 쓴 글씨

一行書「積德厚自受薄」 ( Calligraphy of a Zen Teaching )

료칸(良寬, 1758~1831)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종이에 묵서

102.0×27.3cm

도쿄국립박물관 B-2965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 후기의 선승으로 시가와 글씨에 능했던 료칸(良寬, 1758~1831)이 "덕은 두텁게 쌓고, 스스로는 박하게 받는다[積德厚自受薄].”라는 선종의 가르침을 한 줄로 쓴 족자이다


료칸은 빗추 다마시마(備中玉島, 현재의 오카야마현[岡山縣] 구라시키시[倉敷市])에 있는 조동종曹洞宗 사찰 엔쓰지(圓通寺)의 다이닌 고쿠센(大忍國仙, 1723~1791) 밑에서 수행하여 33세에 그의 법맥을 잇는 어엿한 승려로 인정받았다. 이후 여러 지역에서 수행한 그는 고향 에치고(越後, 현재 니가타현[新潟縣])로 돌아가 74세를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청빈한 탁발승의 삶을 살았다.


사람들과 교류하며 남긴 수많은 글에는 그의 사상과 인품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점은 글의 내용뿐 아니라 서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료칸의 서법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 서예 작품 <아키하기조(秋萩帖)>의 초서草書나 중국 당대唐代 명필 회소懷素(생몰년 미상)가 쓴 <자서첩自叙帖>의 개성적인 초서에서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글씨는 붓놀림과 구도, 먹을 사용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겉치레 없이 균형을 살려 간소하면서도 빈약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초서로 쓴 이 작품은 본문은 물론 서명에도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고고하면서 어딘가 따뜻함이 묻어나는 필치에서는 속세를 벗어난 초연함과 함께 료칸의 자애로운 성품이 느껴진다.


무토베 가쓰노리(六人部克典)



차의 중심은 사람이다. 차와 나의 경계는 무한이다.



차 모임의 장식품을 적은 기록

茶事控書 (Writings on the Tea Ceremony)

호소카와 산사이(細川三齋, 1563~1645)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종이에 묵서 20.5×46.7cm

도쿄국립박물관 B-3344


호소카와 산사이(細川三齋, 1563~1645, 본명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가 차 모임이 이루어진 공간의 장식을 기록한 비망록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넓은 방[大書院]을 장식했던 족자와 향로, 향대 등의 물품을 간결하게 기록했다.


이 방에는 바닥을 한 단 높여 격식을 갖춘 공간인 조단노마(上段の間), 창문턱 형태로 만든 선반인 쓰케쇼인(附書院), 조단노마의 옆방인 쓰기노마(次の間)장식용 선반인 지가이다나(違い棚)가 있었다.


조단노마에는 가노 모토노부(狩野元信,1476~1559)가 그린 매 그림 족자, 표주박과 사자 장식 향로, 가라누리(唐塗) 향 받침대가 놓였다. 쓰케쇼인에는 작은 종[喚鐘]과 종을 치는 나무 막대[撞木], 마노로 만든 벼루 가리개[硯屏], 청화백자 붓, 용무늬 벼루, 둥근 먹, 게 장식 필가筆架, 난반야키(南蠻燒, 일본에서 다도 도구로 활용한 동남아시아 등지의 도기) 연적, 옛 글씨를 모아 엮은 서첩[手鑑] 등을배치했다.


쓰기노마에는 모래를 담은 화분에 꽃을 꽂아 두고 매화 그림 족자 한 쌍을 걸었으며, 지가이다나는 청화 모란무늬 향로, 붉은 칠 위에 마키에(蒔繪)로 장식한 향 도구용 쟁반[香盆], 대나무로 엮은 붉은 칠 다과 그릇, 차를 담는 항아리 등으로 장식했다.


무장武將이자 다도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호소카와 다다오키는 58세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출가하여 산사이라는 호와 소리쓰(宗立)라는 법명을 사용했다. 이 작품 서두에 “입도한 소리쓰가 받들어 행하다[入道宗立奉行]."라고 적혀 있는 점에서 호소카와 산사이가 다도에 전념했던 만년에 쓴 글씨로 추정한다.

센노리큐(千利休, 1522~1591)의 다도를 계승하여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았던 호소카와 산사이의 취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무토베 가쓰노리(六人部克典)



‘도키 이도'라 불린 아오이도 찻잔

青井戸茶碗 土岐井戸

Aoido Type Tea Bowl Named "Toki Ido"

조선시대 16세기

높이 6.7cm, 입지름 14.5cm

도쿄국립박물관 TG-2710


고려다완은 한반도에서 제작된 막사발로, 16세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다도를 위한 찻잔으로 주목받았다.


고려다완의 소박한 조형은 '와비스키(侘數寄)'의 미의식에 걸맞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 어느 것도 같은 모양이 없이 개성이 넘치고 감상할 만한 요소가 가득하다.


이러한 고려다완의 특징을 대표하는 것이 '이도(井戸) 찻잔'이다.


이도 찻잔의 매력은 깊고 우묵한 내면, 물레 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겉면, 대나무 마디처럼 생긴 굽, 굽 주위에 유약이 뭉쳐 만들어진 오돌토돌한 질감, 그리고 은은하게 감도는 붉은빛의 비파색枇杷色에 있다.


이도 찻잔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 크고 깊은 사발인 '오이도(大井戸)', 직선적 형태의 '아오이도(青井戸)', 그리고 그 외의 '고이도(古井戸)'로 구분된다.


이 작품은 단고(丹後) 지방에서 관직을 맡았던 도키(土岐) 가문의 인물이 소지했다 하여 '도키 이도(土岐井戸)'라 불린다.


낮은 굽에서부터 날렵하게 뻗어 올라가는 모양은 아오이도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비파색 그릇 표면에 흘러내린 백색 유약은 운치를 더한다. 고미술상인 히로타 마쓰시게(廣田松繁, 1897~1973, 호는 훗코사이 [不孤齋])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미카사 게이코(三笠景子)



'아마데라'라 불린 구로라쿠 찻잔

黒楽茶碗 銘尼寺

Black Raku Type Tea Bowl Named "Amadera"

조지로(長次郎, ?~1589)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6세기

높이 8.2cm, 입지름 10.3cm

도쿄국립박물관 G-4836


도공 조지로(長次郎, ?~1589)가 다도 명인 센노 리큐(千利休, 1522~1591)와 함께 만들었다고 전하는 라쿠 찻잔[樂茶碗]은 기본적으로 낮은 원통형의 구로라쿠(黑樂) 찻잔과 아카라쿠(赤樂) 찻잔 두 종류가 있다. 장식을 전혀 하지 않은 간결함이 특징이며,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평평하게 늘린 흙덩이를 손으로 빚어 찻잔 형태를 만들고 주걱으로 다듬어 완성한다.


찻잔을 손에 쥐었을 때 양손에 꼭 들어맞으며, 부담 없는 무게로 차 마시는 행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한다.


광택 없는 건조한 질감의 라쿠 찻잔은 간결한 외형 덕분에 '와비(侘び, 소박함)'의 미의식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도에 적합하도록 세밀하고 철저하게 계산하여 만든 찻잔으로, 당시에는 ‘신식 도자기'로 인식되어 다도인들 사이에서 참신한 감각의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라쿠 가문은 조지로를 초대初代로 하여 오늘날 16대(1981~)에 이르기까지 찻잔 제작을 이어오고 있다.


사업가 마쓰나가 야스자에몬(松永安左エ門,1875~1971, 호는 지안[耳庵])이 1949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차시


竹茶杓 (Tea Scoop)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 1556~1595)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6세기

대나무

길이 17.8cm

도쿄국립박물관 G-4853



차시는 차 모임에서 작은 용기에 담긴 가루차[抹茶]를 덜어 찻잔에 넣을 때 사용하는 가느다란 도구로, 주로 상아나 대나무로 만든다.


대나무 찻숟가락은 대나무의 종류, 껍질의 무늬, 차를 떠올리는 끝부분을 다듬는 방식, 마디의 유무와 위치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만큼 개성 있고 운치 있는 작품이 많다.


또한 다케노 조오(武野紹鷗, 1502~1555), 센노리큐(千利休,1522~1591),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 1544년경~1615) 등 저명한 다도인이나 무장武將이 손수 다듬은 것으로 전하는 유서 깊은 작품도 있다.


이 찻숟가락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를 섬긴 무장이자 아이즈와카마쓰 성(會津若松城)의 성주로 다도에 조예가 깊었던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 1556~1595)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우지사토는 유능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히데요시의 명으로 리큐가 자결한 뒤 그의 양자이자 사위인 센 쇼안(千少庵, 1546~1614)을 보살피며 센 가문의 부흥에 기여한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힘찬 조형미를 지닌 찻숟가락이다.





다도茶道는 다실茶室, 정해진 도구, 차를 달이는 예법인 데마에(手前) 그리고 식사 를 기본 요소로 삼는 예술이자 유희이다. 다회茶會가 언제 열렸고 주최자와 참석 자는 누구였는지, 어떤 도구(솥, 물항아리, 찻잔, 차통, 찻숟가락, 퇴수기, 솥뚜껑 받침, 국자 등)를 사용했 는지, 다실 내 장식 공간인 도코노마(床の間)는 어떻게 꾸몄는지, 식사로는 어떤 메 뉴가 제공되었는지 등을 상세히 기록한 문서를 '다회기茶會記'라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다회는 『마쓰야카이키(松屋會記)』에 실린 1533년 3월의 기록 이며, 이보다 앞선 시기의 다도는 어떤 형태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도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1392~1573) 말기부터 부유한 상인 과 승려들 사이에서 점차 확산되었고, 이후 센고쿠 시대(戰國時代) 무장武將 사이에서도 유행하면서 센노리큐(千利休, 1522~1591)를 중심으로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다.


기존 다도사 연구에 따르면, 무로마치 막부의 최고 권력자였던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은 중국 남송대南宋代의 귀중한 그림인 '가라에(唐繪)'로 장식한 방인 '가이쇼 (會所)'에서 '가라모노(唐物)'와 같은 값비싼 중국산 다구를 사용해 차를 마셨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부유한 상인이나 무사 사이에서도 다도가 퍼지면서 점차 한반도,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제작된 간결하고 담백한 미감의 다기로 취향이 바뀌었고, '초암 草庵'이라 불린 간소한 다실이 선호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다도를 '와비차(茶)'라고 부 른다. 와비차의 창시자로는 슈코(珠光,?~1502)가 알려져 있으며, 센노 리큐가 그의 뜻을 이어받아 집대성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와비차는 근대 이 후 만들어진 용어라는 지적이 있다. 문헌에 등장하는 '와비스키(侘數寄)'는 원래 다구를 갖추지 못한 가난한 다도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부유한 다도인이 가난한 다도인을 모방하며 행하는 다도, 즉 간결한 도구와 절차로 행하는 다도로 그 의미가 변화했다. 즉, 와비스키는 당시 존재했던 다양한 다도 예법 중 하나였던 셈이다.


리큐가 도공 조지로(長次郎, ?~1589)와 함 께 최초로 제작했다고 전하는 라쿠 찻잔 [樂茶碗]삽도2이나, 리큐가 살던 시대에 다도 도구로 새롭게 주목받은 고려다완은 수수하고 투박하다는 평가 속에서 와비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같은 찻잔이라도 봄날 화사한 햇살이 스며드는 다실에서 사용하는지 혹은 겨울밤 어둡고 고요한 공간에서 사용하는지, 도코노마에 꽃을 놓았는지 수묵화를 걸었는지, 물항아리나 차통이 중국것인지 일본 것인지 등 시간이나 다른 도구와의 조합 에 따라 찻잔의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섭도시. 이것이 다도 의 참된 묘미라 할 수 있다.


다도는 '일기일회-期一會(평생 한 번뿐인 소중한 만남)'라는 말로 상징된다. 도구의 조합이나 예법이 간소하더라도, 소박하게 보이는 도구일지라도, 거기에는 분명 모임이 열리는 의미와 도구 조합이 지닌 의미가 있다.


다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주최자의 세심함에 감동하고,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을 함께함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라이도진'이라 불린 대추 모양 차통

黒漆大棗 銘来道人

Tea Caddy Named “Raidojin”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나무에 칠

높이 7.9cm, 지름 7.9cm

도쿄국립박물관 H-4319



말차[抹茶]를 담는 칠기 합盒으로 대추 모양을 닮아 '나쓰메(棗)'라 불린다. 16세기 중반부터 차 모임에서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583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차 모임을 계기로 널리 유행하면서 다도에서 중요한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은 '오나쓰메(大棗)'로 분류되며 당당한 모양새를 뽐낸다. 바닥에는 다도인 센 소탄(千宗旦, 1578~1659)의 호 ‘도쓰사이(咄齋)'가 붉은 칠로 적혀 있다. 뚜껑 안쪽에는 그의 참선 스승인 세이간 소이(淸巖宗渭,1588~1661)가 소탄의 청에 따라 이 나쓰메에 '라이도진(來道人)'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내용[元伯老人伏需來道人號宗渭書]이 적혀 있다.

여기서 ‘도진(道ㅅ)'이란 불교 수행자나 세속을 떠난 사람을 뜻한다. 이 나쓰메를 보관하던 상자 안에는 옛 글씨 감정가인 고히쓰 료엔(古筆了延, 1704~1774)의 감정서가 남아 있으며, 뚜껑 안쪽에는 오모테센(表千) 가문의 8대손 솟타쿠사이(啐啄齋,1744~1808)의 글씨가 있다.




무사시노 들판을 그린 병풍

武蔵野図屏風

( The Plains of Musashi (Musashino))

작가 미상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6곡 1쌍 종이에 금지金地, 채색

각 154.5×360.6cm

도쿄국립박물관 A-1423



무사시노(武藏野)는 지금의 도쿄도(東京都)와 사이타마현(埼玉縣)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으로, 와카(和歌)에 자주 등장하는 일본 동부의 대표적 명소이다.


달 아래 억새 등 가을풀이 무성한 너른 들판은 가을의 정취를 담은 와카의 주요 소재였다.


이 그림에서는 지평선 가까이에 떠오른 달과 웅장한 후지산의 산줄기가 대비를 이룬다. 달은 억새와 도라지 같은 가을풀에 가려져 있다. 이는 “달이 숨어들 봉우리조차 없구나[月の入るべき嶺もなし].”라는 와카 구절을 연상케 한다. 화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억새와 멀리 펼쳐진 산 사이에는 금빛 구름과 안개가 가로로 길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표현은 화면에 깊이감을 부여하는 일본 회화의 전통적 기법이다.


이 작품은 무사시노라는 유명한 장소를 그린 명소 그림이자 가을의 풍경을 담은 계절 그림이다.


명소 그림이나 계절 그림은 일본의 자연과 풍속을 표현한 '야마토에 (やまと繪)'라 불리며,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 이후 줄곧 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깊은 정취를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아와레(あはれ)'라고 일컬어 왔다.


아와레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일본 고유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쓰치야 다카히로(土屋貴裕)



학과 거북무늬 구로라쿠 찻잔

黒楽鶴亀文茶碗

Tea Bowl with Crane and Turtle Design

닌나미 도하치(仁阿彌道八,1783~1855)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높이 9.5cm, 입지름 9.7cm

도쿄국립박물관 G-319


원통형 구로라쿠(黑樂) 찻잔이다. 몸체에 검은 유약을 두껍게 바른 뒤 유약 일부를 벗겨내고 흰 점토를 채워 넣어 하얀 학을 묘사했다.


학은 고개를 숙이고 부리를 벌린 채 한 발을 내디딘 모습이다. 눈과 날개는 가느다란 검은 선으로 세밀하게 표현했다. 찻잔 안쪽에는 같은 기법으로 거북을 묘사했다. 차 모임에서 손님은 처음에는 겉면의 학을 감상한 다음, 차를 마시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거북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에서 장수를 의미하는 학과 거북무늬가 차를 마시는 과정에서 완성되어 차 마시는 이의 행운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유쾌한 발상이 담긴 찻잔이다.


찻잔을 만든 닌나미 도하치(仁阿彌道八,1783~1855)는 교토에서 가마를 운영한 다카하시 도하치(高橋道八) 가문의 2대로 문인 도공인 오쿠다 에이센(奥田穎川, 1753~1811)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오쿠다 에이센 밑에서 함께 배운 도공으로는 아오키 모쿠베이(靑木木米, 1767~1833), 긴코도 가메스케(欽古堂龜助, 1765~1837)가 있다.


이들은 모두 교토에서 활약하는 한편, 여러 지방에 초청을 받아 활동하며 각지의 요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도하치 또한 다카마쓰번(高松藩) 산요(讚窯, 현재의 가가와현 [香川縣] 다카마쓰시[高松市])에서 활동했다. 그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학무늬 구로라쿠 찻잔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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