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by Doc




가을풀을 그린 병풍

秋草図屏風( Autumn Grasses )

와타나베 기요시(渡邊清淸, 1776~1861)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6곡 1쌍 종이에 금지金地, 채색

각 156.0×346.0cm

국립중앙박물관 구3366


화려한 금박 바탕 위에 가을 꽃과 풀을 섬세하게 묘사한 병풍이다.


병풍의 하단에는 화가 와타나베 기요시(渡邊淸1776~1861)의 도장 '기요시(淸)'가 찍혀 있다.


와타나베 기요시는 나고야(名古屋) 출신으로, 린파(琳派)의 영향을 받은 다나카 도쓰겐(田中訥言, 1767~1823)에게 그림을 배웠다. 이후 교토에서 일본 고유의 산수와 풍속을 전통 양식으로 그리는 야마토에(やまと繪)를 익혀 복고 야마토에파의 대표 화가로 활약했다.


각 병풍에는 흰점 위로 노란색을 덧칠해 입체적으로 표현한 마타리와 푸른빛 도라지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마타리와 도라지는 '가을의 일곱 가지 풀'에 속하며, 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 수록된


"싸리꽃, 억새꽃, 칡꽃, 패랭이꽃, 마타리꽃, 등골나물, 도라지꽃[萩の花尾花葛花なでしこの花 女郎花 また藤袴 朝がほの花]。


”이라는 시 구절에서 유래한다. 가을에 잠시 피었다 지는 풀꽃은 지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애틋함을 담고 있다. 이처럼 가을풀은 일본에서 그림의 소재로 널리 사랑받았다.




노 가면 '샤쿠미'

能面曲見

Shakumi, Noh Mask

에도 시대(江戸時代) 19세기

나무에 채색 일본 중요문화재

길이 20.9cm, 너비 13.9cm

도쿄국립박물관 C-1547


볼록한 이마와 앞으로 돌출된 턱, 중앙이 움푹 들어간 얼굴 형태의 '샤쿠미(曲見)' 가면이다. 중년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일본의 전통 가무극 노(能) 공연에서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진 어머니 역할에 자주 사용된다.


깊이 파인 눈매와 아래로 향한 반달형 눈동자, 움푹한 볼은 야위고 지친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가면이 사용된 노 <스미다강[隅田川]>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유괴된 아들을 찾아 교토에서 에도의 스미다강까지 이르지만 뱃사공에게 아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무덤 앞에서 절규하다가 아들의 환영과 마주하지만, 날이 밝자 그마저 사라진다.


이 가면이 사용된 또 다른 노 <햐쿠만(百萬)>에서는 자식과 생이별한 어머니가 군중 앞에서 신에게 바치는 춤을 추며 절절한 감정을 쏟아낸다. 이 광경을 본 아이가 어머니를 알아보고 다가오자 어머니는 제정신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외에도 먼 타지로 떠난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년 여성의 역할에 사용된다. 이 가면은 노가쿠(能樂)가 가장 번성했던 나라(奈良)에서 활약한 곤파루(金春) 가문에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가와기시 세리(川岸瀨里)




가을풀무늬 가라오리 노 의상

唐織濃茶茶浅葱段秋草模様

Karaori Noh Costume with

Autumn Grass Design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비단

길이 152.7cm, 너비 143.2cm

도쿄국립박물관 1-2861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92~1573)에 간아미(觀阿彌, 1333~1384), 제아미(世阿彌, 1363년경~1444년경) 부자가 집대성한 것으로 전하는 일본 전통 가무극 노(能)는 아시카가(足利) 막부의 강력한 후원을 받으며 발전했다.


무로마치 시대 후반 센고쿠 시대(戰國時代)에 일시적으로 쇠퇴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1537~1598)의 적극적인 후원을 계기로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573~1603)부터 무가武家 의례의 중요한 요소로 다시 자리매김했다. 에도 막부는 노를 공식 악극으로 지정했고, 각 다이묘(大名) 가문은 전속 배우를 고용하고 공연을 위해 호화로운 노 의상을 주문 제작했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요네자와번(米澤藩)을 다스린 우에스기(上杉) 가문에 전해 내려온 노 가면과 의상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가라오리(唐織)'는 그중 하나다. '가라오리'는 문자 그대로 중국산 직물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일본 고유의 직물이며, 자수처럼 보이도록 무늬를 짜 넣은 것이 특징이다.


이 가라오리는 16세기 무렵의 옛 디자인을 활용하면서 금실을 섞어 화려하게 완성했다. 날실은 한 가닥에 연한 청록색, 갈색, 진갈색이 이어지도록 염색하고 싸리, 도라지, 마타리, 패랭이꽃, 국화 등 가을풀무늬를 넣어 고소데(小袖) 형태로 제작했다. 가라오리는 일반적으로 여성 역을 맡은 배우가 착용했다. 붉은색을 절제한 차분한 색조의 가라오리는 '이로나시(紅無, 붉은색 없음)'라 불리며 ‘샤쿠미(曲見)'나 '후카이(深井)' 같은 중년 여성 가면과 함께 착용했다.


노 가면 '한냐'

能面般若

Hannya, Noh Mask

에도 시대(江戸時代) 17~18세기

나무에 채색, 도금 일본 중요문화재

길이 21.2cm, 너비 13.9cm

도쿄국립박물관 C-1554


한냐(般若)'는 노(能)에서 신분이 고귀한 여성이 질투와 원망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원귀로 변하는 역할에 사용한 가면이다.


가운데로 가른 가르마에 살짝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흔들리는 감정을 보여준다.


도금한 동판을 덧댄 눈과 옆으로 튀어나온 뿔은 모두 금색이고, 크게 벌린 입안의 치아도 도금이 떨어져 나간 윗니를 빼면 금빛을 띤다.


노 가면에서 금색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표현에 쓰인다. 매우 무섭게 보이지만 팔^' 자로 처진 눈꺼풀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사랑 때문에 북받쳐 오르는 질투와 분노를 이기지 못한 여성의 마음을 표현한 가면이다.


이 가면은 곤파루(金春) 가문에 전해 내려온 것이다.


곤파루 가문은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1392~1573)에 만들어진 오래된 한냐 가면(현재 도쿄 에이세이분코[永青文庫] 소장)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떠 만든 것이다.


한냐 가면은 노 <아오이노우에(葵上)>에서 사용한다. 히카루 겐지(光源氏)와 깊은 관계였던 한 여성이 그와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산 채로 원혼이 되어 히카루 겐지의 부인을 병들게 하지만 승려의 기도로 그 원혼은 진정된다는 내용이다. 이때 무대에 등장하는 원혼 역할의 배우는 한냐 가면을 착용하여


여인의 억눌린 감정과 절망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아사미 류스케(浅見龍介)



둥근 문장무늬 누이하쿠 노 의상

縫箔紺地丸紋散模様

Nuihaku Noh Costume with

Scattered Roundel Crests Design

에도 시대(江戸時代) 18세기

비단에 자수, 금박

길이 146.7cm, 너비 141.8cm

도쿄국립박물관 1-2878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에 노(能)는 에도 막부의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공식 악극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다이묘(大名) 가문은 전속 노 배우를 두거나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유파에 따른 연기 방식과 의상 착용 방식에 일정한 형식이 나타났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바탕으로 한 노 <아오이노우에(葵上)>에는 질투로 인해 산 채로 원혼이 된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 역할을 맡은 배우는 한냐(般若)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다. 뿔 달린 가면인 한냐에는 슬픔을 머금은 분노가 담겨 있다. 한냐의 의상으로는 금은박을 세모 모양으로 이어붙인 비늘무늬 스리하쿠(摺箔)를 안에 입고, 그 위에 누이하쿠(縫箔)를 덧입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이 누이하쿠는 검은색이나 남색 바탕에 자수와 금은박으로 영력(靈力)을 상징하는 다양한 둥근 무늬를 넣은 옷으로, 누이하쿠의 전형적인 디자인을 보여준다.


노 의상의 착용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1573~1603)까지는 여성 배역의 겉옷으로 화려한 자수와 금박이 돋보이는 누이하쿠를 입었으나, 이후에는 더 화려한 가라오리(唐織)를 입었다. 에도 시대에는 누이하쿠 양 소매에 팔을 끼워 입는 것이 아니라 소매를 허리에 감는 방식으로 착용했다. 이때 윗도리는 소매가 넓은 오소데(大袖)를 배역에 맞춰 입었다.


오야마 유즈루하(小山弓弦葉)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린 병풍

邸内遊楽図屏風

(Indoor Amusements)

작가 미상

에도 시대(江戸時代) 17세기 전반

6곡 1쌍 종이에 금지金地, 채색

각 78.5×268.2cm

국립중앙박물관 구8561


건물 실내외에서 다양한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묘사한 풍속화이다. 이 작품은 6곡 병풍이 한 쌍을 이루며, 건물의 마당과 실내에서 여러 놀이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이어지는 큰 화면에 담아냈다.


오른쪽 병풍에는 건물에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가마꾼과 하인들, 그리고 건물의 마당에서 북과 소고 연주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을 그렸다. 왼쪽 병풍에는 증기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과 샤미센(三味線, 일본의 대표적인 현악기) 연주에 맞춰 흥겹게 춤추는 사람들 그리고 2층 누각에서 장기 두기, 편지 쓰기, 카드놀이, 차 마시기 등의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을 묘사했다.


이처럼 다양한 유흥거리를 묘사한 '유락도遊樂圖'는 무사들의 패권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센고쿠 시대(戰國時代)가 끝나고 에도 막부가 들어서며 사회가 안정된 16세기 말에서 17세기에 많이 제작되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즐기려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