もし僕のことを覚えていてくれるなら、 他の人がみんな忘れてしまっても構わない。
"너만 나를 기억해 준다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잊어도 괜찮아."
走ることについて語るときに僕の語ること
村上春樹.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 기억된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잊혀지지 않는 나 그리고 타. 서로가 서로 간의 격이 넘나 든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이 된다.
차(茶)를 한다는 것.
차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다채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 요즘이다. 나에게 있어 차는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출근하기 전 그리고 퇴근해서 하루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 차는 중요한 도도메가 된다.
내 주된 차는 말차(抹茶)였다.
말차 중에서도 고이차(濃茶)를 주로 마시다가 물을 붓고 우스차(薄茶)로 변형해 마시는 2가지의 방법으로 차를 하고 있다.
말차를 한지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일상화된 행동에서 태가 난다. 차에 대한 익숙함이다. 그러나 이것이 갑작스레 주변인들 사이에서 이슈가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집 근처로 지인들이 놀러 왔기에 작은 다회를 했고 말차를 냈다.
고이차(濃茶) 형식으로 차를 낸 후 마시고 우스차(薄茶) 마무리를 하면서 나만의 격에 예의를 담아 대접
했다.
내가 좋아라 하는 하츠무까시 한통을 다 썼다.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함께 다회의 팽주(烹主)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팽주(烹主)라는 것은 찻자리의 주인으로 다회를 주관하는 자리를 말한다. 지인들에게 보이는 처음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나는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차에 집중했다.
칠탕법(七湯法)을 중심으로 내 마음을 완에 불어냈다. *
‘제1탕’은 차의 양을 재어 끓인 물을 받고, 아교(阿膠)를 녹여 개듯이 고루 섞은 뒤, 잔의 가장자리를 따라 탕을 따르되 차를 적셔서는 안 되며, 또한 그 기세가 세차서도 안 된다. 처음엔 차를 고르게 뒤섞이도록 천천히 반죽하다가 점차 속도를 높여서 격불을 한다.
손은 가볍고 차선은 무겁게 하면서 손가락은 감싸듯이 하고, 팔을 돌린다. 이로써 위아래가 모두 투명하게 되어 마치 효모나 누룩에 밀가루가 부풀어 오르듯 하여, 마치 드문드문한 별과 희고 밝은 달이 찬연(燦然)이 생겨난 듯하다. 이로써 차의 근본(根本)이 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태(態)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담는 것이 바로 이 태(態)이다. 태의 완성을 목표로 두고 있으나 아마 평생 걸릴 듯하다. 태가 갖추어지면 이것은 즉, 말차(抹茶)를 우려내기 위한 기본 조건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제2탕’은 차의 표면에 직접 따르고 둘레를 한 줄기 돌린다. 급히 따르고 급히 멈추면 차의 표면이 움직이지 않는다. 격불을 힘차게 하면 빛깔과 광택이 점점 나기 시작하여 진주구슬 같은 거품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제3탕’은 수량의 다소(多少)는 전과 같지만, 격불은 갈수록 가볍고 고르게 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에 돌아와 차의 표면과 속이 환히 통하게 되면, 좁쌀무늬와 게눈(蟹眼)이 뜨고 모여서 뒤섞이며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차의 빛깔은 이미 십 분의 육 내지는 십 분의 칠까지는 얻어진 것이다.
‘제4탕’은 아낌을 중시한다. 차선을 돌릴 때는 약간 넓게 느슨하게 돌려야 하며 빠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차의 맑고 참된 화려한 색채가 이미 환하게 피어날 뿐만 아니라, 차죽(茶粥)의 표면 위로 점점 뽀얗게 가벼운 운무(雲霧)가 생겨나게 된다.
‘제5탕’은 분량을 약간 멋대로 따른다. 솔은 가볍고 고르게 해서 통하여 뚫리게 한다. 만약에 거품 피워 세우기가 미진하면 부딪치기(擊)로써 일으키고 거품의 피워 세우기가 이미 지나쳤다면 떨어 버리기(拂)로써 거둬들이고 마시면 된다. 이 상태는 깊은 아지랑이가 모이고, 눈이 엉기어 모인듯하고, 차의 향(색)은 최고에 다다른 것이다.
‘제6탕’은 거품 피워 세우기의 모양을 보고 젖 같은 액이 한도에 이르러 힘차게 일어나거든 솔로 붙여서 느슨하게 두르고 떨어 버릴 뿐이다.
‘제7탕’은 가볍고도 맑은 것과 무겁고도 흐린 것을 분간하며, 묽고 진함을 살펴보아 중용(中庸)을 얻도록 따르고, 원하는 대로 되었으면 격불(擊拂)을 멈춘다. 그러면 ‘젖 같은 안개’ 즉 유무(乳霧)가 솟아올라서 찻잔을 넘쳐서 일어나 은은히 둘레에 엉기어 움직이지 않게 된다. 이것을 ‘잔 물림’, 즉 ‘교잔(咬盞)’이라고 한다. 마실 때는 그 가볍고도 맑으며 둥실둥실 떠 움직여서 겹친 것(거품)을 균등하게 갈라서 마신다.
桐君錄曰, 茗有餑, 飮之宜人 (桐君錄)
“차에는 발(餑)이 있는데 이를 마시면 사람에게 알맞다”.
《동군록(桐君錄)》에 나오는 말이다. 정성을 다해서 집중한 마음을 각기 성향이 다른 타인 지인들에게
전달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다완에 차선으로 격불한 모습을 처음 보는 지인들이다. 너무나도 생소한 모습에 시선은 무아지경으로 내 손끝과 다완을 바라보고 있다.
미칠 듯 스멀스멀 올라오는 풀냄새에.. 다들 그냥 집중된 분위기이다.
이윽고 맛보게 된 차 한 사발 그리고 감동.
차 한잔이 지닌 무한이 타에게로 들어가 시간속의 공간 공간속의 시간으로 작용되는 이 장소에서 차 향기로 부르고 차의 맛으로 대답한다.
한 사발의 미학
그리고 나와 타의 연결 그 시작.
다들 처음 경험해 본 말차 한사발에 놀란다. 이런차는 처음 마셔봐요... 이게 말차야. 그리고 말차는 정중동과 고요를 함께 가지고 있지...
우리의 차는 다례, 일본의 차는 다도.. 조용히 내공을 담아. 설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을 바라본다.
이 대접은 글세,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일기일회의 마음, 그 잔잔한 미학으로 다시 이야기 하고 대답하며 주고 받는다.
이 기억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송대의 휘종(徽宗) 황제가 저술한《대관다론(大觀茶論)》의 원문을 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