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by Doc





주말의 발걸음은 역시 차(茶)다. 다인(茶人)인 내가 차를 한다는 것은 좋은 차와 성정이 가득한 차가 있는 찻집의 선택이 우선이다. 내가 선택한 장소는 서울이 아닌 동네.


수원에 있는 찻집 중에서 차를 할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다. 차의 대중화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를 무엇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차는 차다. 그러나 차는 차가 아니다. 치는 차로 그 순수성을 인정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그러나 현재 사회에서는 차에 대한 순수는 사리지고 오직 스쳐 지나가는 기호품 그 대표성의 표면이 된 지 오래이다. 즉 내면의 마음은 사라지고 다테마에 즉 형이 재배한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차(茶)는 다양하며 여러 가지의 색을 지닌다. 이 색깔은 복합적인 색깔과 표정을 지닌다. 표정은 차 하나하나를 대표한다. 이 독특한 표정은 차 개개인의 고유성을 대표하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의미는 차를 재배하는 그리고 만들어 내는 제대로의 원형을 구현하는 제다하고 불과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를 생산하고 만들어 내는 과장은 정성과 정직이다. 이것이 차인의 마음과 합치되었을 때, 차의 색은 선명해지고 분명해진다. 차를 취급하고 다루는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으로 발걸음 한 다사에서 차를 다루는 이로써 그리고 다인으로서의 생각과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차를 다루는 즉 사람을 대면하는 대면의 미학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차의 맛으로 표면화되기 때문이다. 차의 맛을 시작으로 그리고 후각으로 미각으로 구체화된다.


근대주의에서 시각이라는 것은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눈길이다. 다시 말해 자기 의지로 대상물을 차정해두고 그것을 본다는 의미이다. 라고 이야기 한 이우환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한다.


예술에서 한 장의 그림을 봄으로써 현실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눈길이다. 다시 말해 자기 의지로 대상물을 차정해두고 그것을 본다는 의미이다. 예술에서 한 장의 그림을 봄으로써 현실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시적인 일인가 작품으로써 그림을 보기 전과 후하고는 주변의 대상이나 공간이 다른 것으로 비치게 된다.



차 역시 차인에게는 예술과도 같다. 차를 따르는 모습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시각으로 그리고 후각으로 미각으로 맛을 느끼면서 감각이 눈을 뜨고 현실이 좀 더 생기 있는 그리고 활기가 넘치는 세계로 살아난다. 일상을 신선하게 느끼게 하고 그것을 보이게 만들어 주는 시각. 맛으로 음미할 수 있는 차의 예술, 그것을 그리는 미학의 미각, 이 힘울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차의 여운과 맛을 느낄 수 있는 미각 차의 격불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는 태(態). 형태(形態)의 자연스러움 차인에게서 볼 수 있는 지적인 개념성과 함께 감성의 지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거기에 미지적인 내부의 힘 태(態)의 내공이 침투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형태의 미학과 차의 맛이 결합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진정성의 진의를 지니고 있는 차 한잔을 제공 아니 대접한다는 것은 신체를 사용하고 오감의 오미를 체계화시키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격의 전달은 그대로 마음으로 이여진다.




말차를 할 때의 순간의 조우는 말차와 차선 그리고 완의 조화로 나타난다. 조화로움에 대한 생각은 나와 타가 다르다. 그리고 오늘에 있어서 이곳 다사는 오래간만에 차에 대한 후우. 말차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정립해 보는 공간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장소가 아니었나 생각해 보는 현재의 지금. 지금의 오늘이다.


좋은 차 대접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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