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by Doc




차와 술은 다양하며 여러 가지의 색을 지닌다.


이 색깔은 복합적인 색깔과 표정을 지닌다. 표정은 이차술 하나하나를 대표한다. 이 독특한 표정은 차(茶), 술 개개인의 고유성을 대표하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의미는 차와 술을 재배하는 그리고 만들어 내는 제대로의 원형을 구현하는 제다와 양조와 불과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술을 생산하고 만들어 내는 과장은 정성과 정직이다. 이것이 차인 그리고 마스터의 마음과 합치되었을 때, 차와 술의 색은 선명해지고 분명해진다. 차술을 취급하고 다루는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으로 대접해 보는 차와 그리고 술을 다루는 이로써 이 마음의 격은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와 술도락(酒)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차술을 다루는 즉, 사람을 대면하는 대면의 미학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차술의 맛으로 표면화되기 때문이다. 차술의 맛을 시작으로 그리고 후각으로 미각으로 구체화된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나의 격을 타인 상대방에게 전한다는 의미이며 그 올곧음과 순수성을 공감하고 공유한다는 강한 마음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차술은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다양한 색과 맛이 존재한다. 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살아감에 있어서 존재의 이유로서의 분명성을 지닌다. 새로운 맛을 경험함으로써 열리는 새로운 세계는 예술을 접하는 것과 같다. 미각의 예술이라 불리우는 이것은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무엇을 느낀다는 것은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그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근대주의와 현대의 지금에서 시각이라는 것은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눈길이다. 다시 말해 자기 의지로 대상물을 차정해 두고 그것을 본다는 의미이다.


예술에서 한 장의 그림을 봄으로써 현실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눈길이다. 다시 말해 자기 의지로 대상물을 차정해두고 그것을 본다는 의미이다. 예술에서 한 장의 그림을 봄으로써 현실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시적인 일인가 작품으로써 그림을 보기 전과 후하고는 주변의 대상이나 공간이 다른 것으로 비치게 된다.



차술 역시 나에게는 예술과도 같다. 차술을 따르는 모습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시각으로 그리고 후각으로 미각으로 맛을 느끼면서 감각이 눈을 뜨고 현실이 좀 더 생기 있는 그리고 활기가 넘치는 세계로 살아난다. 일상을 신선하게 느끼게 하고 그것을 보이게 만들어 주는 시각. 맛으로 음미할 수 있는 차술의 예술, 그것을 그리는 미학으로써의 미각의 힘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처음으로 금강주를 친구와 마셨다. 금강주는 특이한 술이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술 중 도수가 가장 높다. 또한 가장 생산량이 적은 술이다. 2025 막스포에서 대표님과의 약속을 과하게 지켰다. 구매를 하고 서신을 남겼다. 생산량이 적은 이유는 만드는 재료가 귀하기 귀한 귀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압 증류주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이 또한 전통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소감을 물으니, 천상천하 유아독존 유일무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술 한 방울의 미학이 사람을 이렇게도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술의 미학이며, 금강주가 지닌 힘이다. 금강주는 술의 정점이며 예술이다.


차술을 나눈다는 것은 예술을 보고 공감하며 대화하는 것과 같다. 대화는 무한의 시작이며 공간 속에서의 교감이다. 이러한 교감은 아무나하고는 할 수 없는 지적인 영역과 정신적 영역에서의 교류이다. 차술의 여운과 맛을 느낄 수 있는 미각 차의 격불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는 태(態). 형태의 자연스러움 술 한잔의 따름으로 볼 수 있는 지적인 개념성과 함께 감성의 지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거기에 미지적인 내부의 힘 태(態)의 내공이 침투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형태의 미학과 술의 맛이 결합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진정성의 진의를 지니고 있는 차술 한잔을 제공 아니, 대접한다는 것은 신체를 사용하고 오감의 오미를 체계화 시키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격의 전달은 그대로 마음으로 이여진다.


차술 중애서 특별함을 지닌 표정있는 아이들과의 조우는 즐겁다. 이는 마음으로 이여져 새로운 연결로 이여 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차술에서 그러한 연결, 그 첫 시작의 여운이 시간 속의 공간 공간 속에 시간에 놓여 있는 우리들 안에 가득 차 넘쳐흐르기를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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