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집을 떠나던 날

첫 자취를 해외에서 하는 사람

by BH

일본으로 가는 것이 확정되고부터 떠나기까지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금방 갔다. 자매학교에서 비자신청을 위한 서류가 2월에 본교 등록금을 낼 때 까지도 도착하지 않아서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대로 서류가 지연되거나 비자발급이 되지 않아서 나는 교환학생도 못 가고, 수강신청도 못해서 애매하게 강제 휴학하면 어쩌지..? 와 같은 생각들. 학교의 국제지원팀에 확인하면 문제없을 거라고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 탓인지 나는 그 기간에 다양한 걱정들을 끊임없이 하면서 속을 끓였다.

30대의 나는 여전히 걱정과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지만 20대에는 지금보다도 더 심했다. 오죽했으면 '일본에 교환학생 가서 이지매 당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별 걱정을 다 한다~ 로 웃어넘길 생각이지만 당시의 나는 미지의 세계에 혼자 떨어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컸다. 혼자서 밥 해 먹고 빨래하고 그런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가사에 대한 걱정, 능숙하지 못한 일본어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 등등.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고, 내가 걱정하는 것 중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2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봤었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생활에 대한 걱정은 했지만, 예상치 못한 건강에서 문제가 터질 줄이야.


여러 가지 일본 생활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서류는 무사히 도착했고, 난생처음 일본 대사관이란 곳에도 갔다. 비자 신청을 위해서 혼자서 종로의 대사관을 가서 서류를 작성했는데, 이렇게 작성하면 되는지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도 너무 신기했다. 대사관이라는 데는 이렇게 생겼구나,라는 느낌과 동시에 작은 일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서 일본어가 너무 많이 들리고, 직원분들도 일본인에 여러 가지 붙어있는 포스터나 알림 사항에도 일본어가 가득했다. 그제야 내가 진짜 일본 교환학생을 가는구나라는 실감이 나면서 조금 떨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가 한 일은 출국 전날까지 송별회를 겸한 술자리였다. 한국은 3월에 학기가 시작하지만 일본은 4월에 학기가 시작이었고, 당연히 3월 말에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일본을 갈 줄 알았지만 학교에서는 4월 4일에 입국하라고 했기에 출국 전 2주 동안은 거의 매일 친구들을 만나서 놀다가 들어왔고 결국 나는 마지막날 밤늦게까지 온 집안을 헤집으면서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짐을 싸야 했다. 사촌언니에게 빌린 28인치 캐리어와 사람도 들어갈만한 이민가방에 엄마는 밑반찬은 물론 딸이 굶을까 봐 걱정되었는지 생쌀도 바리바리 싸줬다. 조금만 더 했으면 집을 통째로 가져갈 뻔했다. 캐리어가 잠기지 않아서 위에 올라타서 체중을 실어서야 겨우 캐리어를 닫을 수 있었고 내가 1년 동안 살 짐 꾸리기가 끝났다.


대망의 출국날. 부모님과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이 아닌 장기거주를 목적으로 공항까지 가는 길에 창문으로 스쳐 지나가는 동네 풍경은 20년 이상을 봐온 낯익은 길인데도 낯선 느낌이었다.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준 부모님과 앉아서 엄마가 챙겨 온 과일도 먹고 티켓을 발권하고 출국장 앞에서 건강하게 공부 잘하고 오겠다고 손을 흔들고 들어갔다. 혼자서 1년 동안 집을 떠나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앞섰고 가족들이랑 떨어진다는 불안감도 컸지만, 옆에는 함께 교환학생에 합격해서 같이 가기로 한 동기가 있으니 쪽팔리게 울 수도 없었다.

두 시간 반 정도의 비행 끝에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비행기가 조금 일찍 도착했고, 두근두근 대는 마음으로 입국심사를 받은 뒤, 학교에서 우리를 마중 나와있을 것을 기대하며 입국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학교이름이나 우리 이름을 든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에 비행기가 조금 일찍 착륙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며 친구와 공항 구석에서 멍하니 기다렸다. 학교 측에서는 공항으로 마중을 가겠다고 했고, 우리도 학교로 가는 방법 따위 알지 못했으며, 짐도 잔뜩이어서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다. 예정된 착륙시간에서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가까워질 때쯤 되자 슬슬 불안해졌다. 학교는 오늘이 우리가 입국하기로 한 날이란 걸 잊은 걸까? 만약에 공항에서 불심검문당해서 한국으로 송환되면 어쩌지? 다시 한번 걱정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서 우리의 학교이름을 확인했다. 학교 국제교류팀에서 근무하시는 오노상이였고, 비행기 착륙 스케줄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 작은 공항에서 엇갈려버렸던 것이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광역버스 같은 큰 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한국과는 다른 풍경이 보이자 정말 앞으로 1년간은 내가 살 도시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image.jpg 4월 첫주는 이미 벚꽃이 만개해있었다

학교에서는 기숙사를 제공해 줬고, 다행스럽게도 학교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등교할 때 길을 잃어버릴 일도 없고 늦잠을 자도 뛰어나가면 10분 만에 강의실에 앉아있을 수 있는 거리였기에 한국에서는 매일 편도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의 통학을 했던 나에겐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기숙사는 1인 1실이었고, 방 안에 주방과 욕실이 딸려있었다. 주방이라고 말하지만 인덕션 한구와 작은 싱크대, 미니 냉장고가 붙어있는 전형적인 일본의 유닛키친이었고, 욕실은 일본 답게 좁은 공간에도 욕조가 딸려있는 유닛베스였다. 내가 배정받은 202호와 친구가 배정받은 203호는 대대로 우리 학교 교환학생들이 머물렀었기에 작년도 교환학생이었던 동기가 남겨놓은 스팸과 냄비, 여러 가지 양념류와 얇은 아우터도 옷장 안에 남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교재나 클리어파일 등도 남아있었어서 이 방을 스쳐간 선배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생활비를 충당할 생각이었기에 큰돈을 가져가지 않았기에 한 푼이 아쉬운 나에겐 수납장과 싱크대 서랍을 열 때마다 보물창고를 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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