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듣지 못했을 때는 무조건 하잇!

교환학생 합격한 게 신기하군

by BH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기숙사의 구조를 설명하자면 외관부터 한국과 달랐다.

학교 부지 안의 건물이 아닌, 외부의 일반 아파트 같은 느낌이었다. 학교와 붙어있기는 했지만 담벼락으로 나뉘어있었기 때문이다.

대문을 통과하니 자전거가 잔뜩 주차되어 있었고, 교환학생들도 자전거를 한 대씩 받을 수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어 들고 신발장까지 가져다 놓은 뒤, 그곳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했다. 신발장은 아래층, 우편함은 위쪽으로 구성된 독특한 신발장에 신발을 보관해야 했고, 한 켤레 이상을 신발장에 넣는 것은 금지였다.

배정된 기숙사는 2층이었고,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처럼 창문이 없는 복도식 구조였다. 또한 ㄷ자형 구조여서 복도 맞은편으로는 다른 학생들의 방도 보였다. 조금 신기했던 부분은 모두가 1인 1실이라는 것. 각자의 방 안에 좁은 부엌과 욕조가 딸린 화장실, 다다미 침대와 붙박이 옷장까지 모두 구비가 되어있었고, 작지만 베란다까지도 있어서 빨래를 말리기 좋아 보였다. 이전 교환학생들이 사놓았는지 낡은 전자레인지 위에는 배불뚝이 TV도 있었다.


도착한 첫날의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적당히 짐을 풀어놓고 집에 연락을 해야겠다 싶어서 와이파이를 찾았는데 어라? 잡히는 신호가 없다. 나는 와이파이 쓰려고 공유기까지 사서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한국인을 고문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포함되어 있듯이 느린 속도의 와이파이나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장소는 한국인을 불안하게 만든다. 인터넷 중독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나 역시 와이파이를 찾아서 기숙사 관리실에 문의를 했다.


인터넷 없나요?라고 짧은 일본어로 질문을 던졌더니 뭔가 신청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신청서는 구비되어 있었고 그걸 보면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내 일본어 실력은 좋지 못하며, 이곳은 간사이여서 억양도 세고 사투리라는 것. 내가 책으로, 드라마로 공부했던 표준 일본어와는 천지차이였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대책 없는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다. 뭐야! 무슨 말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기숙사 관리인(료보상)의 설명은 끝이 없었다. 드문드문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의 조합으로 내가 이해한 설명은 각자 인터넷을 신청해야 하며 선택할 수 있는 요금제가 다르다는 것. 중요한 포인트는 알아들었으니 다행인 걸까?


필요한 정보를 얻었으니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료보상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듣다 보니 아마 기숙사 미니냉장고에 얼음이 낀다는 내용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하이!(네!)와 소데스네(그렇지요) 뿐이었다. 냉장고? 얼음? 이게 무슨 소리냐?라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바쁘게 하면서 고개는 여전히 끄덕끄덕 하면서 종종 하이! 하이!라는 말만 내뱉다가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니 방의 미니 냉장고는 냉동실칸으로 있는 부분이 성에가 심하게 끼니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말을 해주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여름쯤 되니 냉동실칸의 성에가 너무 심해서 안에 들어있는 게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고, 보관하던 반찬을 꺼내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방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하이!(끄덕끄덕)만 반복하던 내 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저 교환학생을 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왔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그저 하잇!이라고 무조건 대답은 했지만 이렇게 못해서 어떻게 1년을 살지?

약간 예전 우스갯소리로 출입국 심사대에서 어느 나라 출신이야? 한국? 남한? 북한? 이란 질문에 그저 예스 예스만 하다가 보안팀으로 끌려갔다는 얘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 결론적으로 와이파이는 한 학기 먼저 와있던 대만 교환학생의 인터넷에 연결해서 집에 연락할 수 있었다.

그 고마운 친구는 일본에 온 첫날, 주변에 뭐가 있는지 찾을 체력도 없고 뭔가를 해먹을 기운도 없는 우리를 데리고 나가서 동네를 구경시켜 주며 닭꼬치집에서 저녁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연하게도 주문은 모두 대만 친구에게 맡겼다. 여기서도 어떤 메뉴가 있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좀 그렇지만 나는 일본어에 있어서는 읽는 것보다 말하는 게 조금 더 편한 사람인데, 그 당시는 훨씬 더 읽는데 시간도 걸리고 아는 한자도 적었기에 거의 까막눈이었다.


고작 두 시간 거리의 나라인데 잔뜩 지쳐서 필요한 물건들만 꺼내고 나머지는 방구석에 캐리어만 열어놓은 채로 일본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집에서는 항상 동생과 같이 잤기에 다다미 침대 위에 나 혼자 있고, 타인이 내는 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낯설면서도 내가 다른 나라에 왔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


그다음 날 아침도 한국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방 아래쪽으로는 학생들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고, 기숙사 앞 도로를 지나는 청소차에서 우회전합니다, 좌회전합니다 라는 소리가 들려와서 새삼 일본이란 걸 느꼈다. 학기 시작이 코앞인 시기에 입국했기에 둘째 날 바로 구청에 전입신고를 하고, 우체국에 가서 통장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나는 여전히 집 주소마저도 사진을 보고 뜨문뜨문 그려서 신청서를 냈었다. 당시에 썼던 다이어리에 돈 쓴 내용을 보면 한자보다 히라가나로 대부분을 써놓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한글로 할인고로케라고 적어놨다. 이 당시에는 내가 생각해도 교환학생 면접을 통과한 게 신기하면서 앞으로의 생활이 걱정도 되었다. 어쩌면 이런 실력이었기에 나의 1 지망이 아닌 2 지망 학교로 나를 보낸 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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