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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n 25. 2024

뭐든 마음먹기 마련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는 게 세상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역시나 세상에 당연한 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내와 잠 못 이루며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습니다. 고위험군의 질환에 해당하지 않고 ‘구순구개열’이라는 질환 자체가 적절한 수술과 관리만 이어진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 여겼거든요. 저희가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의 자존감을 드높여준다면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아내는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부모들이 모여있는 한 온라인 카페에 가입해 어떤 과정을 거쳐 아이가 수술을 받고 치료되는지 전반적인 흐름을 상세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카페에서 다양한 분들의 사연을 접할 수 있었는데, 저희와 같은 상황을 이겨내신 분들의 글을 읽어나갈수록 더욱더 용기가 생겼습니다.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도 이렇게 될 수 있겠지’라는 굳은 결의를 다지게 됩니다.


한편 임신 주차가 지날수록 아내의 배도 불러가며 호떡이도 함께 성장해 갔습니다. 엄마 뱃속에 완전히 자리 잡은 우리 아기를 여봐란듯이 키워야겠다는 결심도 함께 성장했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쑥쑥 잘 자라고 있는데 부모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만 저만치 앞서있었습니다. 뭐든 마음먹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그 이후로 하루 24시간 내내 ‘무조건 잘 될 거야’라는 말을 마음으로 하루 종일 되뇌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양가 부모님들께도 이 사실을 알려드리게 됐는데, 의외로 어머니께서 담담하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900분의 1로 특별한 아이가 태어난다고 했지? 그럼 호떡이 덕분에 다른 아이들은 조금 더 일찍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고 말입니다.  손주가 아프다는데 일부러 무덤덤하게 말씀하려는 어머니 모습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사실 조부모의 마음도 찢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부모님의 지지와 신뢰 속에 다시 한번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 아이는 특별한 아이니 까요, 아주 잠시 동안 남들과 조금 다르게 키워내면 되는 거였습니다.  


기존에 다니던 지역 산부인과에서 소견서를 받아 관련 질환으로 유명한 서울아산병원으로 진료를 다니게 됐습니다. 병원 갈 때마다 긴장되는 건 여전했지만 다행히 다른 질환이 추가로 발견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출산 예정일도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는 엄마 배를 쿵쿵 차면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 아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출산 시기입니다.


추석을 앞둔 9월의 어느 새벽에 아내가 제게 살살 배가 아파온다고 했습니다. 가진통이 시작됐습니다. 호떡이가 이제 정말 세상 밖으로 나올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사전에 미리 준비했던 짐을 챙겨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했습니다.      


출산 과정에서도 특별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2022년 당시에도 코로나 여파는 끝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병원 내 출입 통제가 엄격했습니다. 환자와 함께 병원에 함께 상주하려면 ‘코로나 검사 결과’가 증명이 됐어야 했죠. 갑작스럽게 입원한 임산부를 제외하고 보호자인 저는 사전에 따로 코로나 검사를 미리 받지 못한 탓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는 8시간가량을 자동차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이 8시간을 아내 홀로 병실에 있었다는 건데, 아직도 미안하고 앞으로도 미안한 마음이 계속 남아있을 듯합니다.


그러곤 어떻게 됐냐고요? 음성 검사 결과받자마자 아내 곁으로 달려가서 출산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출산 진통이 더 심해지는 순간에도 아내는 제게 웃음을 보여주더라고요. 역시 대단한 여인입니다. 아내는 제왕절개 대신 자연분만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12시간의 진통 끝에 어여쁜 딸아이가 세상 밖으로 울음을 터뜨리며 나왔습니다. 아내 말로는 축구공이 몸속에서 나오는 기분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네요. 아이도 산모도 다행히 모두 건강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저희는 특별한 아이를 위한 특별한 부모가 될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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