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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n 24. 2024

우리 아이가 아프다고 했다


다들 아시듯이 임신부는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내방해 아이의 건강상태 등 전반적인 성장 과정을 모니터링합니다. 임신 초기에는 산전검사, 복부초음파 등을 진행하고, 임신 중기가 시작되는 12주부터는 아기의 상태를 조금 더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는 등 다양한 검사를 진행하게 되죠.



정기적으로 병원을 내방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내의 몸 상태도 좋고 아이가 잘 자라주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두근거렸던 마음이 이내 진정됐습니다. 일부러 덤덤한 척 아내에게 “거봐, 별일 없잖아.”라고 말했지만 병원 가는 날은 알게 모르게 언제나 긴장 됐습니다. 한 아이의 아빠인데요. 당연합니다.   



그렇게 아내가 아이를 임신한 지도 어느덧 20주 차가 되었습니다. 12주 차에 있었던 1차 기형아 검사와 얼마뒤 2차 기형아 검사까지 무사히 마친 이번 검진은 ‘정밀 입체초음파’로 태아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는 날이었습니다. 머리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팔과 다리 그리고 갈비뼈 등은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게 되는 거죠. 운이 좋다면 아이 얼굴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우리 호떡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겠지?” 대화를 나누며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드디어 저희  차례가 되었습니다. 먼저 간호사님께서 정밀 초음파를 통해 아이의 상태를 체크해 주셨습니다. 머리의 크기, 아이의 발가락 그리고 손가락 개수를 하나씩 확인해 주시며 이상 없이 아주 잘 자라주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심장도 잘 뛰고 있네요”를 비롯해 평소 들었던 말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니터를 보면서 저희 부부는 안도감에 해맑은 웃음도 간간이 지었습니다. 무탈하게 자라주고 있는 아이에게 감사했던지 아내는 그렇게 울더라고요.     



그런데 궁금했습니다. 아이는 과연 누굴 닮았을까요? 간호사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얼굴을 확인할 순 없을까요?" 간호사님께서는 아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질 않는다는 말씀만 되풀이하셨습니다. 아내가 자세를 바꿔서 이리해보고 저리 해봐도 아이가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아쉬웠지만 별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선택이었니까요.  


    

정밀 초음파를 마치고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대부분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무슨 소리지.’ 다만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떤 말이 이어질지 이내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곤 연이어 조심스럽게 말을 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저희 딸아이가 특별한 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조금 아픈 아이이기도 하고요.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아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여쭤봤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뇌 부분에 문제가 있거나 다운증후군과 같은 고위험질환에 해당하지 않지만, 아이에게 외형적으로 구순구개열 증상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혹시 ‘구순구개열’이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습니다. 토끼의 입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토순’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옛날에는 ‘언청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백과사전에서는 ‘선천적으로 윗입술이나 입천장이 갈라진 선천적 기형’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게 저희 딸아이에게 있다는 건가요?” 머리가 띵했습니다. 아내는 이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의사 선생님이 해주는 말씀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 아이가 기형아라고? 말도 안 돼. 세상에 이런 일이.’ 저도 그렇지만 아이를 품고 있는 엄마에게는 더욱더 크게 와닿았을 것입니다.      



진료실을 나오는데 세상이 노랬습니다. 병원 가는 길에는 분명히 새파란 하늘이었는데 어느새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눈물을 훔치며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 그날은 주체가 안되더라고요. 울면서 운전을 해본 적 있으세요? 앞이 잘 안 보입니다. 그렇게 정신이 쏙 빠진 상태로 저희는 귀가했습니다.



900분의 1 확률로 구순구개열을 지닌 아이가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 아기가 그랬어야만 했는지 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부모님에게 말씀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안 좋은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날 늦은 오후 귀가를 한 저희는 점심으로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는데, 아직도 그 음식 먹을 때마다 그 순간이 떠오르곤 합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때 저희는 왜 그랬을까요. 이렇게 예쁜 아이를 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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