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남이 Jun 22. 2024

4년 2개월

2018년 10월의 어느 날 저희 부부가 손을 맞잡고 한 곳을 바라보기로 합니다.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날이었고 세상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날. 저희가 결혼한 날입니다.  

   

신혼초기 여느 부부나 그렇듯이 저희 또한 둘만의 추억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에는 한주의 피로를 달래며 밖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때로는 뮤지컬 같은 공연도 관람하고 종종 여행도 떠나는 등의 신나는 신혼생활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그리 크게 들진 않았습니다. 돈의 여유가 없었을까요?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요? 아마 둘 다였을 것 같습니다. 딩크족은 아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당시에는 아이를 갖게 된다고 해도 아내를 사랑하는 만큼의 마음을 아이에게 줄 자신이 없기도 했습니다. 신혼시절 가장 중요했던 건 다름 아닌 '저희의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동안 무작정 놀고먹고 마시만 한 것도 아닙니다. 회사도 열심히 다니고 언젠가 우리에게 찾아올 아이를 위해 적금도 들었고 재테크에 관심이 생겨서 투자도 해보고 이렇게 나름의 의미 있는 시도들은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이따금 양가의 부모님들께서 “아이는 언제 가질 거니?”라는 말을 꺼내긴 하셨지만 “때가 되면요.”라고 답변드리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만큼 둘 만의 결혼생활이 즐거웠고 한편으로는 자산을 모으는 재미에도 푹 빠져있던 시기였습니다. 아이는 '둘 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낸 후 가지면 된다' 정도로 쉽게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저희 아내는 회사에서 승진을 했고,  해외여행도 한번 다녀오고, 부동산에도 관심이 생겨 자가를 마련하게 되는 등 일상의 많은 것들이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던 것 같습니다. 결혼을 했고, 충분히 먹고 마시고 즐긴 것 같습니다. 그럼  그다음 단계는 뭐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이제 아이를 계획할 시간입니다. 젊은 호기에 저희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아이를 가질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일이 큰 저항 없이 계획대로 진행됐었기 때문에 아이 가지는 것 또한 순조로우리라는 굉장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임신 준비를 위해 집 근처 산부인과를 방문해 아내의 몸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젊은 부부에게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열정적인 부부의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으니까요.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시작한 ‘계획 임신’은 생각보다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사실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계획이었습니다.

 

임신 준비 기간에는 몸을 최대한 정갈히 하고 아내의 배란일 주간을 달력에 표시해 기간에 맞추어 관계도 이어갔습니다. 몸에 좋다는 약도 복용하면서 계획적인 임신을 바랐지만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더라고요. 답답한 상황이 한 달 두 달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한테 무슨 문제 있는 건가?’ ‘난임 문제인가?’ ‘시술 같은 걸 준비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라고 당차던 저도 조금씩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시간문제라고만 생각했던 임신 계획에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서너 달 지나고부터는 “나는 아이가 없어도 우리 둘이 알콩달콩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도 이따금 꺼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저희에게 쉽게 찾아오진 않았습니다. 실제로 어느 조사에 따르면 가임기 부부의 약 15%가 난임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부모가 되는 것 자체가 시작부터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세상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수두룩한데 임신만큼은 자신 있다고 단언한 자체가 오류였습니다.     


매달 얇고 기다란 임신 테스트기 하나에 부부의 관심이 초집중됐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하면서요. 2021년 12월의 어느 날, 저희 부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바로 아내의 '임신' 말입니다.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요? 짧고 굵은 기간이었지만 그토록 무언가를 염원했던 시기는 인생에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부부의 모든 염원을 담아 '호랑이 해에 떡하니 태어나라고' 태명은 ‘호떡이’로 정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저희 부부의 인생은 이제 둘이 아닌 셋으로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가족이 찾아왔다는 기쁨과 동시에 고민에 고민을 더하는 문제들이 연이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했거든요.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