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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n 26. 2024

뻔질나게 드나드는 압구정

딸아이는 결국 ‘윗입술이 갈라져있는 구순열’ 증상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저희 아이와 같이 조금 특별한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검사를 끊임없이 받게 됩니다. 일단 외형적인 수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형외과도 방문해야 하고 이와 더불어 교정을 위해 치과를 가게 되는 일도 빈번해집니다.      



‘구순열’이라는 증상은 윗입술이 갈라져있는 형태로 입술이 벌어져있어 코를 충분히 지지해 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 쉽게 말씀드리자면 코가 무너져있는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부분은 교정을 통해 코와 입술의 위치를 어느 정도 바로 잡아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차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상태에서 입술을 봉합하는 수술이 진행되고요.   

  


서울아산병원에서 산후조리원으로 옮긴 후 딸아이는 압구정에 있는 한 치과로 인생 첫 외출을 나왔습니다. 딸아이의 생애 첫 외출인데 목적지는 병원입니다. 웃기고 슬픈 상황입니다. 살면서 '압구정'이라는 곳을 단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촌놈이었는데 딸아이 덕분에 압구정 현대아파트도 보고 현대백화점도 구경해 봤습니다.     

 


참고로 구순구개열 관련해 교정을 진행하는 치과는 전국에 몇 군데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자체가 많이 없었고 만약에 몇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었더라도 저는 전국에서 제일 교정 잘하는 치과로 분명히 갔을 겁니다. 딸아이의 완벽한 교정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치과에 도착하고 의사 선생님께서 딸아이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딸아이 구순열의 정도는 정말 심한 정도는 아니고 교정 및 수술 후에는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말씀 해주셨습니다. 조금 독하게는 보통의 아이와 같은 모습을 꿈꾸는 것은 부모의 욕심이라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마 ‘굳게 마음먹어라’라고 말씀해 주신 것 아닐까요.



교정하는 과정 초반에는 치과를 드나드는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참고로 저희 아내는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강동구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2주 정도 산후조리를 이어갔는데요, 이 시기에는 산후조리원과 치과 간의 거리가 많이 멀진 않아서 부담이 덜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갓난아이와 함께 경기도에서 서울의 압구정을 여러 번 다니는 게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 달에 몇 번씩 휴가를 내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에는 회사에 제 아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제 입으로 꺼낼 수도 없고 일절 하지 않았던 상황이기도 해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휴가를 요청하기도 쉽진 않았습니다. 당연히 제 옆의 사수에게 눈치도 보였고요.



‘뻔질나게 드나드는 압구정’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회사 업무를 병행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구나.’라는 걸 몸소 체험했습니다. 왜 몸이 피곤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우리가 부모인데 뭔들 못하겠어 싶다가도 매주 서울을 강제로 다니게 되니까 지쳐가더라고요.      



더불어 아내는 갓난아기를 돌보는 상황에서 조금씩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산후도우미 선생님의 도움까지 받았지만 그 외에 시간에는 전적으로 아이와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도 지치는 게 당연했습니다. 엄마라는 타이틀이 무한체력을 보장해주지는 않으니까요.      



각자의 상황에서 부담이 가중되며 저는 일전에 아내가 제게 말했던 ‘공동 육아휴직’이라는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해도 되는 건가?’에서 ‘같이 육아휴직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서서히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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