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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n 27. 2024

부족하고 미안한 아빠

산후조리원 생활도 순조롭게 끝나고 드디어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아내의 빠른 회복을 위해 정부에서 운영하는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추가로 신청해 3주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돌봤습니다. 이후 어머니께서도 저희 집에 한 주간 머물러주시면서 아이 키우는 집 치고는 다소 여유로운 1달을 보낸 편입니다.



뭐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머니께서 댁으로 돌아가시고 이제 저희와 아이 세 가족의 '육아 대환장 파티'가 시작됐습니다. 부부가 동시에 육아를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직장을 다녀야 하는 현실에 부딪히면서 별수 없이 아내의 ‘독박 육아’가 시작됐습니다.



아내는 본래 아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지나가는 아기들만 봐도 예뻐하고 지인이나 친척들 아기 돌봐주기에도 꽤 능숙한 편이었습니다. 그런 아내가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하루 이틀이야 괜찮을 수 있다지만 말 못 하는 아기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게 쉽지 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아내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지친 표정이 역력해 보였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은 가중되어 갔습니다. 하루에도 서너 번 깨는 아이 덕분에 아내는 충분한 수면을 이루기 어려웠고 식사도 거르는 날이 많아 힘에 부쳐 보였습니다. 이따금 근처에 계신 장모님께서 밑반찬이나 먹을 것을 사다 주곤 하셨지만 한계가 있던 것은 분명합니다.


     

거기에 더해 아내는 툭 더 놓고 이야기할 곳도 마땅치 않았을 겁니다. 남편인 저는 회사에 업무로 인해 업무 중에는 아내와 많은 연락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집에 돌아오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잠자기 전까지 해줬습니다.(래퍼인 줄 알았습니다.)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최근에 아내가 들려줬던 이야기 중 하난 당시 '소통 부재'에 대한 어려움이 굉장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지금이야 저희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아이지만 생후 1개월 남짓한 갓난아기와 무슨 이야기를 했겠어요.

 

      

반대로 제 경우는 직장이 서울인지라 이른 아침 출근해서 늦은 저녁이 돼서야 퇴근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오후 6시에 땡 퇴근한다고 해도 집에 돌아오면 거진 오후 8시 즈음이었거든요,  씻고 나오면 아기는 항상 곤히 잠을 자고 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따금 깨어있는 아이와 함께한 시간에는 행여나 제가 아이를 안아주다 떨어뜨리진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습니다. 잠깐의 몇 시간에도 절절 메던 저였으니까요.


  

저는 그저 아이를 예뻐하기만 하는 아빠였지 목욕은 어떻게 시키고 분유는 얼마를 타고 기저귀는 어떻게 갈아줘야 하는지 아기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지한 아빠였습니다. 아내가 백번 말해줘도 돌아서자마자 백번 다 까먹어버렸으니까요. 주중은 그렇다 쳐도 주말에는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부담됐습니다. 육아지원을 필요로 하는 엄마에게도 당연히 도움 될 리가 없었습니다. 이미 엄마에게 100% 적응된 아이는 아빠가 안거나 하면 얼마 안 가 울거나 보채기일 수였으니까요.  



 ‘이게 맞나?’ 싶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직장에서 돈을 버는데 정작 아이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와 멀어지는 느낌과 더불어 아내만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무렵부터 ‘공동 육아휴직’에 대해 더욱더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휴직을 하면 아무래도 아이와 조금 더 가까워지겠지?’ ‘아내에게도 그래도 작은 보탬이라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당장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내가 너무 무책임한 건가?’ 복잡스러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건 다 제처 두고라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었습니다. ‘아이와는 무조건 친해질 수 있다.’라는 확신 말입니다. 매일 아이와 함께하다 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아이 치료를 위해 병원을 자주 오가야 하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아내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더 이상 부족하고 미안한 아빠가 되기는 싫었습니다. 아이 보는 게 두려운 아빠가 되는 것도 아이가 저를 밀어내는 상황을 전환시키고 싶었습니다. 홀로 육아를 하기엔 힘에 부칠 것 같았지만 아내가 옆에 있다면 훨씬 더 자신감 있는 육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하는 육아' 생각만 해도 설렜거든요. 그 결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굳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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