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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n 29. 2024

공무원의 유일한 장점

저희 부부의 직업은 공무원입니다. '철밥통' 공무원이란 소리도 있었지만 요즘 공무원은 그렇게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닌 듯합니다. 사기가 정말 많이 떨어져 있어요. ‘누칼협’이라고 비꼬는 말도 들리고 ‘그 월급 받고 어떻게 사냐’는 자조 섞인 말도 심심치 않게 듣게 됩니다. 그러게요.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저는 왜 제 발로 공무원을 하겠다고 했을까요? 아내 만나려고 공무원 했을까요?



사실 저도 입사 후에 ‘아차’ 싶었던 순간이 있었긴 한데 그래도 제 직업이 공무원이다 보니 마냥 동조만 할 수도 없고 제가 이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뭐가 있을지 고민 한번 해봤습니다. 정년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있고, 제가 낸 기여금이 훨씬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무원 연금이라는 걸로 노후대비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사실 진짜 괜찮은 제도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육아휴직’ 제도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육아휴직 제도에 있어서만큼은 웬만한 대기업 부러울지 않을 만큼 보장되어 있습니다. 모든 공무원은 법에 근거해서 행동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육아휴직은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에 명시되어 있죠. 법령 상 근거가 충분하다면 육아휴직이든 뭐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육아휴직을 결정하고 난 이후 더욱더 가족 중심으로 생각의 전환을 일으켰습니다. 휴직 들어가기 전까지 일을 안 한다던가 이런 게 아니라 휴직의 시기나 기간 등에 대해 고민했다는 말입니다. 제가 공동 육아휴직을 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시기는 대략 10월 즈음입니다. 언제 휴직을 들어갈 것인지 시기에 대한 문제가 중요했는데 일을 하다가 중도에 육아휴직을 들어가는 건 일단 당사자인 제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일하다 중간에 들어가기는 자존심 상하고 절차상 깔끔해 보이진 않았거든요. 일하기 싫어서 육아휴직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주변분들에게 피해 입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을까요.



참고로 제가 속한 자치구는 1월과 7월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정기 인사발령을 내립니다. (아마 대부분 그럴 거예요.) 이에 맞추어 저 또한 정기 인사 시즌에 맞춰 2023년 1월부터 육아휴직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인원 공백에 대한 문제없이 조직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가족에게도 너무 늦지 않는 시기에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시기라 판단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법으로 보장하는 ‘육아휴직’ 제도를 누릴 수 있다는 건 제 나이 또래의 공무원이 가질 수 있는 아마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와 친밀도도 높일 수 있고, 타의적인 삶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미래 계획을 그릴 수 있는 멋진 시간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주도적으로 사는 느낌을 분명히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육아만 하던 짬 내서 공부를 하던 24시간 전부가 본인의 손에 달려있으니까요.



저는 이를 ‘자녀가 선사하는 인생의 안식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회사에 있다 보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차가운 형광등 조명 아래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무실의 책상들 그리고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기간이 어쩌면 육아휴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육아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어찌 됐건 누칼협이라고 놀림당하는 공무원에게도 정말 괜찮은 '육아휴직' 제도라는 것이 있다는 것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에네르기파 급의 필살기입니다.)  자. 그건 그렇고요. 이제 그다음은 어떤 문제가 제게 닥쳐왔을까요? 뭐긴 뭐겠어요. 바로 돈이죠. 그놈의 돈돈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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